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5. 7:11-19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
15. 7:11-19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
1. 말씀 읽기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 묵상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레위지파의 아론의 후손이 아닌 유다 자손이 대제사장이 된 이유를 설명해 나갑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갖는 영적 대제사장의 위엄이 얼마나 탁월한가를 보여 줍니다. 앞부분에서 살펴 본대로 멜기세덱은 레위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받은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십일조를 바친 것을 통해 멜기세덱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줍니다. 이제는 레위 지파가 아닌 이유를 통해 다시 증명해 나갑니다.
1) 레위 계통의 제사장은 온전하지 못하다.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에서 제사장이 나오는 이유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함’(τελείωσις) 영어로 ‘perfection’ 번역되는 말로 말 그대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완전함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완전함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만족하여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게 된 ‘온전한 상태’를 이름입니다.”(아더 핑크)
교리적이란 말은 아론의 후손들이 드린 제사로는 하나님의 공의가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구약의 제사들은 불완전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하여 드려야하고,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만약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여 제사를 드릴 수 없다면 죄를 사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 번에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십니다.
-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완전합니다.
- 영원히 계심으로 완전합니다.
- 은혜의 보좌 나아가기에 완전합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한 분임을 보여줍니다. 완전한 것이 왔기 때문에 불온전하고 불완전한 것들을 필요하지 않습니다. 레위 자손의 제사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새로운 제사장을 세워야 했습니다.
2) 제사장이 바뀐즉 율법도 바꿔야 한다.
두 번째는 놀라운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율법이 바뀌어야 합니다.(12절) 레위 지파의 제사장은 율법에 속한 것입니다. 율법이 정한 것에 의해 제사장이 됩니다. 레위 지파 중에서도 대제사장은 오직 아론의 후손들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율법이 정한 제사장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제사장은 새로운 율법을 필요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에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의 후손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14절)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점에서 완전한 새 모세이며, 새로운 율법의 창시자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완성한다는 말은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의 율법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새로운 율법으로 완성시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새로운 율법을 따르지 않고 모세의 율법을 고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율법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계명입니다. 사랑의 계명은 옛 계명이자 새 계명입니다. 옛계명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롭다는 말은 옛것이 파기 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가 되었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은 새 계명을 따릅니다. 그것은 차별과 구별이 아닌 하나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멜기세덱의 반차]는 다음 글을 참고하십시오.
3)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른 제사장
아론의 제사장 직분은 육체에 속한 계명을 따른 것입니다. 그것은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입니다. 물론 그 계명이 나쁘거나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것이며, 온전한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은 자원하든 하지 않던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행위를 억압하고 교정할 수 있지만 마음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 율법을 순종만을 요구합니다.
스스로 선택하여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순종만을 요구하는 억압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 제사장 직분을 혈통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지파에서 아무리 거룩하고 위대한 인물이 자원하다 해도 불가능합니다. 오직 아론의 후손들만 가능합니다.
- 그들이 제사는 육체에 머뭅니다.
마음까지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마음을 알기를 원하셨지만 율법은 불가피하게 겉으로 드러난 것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연악하고 무익’(18절)합니다. 참으로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합니다.(19절) 이에 비해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 계명은 마음의 율법이며, 사랑이며, 완전한 변화입니다. 율법이 실패했다거나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것이 올 때 율법은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세 가지 주제로 쓰여진 글입니다.
*히브리서 묵상, *히브리서 강해, *히브리서 주해
히브리서 강해(Ⅱ)
정현욱 저
히브리서는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빛나는 책입니다.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방식을 선물합니다. 또한 타락한 세상 속에서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분량을 위해 모두 네 권을 분리하였습니다.
제1권 : 1-3장 탁월한 그리스도
제2권 : 4-7장 탁월한 그리스도의 사역(1)
제3권 : 8-10장 탁월한 그리스도의 사역(2)
제4권 : 11-13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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