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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육칼럼-위대한 낙제생들

샤마임 2013.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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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교육칼럼

-위대한 낙제생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인물들이 있다. '천재'라 불리고 '인류 공헌에 큰 공헌을 했'다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상대성 이론으로 과학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버린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리하르트 바그너, 헨리 키신저, 원스턴 처칠, 바나드 쇼, 프란츠 카프카, 오노레 드 발자크, 헤르만 헤세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현대의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을 '그들'처럼 키우고 싶어한다. 역사에 '큰 공헌'을 하고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들이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냈으며, 어떻게 그런 탁월함에 이르게 되었는가는 모른다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가장 탁월한 정치가요,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리더자로 추앙 받고 있다. 이뿐아니라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이란 저서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문학적 재능도 뛰어나다. 그러나 그가 어릴 적 학교 부적응자이며 낙제생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50대 중반에 쓴 <나의 어린 시절>이란 책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Winston_S_Churchill


"돌아보면 이 시절은 내 삶에서 가장 즐겁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장 황량하고 비생산적인 시기였다. 나는 어릴 때 놀기 좋아하는 행복한 아이였고, 어른이 된 뒤에는 해가 갈수록 더욱 행복해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놓인 학창시절은 내 인생의 지도에서 음울한 잿빛으로 얼룩져 있다. 그 시절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성과도 없는 헛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괴로움과 강제, 단조로움으로 가득 찬 무의미한 나날이었다."[각주:1]



최고의 학교에 입학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처칠의 어머니는 처칠을 다른 학교에 전학시키면서 적응시키려고 노력하지만 낙제생이 되고 만다. 공부도 못하고, 발표력은 형편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도 썩 원활하지 못했다. 처칠의 아버지는 결국 처칠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보낸다. 그의 첫 입학시험은 389명 중에서 거의 꼴치 수준이었다. 결국 불합격한다. 다음해 다시 203등으로 불합격, 세번째 응시하여 95등으로 겨우 합격한다. 그곳에서 처칠은 자신의 적성을 발견하고 탁월한 정치가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위험이 다가왔을 때 도망치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위험이 배가가 됩니다. 그러나 결연하게 위험에 맞선다면 위험은 반으로 줄어듭니다. 무슨 일을 만나거든 결국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할 때에는 결단이, 패배를 했으면 반항이, 승리를 했을 때에는 아량, 평화시에는 선의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나 영웅들은 형편 없는 낙제생들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안다고 해도 지금의 자녀들에게 그것을 용납하기 쉽지 않다. 위대함은 평편없음의 다른 말이다. 극작가, 노벨문학상 수장자요 사회비평가였던 조지 버나드 쇼 역시 유년 시절 학교 부적응자였다. 헤르만 헤세와 아인슈타인은 어떤가? 그들 역시 학교에서 낙제생들이었다. 아무도 그들에게서 천재의 탁월함을 찾아내지 못했다.


피그말레온 효과란 용어가 있다. 교사가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곧 학생들의 미래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낙제생들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그들의 문제와 어리석음을 보는가? 아니면 천재를 보는가? 그것은 교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들은 낙제생으로 만들기도하고 천재로 만들기도 한다. 교사의 생각은 무의식 중에 학생들에게 심겨진다. 교사가 마음 속으로 학생에게 '넌 문제아야!'라하면 학생은 '나는 문제아야!'라고 생각한다. 교사가 '너는 존귀한 존재야!'라고 생각하면 학생은 '나는 존귀한 존재야!'라고 생각한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인품과 삶으로 귀결된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낙제생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누군가는 끊임없이 믿어주고 지지해 주었다. 예수께서 세리 마태 안에서 위대한 복음 전도자를 보고 제자로 부르셨다. 교사는 학생들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읽고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친해 고난 당하시고 죽으실 만큼 존귀한 존재들이다.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할 수있는 이들이 아니다. 학생들을 보라. 그들의 낙제점수만을 보지말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일하실 것을 보라. 이것이 교사의 사명이다. 



  1. 게르하르트 프라우제 <천재들의 학창시절>에서 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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