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42-44 강해, 욕된 것에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썩을 것에서 썩지 않을 것으로, 부활의 몸은 영광의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부터 44절은 바울이 부활의 몸의 본질을 네 가지 대조를 통해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물질을 부정하고 영혼의 불멸만을 강조했던 고린도 교회에 바울은 육체의 부활이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이며,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고귀하고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는 진리임을 선포합니다. 이 구절은 원어의 섬세한 표현과 함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이 남긴 깊은 주해를 통해 우리에게 부활의 실제성과 영광을 더욱 분명히 알려 줍니다.
첫째, 썩을 것에서 썩지 아니할 것으로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15:42).
바울은 부활의 몸에 대한 첫 번째 대조로 ‘썩을 것’(φθορά, phthora)과 ‘썩지 아니할 것’(ἀφθαρσία, aphtharsia)을 제시합니다. φθορά는 본질적으로 부패, 파괴, 소멸의 과정을 의미하며 인간의 육체적 상태와 죽음을 상징합니다. 반면 ἀφθαρσία는 ‘변하지 않음, 영속성’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영광의 몸을 묘사합니다.
초대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부활에 대하여』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부활은 같은 육체가 되살아나는 것이나, 그 본성은 완전히 변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부활의 실체가 지금의 육체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함에서 벗어난 영원한 질서 속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칼빈 역시 이 대조를 강조하며, “썩는 육체는 범죄의 결과이며, 부활은 하나님의 자비가 이끄는 회복의 결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지 그분의 부활이 아닌, 우리의 부활의 표본이다”라고 주석합니다.
이처럼 썩지 아니할 몸은 단지 오래 지속된다는 개념을 넘어서, 죄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 부활의 몸이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상태로 완전히 회복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욕된 것에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15:43a)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15:43a).
‘욕된 것’(ἀτιμία, atimia)은 수치, 무가치함, 타락의 상징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현재 육체 상태를 ‘욕된 것’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 약함이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타락한 전인격적 상태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반면 부활의 몸은 ‘영광스러운 것’(δόξα, doxa)으로 일컬어집니다. 이 단어는 구약의 ‘카보드’(영광) 개념과 연결되며,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 존귀함을 나타냅니다. 즉, 부활의 몸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반영하는 몸이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에서 부활의 몸이 가지게 될 영광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처럼 우리의 몸도 찬란하고, 투명하고, 죄 없는 상태로 변화될 것이다.” 그는 이 구절을 통해 성도의 부활이 단지 생명 유지가 아니라, 본래 창조 목적에 도달하는 완성을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영광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인간 창조의 원형,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영광’은 단순히 밝게 빛나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속에서 존재가 완성되는 차원을 의미합니다.
셋째, 약한 것에서 강한 것으로 (15:43b)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15:43b).
‘약함’(ἀσθένεια, astheneia)은 육체의 쇠약함, 질병, 인간의 무력함을 포함한 포괄적인 단어입니다. 이는 인간이 죄로 인해 겪는 모든 한계와 비참함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강한 것’(δύναμις, dynamis)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 단어는 성령의 능력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창조와 부활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주석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 때와 같이, 부활의 때에도 죽은 자를 능력으로 일으키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활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살리시는 동일한 능력의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현재 몸은 고통과 한계 안에 있지만, 부활의 몸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명력 안에서 일으켜진 강한 몸입니다. 바울은 단순한 체력적 회복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새 창조로서의 존재적 회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넷째, 육의 몸에서 신령한 몸으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도 있느니라” (15:44).
이 대조는 본문 전체의 핵심 요약이자, 부활 신앙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육의 몸’(σῶμα ψυχικόν, sōma psychikon)은 단순히 물리적인 몸이 아니라, ‘혼적인 몸’ 또는 ‘자연적인 몸’으로 해석되며, 인간의 본성에 따라 움직이는 죄된 몸을 의미합니다. 반면 ‘신령한 몸’(σῶμα πνευματικόν, sōma pneumatikon)은 성령에 의해 생명을 얻고 통치되는 영적 몸입니다.
칼빈은 이 대조를 “육의 몸은 아담 안에서 받은 것이며, 신령한 몸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것이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성도의 부활은 곧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완전한 전환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도 있다’는 논증을 통해, 부활의 몸이 현실과 동떨어진 신비적 관념이 아니라, 창조 질서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변화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헬라철학이 강조한 ‘물질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물질의 회복과 영광스러운 변화입니다.
이레네우스는 “육의 부활 없이는 구속도 완성될 수 없다. 하나님은 전인격을 구속하시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부활이 단지 영적 체험이 아닌, 실제적이며 구속사적 핵심임을 강조하는 진술입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5:42-44은 바울이 부활의 몸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가장 밀도 있는 구절입니다. 네 가지 대조는 단순한 질적 향상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죽었던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교부들과 종교개혁가들 역시 이 본문을 통해 부활이 실제이며, 육체의 회복과 영광을 포함하는 복음의 완전한 열매임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붙들고, 현재의 연약함 속에서도 부활의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날에는 분명히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으로, 욕된 몸이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고전 15장 구조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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