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28 강해, 하나님이 만유가 되시는 날
아들도 복종하리니, 하나님이 만유가 되시는 날
고린도전서 15장 28절은 바울의 부활 변증 가운데 가장 높은 종말론적 정점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단지 신학적 명제를 넘어서서, 창조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며, 그 완성의 정점이 어떻게 삼위 하나님의 신비한 질서 안에서 하나님께 돌려지는지를 보여줍니다. 헬라철학은 신적 실재에 이르는 경로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며, 영혼이 육체의 한계를 넘어 신과 융합된다고 보았지만, 바울은 여기서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종말, 그리고 아들의 복종이라는 역설적인 승리를 통해 ‘하나님이 만유가 되시는’ 영광스러운 완성을 선포합니다.
아들의 복종, 질서 안에 완성되는 순종 (15:28 상반절)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15:28). 이 구절에서 핵심은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복종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복종하다'(ὑποτάσσω)는 단어는 군사적 맥락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상위 권위 아래에 질서 있게 배치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수직적 강제성을 함의하는 개념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질서 있는 순종을 뜻합니다.
신학적으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이 복종이 본질적 열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신 성자께서는 본질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하시며, 시간과 공간 이전부터 함께 계셨고, 영광과 본체에 있어서 차이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구속사적 역할 분담(οἰκονομία) 안에서 아들은 아버지께 자신을 드리며 사역을 마무리합니다. 이는 구속사의 시작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경륜이며,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순종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는 복음의 핵심 장면입니다.
이 복종은 창조 질서의 회복과 관련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가 들어왔고, 그 결과로 만물이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돌려드리며 온전히 복종할 때, 피조물 전체는 하나님의 의도하신 질서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복종은 곧 회복이며, 통치의 완성이며, 창조의 목적을 이루는 절정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나라, 아들의 사역의 완결 (15:28 중반절)
“그 때에”라는 표현(ὅταν)은 시간의 종말적 성취를 가리키는 문맥에서 사용됩니다. 즉, 모든 부활이 성취되고,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모든 적이 발 아래 굴복되고, 마지막으로 사망도 멸해진 후에, 아들이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바치는 ‘그 때’를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단지 사건의 종결점이 아니라, 역사의 목적점,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영광의 날을 가리킵니다.
이 장면은 신약 전체에서 드물게 다뤄지는 '삼위 간의 종말론적 교통'을 보여줍니다. 성자께서 성부께 나라를 바치는 장면은 요한계시록 11:15에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는 선언과도 연결됩니다. 이 나라는 세상 나라의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뜻합니다.
여기서 ‘나라를 바친다’는 개념은 단순한 위임의 종료가 아닙니다. 구속사적 대행자로서의 사역이 마쳐졌다는 선언이며,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백성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여 드리는, 가장 완전한 헌신의 표현입니다. 이는 이 땅의 통치자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거룩한 왕권의 완성이며, 모든 권세가 다스림을 멈추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놓이게 되는 신적 완결입니다.
하나님이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시려 함이라 (15:28 하반절)
이 구절의 종결은 신약 신학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삼위일체적 종말론을 드러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여기서 ‘만유’(πάντα)는 모든 피조물, 모든 질서,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단어입니다. 그리고 ‘만유 안에 계시려 한다’는 선언은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창조와 구속, 회복이라는 성경 전체의 구조 속에서 종말론적 완성을 보여줍니다.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다시 회복되고, 이제는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서 직접 만유를 충만케 하시며, 모든 피조물 안에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헬라철학의 '신과의 합일' 개념과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헬라철학은 인간의 자아가 소멸되고 신성과 융합되는 신비주의적 결합을 추구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만유 안에 계시는 상태’는 창조 질서를 유지한 채, 각 존재의 고유성과 인격을 보존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충만함을 누리는 상태입니다. 이는 삼위일체의 구별성과 일체성처럼,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질서 있는 일치의 상태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미래의 묘사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예배, 사역, 순종, 이 모든 것은 그날에 이루어질 완전한 복종과 영광의 예고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종말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의 뜻 앞에 겸손히 복종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5장 28절은 바울의 부활 변증의 클라이맥스이자, 삼위 하나님의 조화 속에 완성될 구속사의 결정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나라를 바치고, 만물은 복종하게 되며, 하나님은 만유 안에서 만유가 되십니다. 이 순종과 복종은 삼위일체의 내적 질서 안에서 일어나는 신적 교통이며, 그리스도의 통치는 끝이 아니라 완성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진정한 부활 신앙이란 단지 죽은 이후의 일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은 그 날까지 우리를 이끌 것이며, 우리는 그 완성된 예배에 참여할 백성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순종과 소망으로 주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고전 15장 구조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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