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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묵상] 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샤마임 2017.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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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묵상] ,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19:17-27

마침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기념하여 ‘성(聖) 금요일’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금요일만 거룩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날이 다 거룩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순절의 마지막 금요일을 ‘성금요일’로 부르는 이유는 십자가 사건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인류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됩니다. 옛 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십자가는 세상을 전복시키려는 갈릴리의 젊은 혁명분자의 광분이 아니었습니다. 교지도자들의 정치적 모략에 당해 순교한 개혁적인 젊은 정치가의 죽음도 아니었습니다. 태고적에 이미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우리가 아는 미리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정은 서커스의 곡예사가 땅이 떨어지지 않도록 쳐진 그물과 같습니다. 역사의 모호성과 아이러니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섭리가 배의 엔진과 같다면 예정은 지도와 나침반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곳은 골고다 즉 ‘해골’(17절)이란 작은 언덕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이 잘 보이도록 영문 밖에 있는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요한은 예수와 함께 두 사람이 함께 못 박혔고 예수는 가운데 있다고 기술합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를 유대인들은 강도로 취급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전복(顚覆)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바름이 그름이 되고, 곧음이 휘어짐이 되고, 진리가 악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의인을 악인으로 둔갑시켜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욕망에 사로잡혀있음을 말해줍니다. 십자가는 한 인간으로서, 모든 인류를 대신하고 대표하여 죽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패를 달았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명패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위에 명패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19절)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유대인의 노력이 허사 되었고, 자신의 왕을 죽인 반역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되어 마침내 모든 역사의 완성자요 주인공이 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사단에 수족이 되어 탐욕을 채우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섭리의 불쏘시개가 됩니다. 바로의 완고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듯, 악한 종교지도자들의 간교함을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사를 더 빨리 이끄는 강풍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입니다. 아니 온 인류의 왕이십니다.


군인들이 예수의 옷을 취하여 제비를 뽑습니다. 옷을 온전히 보전하고자하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는 시편의 예언을 성취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공기가 흐르듯 보이지도 느끼지도 못하지만 무엇보다 조밀하여 완벽하게 성취해 나가십니다. 십자가로 향하는 하나님의 예정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순간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고, 혼돈 속에 매몰되고 맙니다. 모순과 모호함이 인간의 역사에 엉킨 실타래처럼 얽혀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은 역사 속에서 완벽하게 성취해 나갑니다.


만약 종교지도자들이 바른 양심과 믿음을 가졌다면 예수의 생애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정된 것이며, 인류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믿음은 모든 시간과 행위가 십자가를 향하고 있음을 보는 눈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인류의 역사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책 출간] 그동안 고난주간을 묵상하며 올린 글을 모아 <고난주간 묵상>이란 작은 전자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기도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일반 교인들을 위한 묵상 글과 설교자를 위해 묵상과 설교의 중간쯤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 고난 주간을 보내면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깊이 묵상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클릭하시면 교보문고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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