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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다 잡힌 여인

샤마임 2010.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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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다 잡힌 여인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한테 "내 눈에 당신은 돼지 같이 보이오"라고 하자, 그 말을 받은 무학대사는 "소인의 눈에는 전하가 부처님 같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태조는 무학대사의 말에 "정말 내가 부처같이 보이는가?"하며 흐믓해 하자, 무학대사는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는 법입니다"라고 덧붙였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누가 돼지 같은지 알게 될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바깥을 보도록 만들어져있다. 그래서 자신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남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다. 아무리 남을 잘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신을 살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 7: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여기 나오는 개와 돼지는 누구인가? 자신을 분별할 줄 모르는 부정하고 탐욕스러운 존재들이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개와 돼지는 절제하지 못하고 온갖 더러운 것을 탐하는 것들로 참된 분별력이 없는 짐승들을 말한다. 주님은 이곳에서 ‘네 눈 속에 들보’ 보지 못한다고 책망하신다.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네 ‘형제의 티’를 빼라고 하느냐! 이것은 도무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것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남을 알기 전에 먼저 네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5:28에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고 선언하신다.

요한1서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두 구절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잘 살핀 후에 남을 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외모를 봅니다. 그가 키가 얼마인지, 얼굴은 이쁜지, 성격은 어떤지, 학교는 어디 다니고 있는지, 집은 부자인지 가는한지..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꿰뚤어 보십니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왜 그일을 하려 하는지.. 모든 것은 보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처음과 끝을 이미 다 보고 계십니다.

잠언 15:11 스올과 아바돈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

요한복음 7장은 유대인들의 예수님 배척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8:2.. 아침에..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음행 중에 잡힌 여인

죽일까요? 모세 율법에.. 레위기 20:10 신명기 22:22

[레]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 22:22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바리새인들의 시험은... 예수님을 해하고자는 의도였다. 숨은 의도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만약 이곳에서 주님께서 율법대로 돌을 던지라 한다면 로마법을 어긴 주동자가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는 주님의 오신 목적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그러나 용서하라 한다면 율법을 어기게 되므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게 됩니다.

주님은... 앉아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십니다. 무엇을 쓰고 계셨을까?

어떤 사본에 보면..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죄목을 적고 있었다고 기록되었다.

칼빈(J. Calvin)은 말합니다. 그들의 교활한 질문을 지혜롭게 무시하시는 행동으로 그들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글을 쓰셨다고 말합니다.

질문이 계속되자 주님은 일어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이 한 마디는 어둠 속에서 천둥을 동반한 번개와 같은 것으로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누구만 보고있었느냐.. 간음한 여인만 보고있었다.

주님은 그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도록 촉구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놀라운 통찰력이나,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가장 먼저 한 말이 무엇인가?

당신이 저에게 준 저여자가... 저 뱀이.. 모두 남을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보라고 하십지다.

누가 저 여인을 정죄할 자격이 있는가? 주님 만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아무도 못합니다. 왜요?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죄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존재들이요, 영원한 멸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잠깐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들추어 내고 계시는 것이죠.

주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율법대로 하면 저 여인(나-우리)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의 저주를 감당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문제를 좀 더 확장시켜 볼까요?

우리는 아무도 죽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죄할 수 있을까요? 시험도 못치는 나, 공부는 못하는 나, 키고 작은나, 가난한 집에 사는 나, 그런 나를 정죄해도 됩니다. 그런 나에게 나는 돌을 던져도 됩니까?

아무도 못한 다는 것입니다.

[요]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주님은 진정으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생존의 근거가 무엇인가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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