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기자의 <한국의 글쟁이들>(한겨례출판)을 읽고 / 그들은 어떻게 대가가 되었는가?
그들은 어떻게 대가가 되었는가?
구본준 기자의 <한국의 글쟁이들>(한겨례출판)을 읽고 추리고 정리한 글
작년에 읽었던 구본준 기자의 <한국의 글쟁이들>(한겨례출판)을 다시 읽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18명의 작가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책 쓰기 노하우를 정리한 책이다. 정민, 이주헌, 이덕일, 한비야, 김용옥, 구본형, 이원복, 공병호, 이인식, 주강현, 김세형, 임석재,노성두, 정재승, 조용헌, 허균, 주경철, 표정훈 등이다. 이덕일이나 한비야, 공병호는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라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사람’ 할 정도지만, 조용헌이나, 이인식, 주강현 등은 금시초문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자기 분야의 사람들의 아니면 읽지 않는 것이 나에게도 맞아 떨어진다. 어쨌든 이들의 책 쓰기 노하우는 무엇일까?
1. 정민, 모아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정민부터 들여다보자. 정민은 한양대 교수이며, <미쳐야 미친다>와 <오직 독서뿐>, 정약용의 지식경영을 소개한 <다산선생 지직경영법>의 저자이다. 그 외도 많은 책을 저술했는데, 모두가 한문 고전을 새롭게 번역하고, 정리해 출간한 것들이다. 7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한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민 교수에게는 특이한 자료철이 있다.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환자차트다. 의사들이 환자들의 신상과 병력을 파일철에 정리해 두는 것인데 정민교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자신의 글쓰기를 위한 파일철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구입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정민교수가 모아둔 수많은 자료들이 빼곡히 적힌 파일들이 꽂혀있다. 정민교수에게 회전 파일철은 재산목록1호이다. ‘글쟁이의 재산은 바로 아이디어와 자료다. 그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한 아이디어와 관련1차 자료를 이 차트로 정리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씨앗창고로 부른다. 정민교수의 탁월함은 바로 차트에 있었다. 쓰고 싶은 것, 쓰려고 하는 주제들을 차트에 정리해 둔다고 한다.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정리하고 축적해 놓는 습관, 전문적인 글쓰기의 시작인 셈이다.
2. 한비야, 낭독으로 생생하게 전달하라.
한비야는 깊이 있는 글을 쓰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쓰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의 책들을 읽어보면, 쉽고 재미있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머리를 때리는 글이 아니라 가슴을 때리는 글을 쓰자.”고 다짐한 한비야의 다짐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한비야의 책은 몇 되지 않지만 모두가 베스트셀러이다. 1996년에 쓴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 있고, 이후 우리나라를 걸어서 종단한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가 있다. 2005년 출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이다. 이후 '바람의 딸 시리즈는 동남아 등을 엮어 4권까지 출간 되었다. 한비야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녀가 낸 책은 불과 몇 권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유명할까? 첫 번째, '폭넓은 독자층'이 답이다. 10대 소녀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한비야의 책을 읽는다. 이런 넓은 독자층과 여성 홀로 하기 힘든 세계 일주라는 특이함 때문에 그가 쓴 책들은 대부분 한마디로 '대박'행진을 거듭했다. 첫 책은 100만부 이상이 팔렸고, 두 번째 책 역시 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지도 박으로 행군한라>역시 7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그녀의 책 많이 팔리는 이유는 단연코 작가 자신의 독특한 삶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200만부 이상이 팔리지는 않는다. 그럼 뭘까? 놀랍게도 그녀는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책을 쓰고 나서 수십 번씩 퇴고한다고 한다. 틀린 문장, 애매한 문장, 어색한 문장, 맘에 들지 않는 문장들은 고치고 또 고친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하는 '낭독'으로 마무리 한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문장이 매끄러운지 어색한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문장의 호흡은 물론 한 권 전체의 강약중강약 호흡을 따지며 거칠 때는 거칠게, 잔잔할 때는 잔잔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흐름을 살핀다. 그 결과 자기 책을 거의 외우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투를 써야 독자들이 나를 느껴요. 독자들이 나를 느껴요. 독자들은 결국 글쓴이의 오감을 빌려 호흡을 같이하고 싶어 하는 거잖아요. 저는 제가 현장을 전하는 리포터에 가깝다고 봐요. 긴급 구호 현장을 본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든 전해야죠.>"
한비야의 책에서 느껴지는 생생함의 비결은 바로 '낭독'이었다. 그녀의 낭독은 글을 읽을 때 직접 들리는 소리처럼 생생하게 전달하는 힘을 준다.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같은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 그녀를 탁월한 작가로 우뚝 서게 한 것이다.
3. 주경철, 서평으로 비판적으로 읽으라.
마지막으로 한 사람만 더 생각해 본다면 역사학 박사인 그는 페르낭 브로델의 저서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여섯 권을 번역하면서 그의 책 쓰기 수업은 시작된다. 1999년 주경철이란 단독 저자로 문학과 지성사에서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이란 을 출간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소개한 역사 에세이다. 그가 쓴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는 고생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대중교양서에 속한다. 즉 폭 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책이다.
주경철 교수가 책 쓰기 외에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서평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서평을 쓰려면 책을 비판적으로 읽고 생각해야 해요. 읽고, 생각하고, 써보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공부인 거죠."
맞는 말이다. 필자도 서평을 쓰면서 대충 읽던 책을 꼼꼼하게 읽게 되었고, 비평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게 되었다.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책이 말하는 요지와 논지를 파악해야하고, 동의하든 거부하든 자신의 논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것은 책을 완전히 숙지 않고는 힘든 작업니다. 서평을 통해 책 읽기는 독서의 질과 수준을 고차원적으로 만드는 고된 노동인 셈이다. 서평은 저자와의 대담이며, 토론이자 대화인 것이다.
4. 그 외의 것들
대가들의 한결같은 특징이 있다면, 프로정신을 들 수 있다. 짐짓 간과하기 쉬운 것들은 꼼꼼히 따지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고, 대중과 소통하려는 자세는 배울만한 것들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저자들은 교만해도 될?만한 작가들인데 일반 무명의 작가들보다 겸손한 것이 특징이다. 정재승도 일반 작가와 베스트셀러의 작가 차이를 ‘글쓰기 능력보다 독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지, 이 시기에 무엇을 말해 주어야 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독자들을 향한 배려, 그들과 소통하려는 마음이야 말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비결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의 문장은 마음에 새겨둘만하다.
“실제 글쟁이들 상당수가 메모광이다.
아무리 뛰어난 머리도 잉크를 따라가지 못한다.
글쟁이들에게 메모보다 좋은 무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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