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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358 인간의 불행

샤마임 201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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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ise Pascal



팡세 358 인간의 불행


끊임없이 자신을 천사이고 싶어하는 인간을 고발하는 파스칼의 독설은 그의 팡세 358번에서 정점을 이룬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거니와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불행은 천사를 닮고 싶어하면서도 짐승을 닮아가고 있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인간들의 가지는 이중적인 고립은 철저한 자기고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을 하나님으로 자리로 올리고 싶었던 욕망을 소외를 만들고 말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존재의미를 찾고 싶어하지만 삶을 짐승의 삶이다. 천사와 짐승은 양 극단으로 서로 완벽하게 닮아있다.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 순종으로 살아간다면 짐슴은 철저히 동물적 본성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이것은 마치 북극과 남극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만 너무 닮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불행은 이 두 존재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인해 빚어진다. 한 쪽에서는 거룩한 존재로서의 갈망이 다른 한쪽에서는 동물적 욕구에 따라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서로 싸우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이중적 욕구를 간파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롬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의 피 속에는 그 원시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철저하게 천사처럼 되고싶지만 결국 짐승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추락하고 만다. 

팡세 359
우리가 미덕 속에 지탱하고  서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편에서 부는 두 개의 바람 사이에 서 있는 것처럼 상반되는 두 개의 악덕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악덕 중의 하나를 없애 버리면 우리는 다른 악덕에 빠지게 되고 만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기로 작정했을 때 그들의 마음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말았다. 떠난 곳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란 미련과 새로운 것을 쟁취해야하는 욕망은 자아를 정신병자로 만들고 말았다. 현대인이 앓고있는 조울증은 향수와 변화에 대한 극복해야하는 갈등의 표시이다. 고향에대한 향수에 젖어 한참을 울다가 현실을 넘기 위해 냉정해야하는 이중적 존재감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철학적 사고의 원천은 바로 이중적 존재감에서 찾아오는 미친 존재감 때문이다. 

롬 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천사처럼 살기를 욕망하며 결단하고 다짐하지만 결코 그렇게 살지 못한다. 자신의 끔찍한 잔인성에 놀라고 기절한다. 실존주의자들이 자살을 권장하는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다. 

팡세 346
인간의 위대함은 인간이 사고하는 데 있다.



위대함이란 인간의 자신의 한계를 알고 절망할 때 시작된다. 그리고 사고하기 시작한다. 

팡세 347
인간은 하나의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자연 중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무찌르기 위해 전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파스칼이 간파한 인간의 나약함과 무능함은 곧 생명을 거두기 위해 물 한방울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위대해지는 것이다. 그 연약함으로 인해 모든 우주를 사고 안에 포용하기 때문이다.

팡세 348
생각하는 갈대. 내가 나의 존엄성을 구하려는 것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내 사고의 규제에서이다. 내가 아무리 많은 영토를 소유하더라도 그 이상의 것을 손에 넣었다고 할 수는 없다. 우주는 공간으로써 나를 포용하고, 하나의 점인 양 나를 삼켜 버린다. 그러나 나는 사고로써 우주를 포용할 수 있다.



인간은 스스로가 연약하다는 것은 인지할 때 위대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들이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 이것이 짐승이다. 천사를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강한데 말이다.

팡세 374
내가 가장 놀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도 놀라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인간은 언제나 기만당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지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간다. 탕자처럼 말이다. 짐승같은 삶을 살아갈 지라도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자만이 천사의 삶을 추구하게 된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능력을 기대한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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