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45-49 강해, 아담의 형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아담의 형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부활로 완성되는 구속의 길
고린도전서 15장 45절부터 49절까지는 바울의 부활 논증이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표성에 기반한 구속사적 대조를 통해 절정으로 향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은 이 구절을 통해 단순한 육체의 회복이 아닌, 구속의 완성으로서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첫 사람 아담은 타락을 통해 죽음을 가져온 존재였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을 통해 생명을 주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헬라철학이 강조한 영혼 중심의 초월주의적 구원과 달리, 바울은 육체를 포함한 전인격적 회복이 부활의 실체임을 밝히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회복된 형상으로 변화될 것을 약속합니다. 본문은 창조에서 타락, 타락에서 구속, 구속에서 영화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15:45).
이 말씀은 창세기 2장 7절을 인용한 것으로, 아담이 '생령'(ψυχὴν ζῶσαν, psychēn zōsan), 즉 살아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말합니다. ‘ψυχὴ’는 단순히 생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한한 존재, 곧 인간의 제한성과 육체적 본성을 지칭합니다. 아담은 창조의 시작이자, 타락을 통해 죽음을 불러온 대표자로 위치합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πνεῦμα ζωοποιοῦν, pneuma zōopoioun)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ζωοποιέω’는 능동태 현재 분사로 사용되어, 생명을 능동적으로 공급하고 유지하는 존재로서의 그리스도를 묘사합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부활하신 분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능력의 근원이며, 성령 안에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종말의 날에는 영화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레네우스는 『이단 반박』에서 이 구절을 주해하며, “아담은 시작일 뿐이고, 그리스도는 완성이다.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회복된다”고 설명합니다. 칼빈도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이었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 생명이다"고 말하며, 이 두 아담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강조합니다. 아담은 창조 질서의 출발점이지만, 그리스도는 구속 질서의 완성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작점입니다.
육의 것이 먼저요 신령한 것이 나중이라 (15:46-47)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 있는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신 이시라” (15:46-47).
여기서 바울은 순서적 질서를 강조합니다. ‘먼저’(πρῶτον)는 시간적 선후뿐 아니라, 창조와 구속의 단계적 흐름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먼저 육의 존재로 창조되었고, 그 후에 구속의 과정에서 신령한 존재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예정된 순서이며, 구원의 단계적 성취를 반영하는 구조입니다.
'육의 사람'(ψυχικός)과 '신령한 사람'(πνευματικός)의 구분은 물질과 비물질의 이분법이 아니라, 타락한 상태와 구속받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인간 존재가 단순히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구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47절에서 '첫 사람'(ὁ πρῶτος ἄνθρωπος)은 아담을, '둘째 사람'(ὁ δεύτερος ἄνθρωπος)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각각 '흙에서 난 자'(ἐκ γῆς χοϊκός)와 '하늘에서 난 자'(ἐξ οὐρανοῦ)로 대조됩니다. 흙에서 났다는 표현은 창세기 2장 7절의 반복으로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을 상징하고, 하늘에서 났다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위격을 강조하는 구속사적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출생의 기원이 다르다는 말이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과 사명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는 언어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구절을 두고 “육은 시작이며, 영은 목적이다. 땅에서부터 시작된 여정은 하늘에서 완성된다”고 말하며, 신령한 몸이 우리의 최종 도달점임을 강조합니다. 루터도 “하나님은 무로부터 창조하신 것처럼, 죽음에서 생명을 일으키시며, 육에서 영으로 변화시키신다”고 설교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해 시작하신 인류의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질서로 전환하시며 새로운 창조를 완성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입은 형상, 우리가 입을 형상 (15:48-49)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자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15:48-49).
바울은 지금까지 설명해온 구속사적 대조를 인간 존재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선언으로 연결합니다. '입는다'(φορέω, phoreō)라는 동사는 단지 덧입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흙에 속한 자의 형상, 곧 아담의 형상을 입고 태어났으며, 이는 유한함, 타락성, 죽음의 속성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본성을 단순히 버리거나 무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새롭게 하시며, 영화롭게 하십니다.
하늘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의 형상(εἰκών, eikōn)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존재 전체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는 장차 이루어질 부활의 몸을 의미할 뿐 아니라, 지금 현재 성령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이는 성화(sanctification)와 영화(glorification)가 연결되어 있는 신학적 구속사입니다.
칼빈은 이 구절에서 "우리가 아담 안에서 타락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본래의 형상으로 회복된다. 이는 구속의 절정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의 회복이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또한 성도의 부활이 단지 회복이 아닌, 처음 창조보다 더 영화로운 상태로의 완성임을 강조합니다.
초대교회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성육신은 우리를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형상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입음으로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강조합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인간의 구속이 단지 죄의 사함에 그치지 않고, 존재론적 변화를 동반하는 것임을 강조하며,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것이 얼마나 실재적이며 복된 일인지를 설명합니다.
이 형상을 입는다는 것은 성도의 현재의 고난과 연약함,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근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확실히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통해 성도들에게 현재의 삶 속에서도 이미 천상의 삶을 향한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결론
고린도전서 15:45-49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적 대표성과 부활의 실체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본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시작된 인간 존재는 흙에서 나고 유한하며 타락한 형상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입게 될 몸은 영광의 몸이며, 하늘에 속한 형상입니다. 바울은 단지 영혼의 생존이나 내세의 소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실제로 완성될 부활의 몸, 존재 전체의 회복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될 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그 형상대로 살아가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 훈련은 단순한 도덕적 순종을 넘어서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실제적인 과정이며, 최종적으로는 부활의 날에 완전한 몸으로 성취될 영광의 약속입니다.
고전 15장 구조 핵심
'신약서신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전서 15:51-58 강해 죽음을 삼키고 이긴 승리 (0) | 2025.04.10 |
---|---|
고린도전서 15:50 강해, 육과 혈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0) | 2025.04.10 |
고린도전서 15:45 강해, 살려주는 영으로 오신 그리스도 (0) | 2025.04.10 |
고린도전서 15:42-44 강해, 욕된 것에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0) | 2025.04.10 |
고린도전서 15:39-41 강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드러나는 부활의 신비 (0) | 2025.04.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