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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21-24, 강해 아담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샤마임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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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나는 자들

고린도전서 15장 21절부터 24절까지는 바울이 부활에 대해 더욱 심화된 구속사적 논증을 펼치는 부분입니다. 본문은 단순히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 부활이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표성 안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설명합니다.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물든 고린도 교회는 육체를 천한 것으로 여겼고, 육체의 부활을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본문에서 인간 역사의 시작과 끝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 계획 안에서 부활의 의미를 밝히며,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통치를 선포합니다.

 

사망은 아담으로부터, 생명은 그리스도로부터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15:21). 바울은 지금 ‘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자 사상의 중심 표현입니다. 아담은 창세기 3장(창 3)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범죄함으로써 인류 전체를 죄 아래로, 사망 아래로 이끌어간 자입니다. 아담은 인간 전체의 머리로, 그의 불순종은 모든 인간에게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롬 5:12-21)에서도 같은 논리를 펼치며,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조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동일한 대표성의 원리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적용합니다. 사망이 아담에게서 왔다면, 생명은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15:22). 여기서 '모든 사람'(πάντες)은 전 인류를 포괄하지만, 각각의 문맥 속에서 다른 두 대표자에 속한 자들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아담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죽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두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대조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결정적인 선언입니다. 인간은 중립적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어떤 대표 아래 속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아담 아래 있던 존재로서 사망에 참여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이 생명은 단지 죽은 이후에 부활하는 생명만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시작된 영적 생명이며, 종국에는 완전한 몸의 부활로 완성될 것입니다.

 

각기 자기 차례대로 부활하리니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15:23). 바울은 부활의 순서를 설명하면서 ‘질서’(τάγμα)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군대의 대열 혹은 조직된 행렬을 묘사하는 단어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부활이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순서와 시점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먼저는 '첫 열매'(ἀπαρχὴ) 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이미 앞선 20절에서도 동일한 표현이 등장했는데, 첫 열매는 전체 수확의 보증이자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성도의 부활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의 부활이 없다면 성도의 부활도 없다는 논리는 여기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οἱ τοῦ Χριστοῦ),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의 부활입니다. 이 부활은 ‘그가 강림하실 때’(ἐν τῇ παρουσίᾳ αὐτοῦ), 곧 재림의 시점에 일어납니다. 바울은 이 부활이 단지 상징적 부활이 아니라 실제적인 육체의 부활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헬라철학의 비물질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진술이며, 몸의 회복을 포함한 구속의 총체성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단지 영혼의 구제에 머물지 않습니다. 전인격적 회복, 곧 몸과 영혼의 구속이 구속사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바울은 부활이 질서 있게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성취될 것임을 선포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미래 소망을 분명히 세워줍니다.

 

마지막은 그가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 (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15:24). 여기서 바울은 궁극적인 종말의 순간을 말합니다. 부활의 절정은 단지 개인의 영생에서 그치지 않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완성되며, 그 왕국이 하나님 아버지께 바쳐지는 우주적 사건으로 나아갑니다.

'나라를 바친다'(παραδίδωμι)는 표현은 헬라어로 ‘넘겨주다’, ‘위탁하다’는 의미로, 그리스도께서 이끄신 구원의 왕국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종말적 예배의 장면입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아들이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며 사역을 완성하는 장면이며, 모든 권세와 능력이 하나님께 복속되는 그날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세상의 통치자나 권세자들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왕이시며, 그의 통치는 악의 세력들을 무력화시키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이는 헬라철학이 말하는 영적 탈출이나 내면의 자족과는 전혀 다른, 실제적이며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종말론적 승리입니다.

이 마지막의 장면은 단지 두려운 심판이 아니라, 영광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결되는 순간이며, 모든 성도가 그 영광 안에 참여하게 될 시간입니다. 이 장면을 소망하는 자는 지금 이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5장 21절부터 24절까지는 부활이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표성 안에서 어떻게 인류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부활은 단지 한 사람의 초월적 사건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나는 전 인류적, 우주적 사건입니다. 이 부활은 질서와 시간 속에 정해진 하나님의 구속계획 안에서 성취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라가 바쳐지는 영광스러운 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부활의 여정에 속한 자로서, 현재의 고난과 혼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고전 15장 구조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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