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고전읽기]둔스 스코투스의 제일원리론
[기독교 고전읽기] 둔스 스코투스의 제일원리론
1.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의 간략한 생애
둔스 스코투스는 1266년에 태어난 1308년에 생을 마친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부입니다. 영민한 박사'(Doctor Subtilis)로 불렸던 그는 마지막까지 철저한 기독교적 관점에서 철학 했지만 스콜라 철학의 절정을 이룬 인물입니다.
1224년에 태어나 1274년에 숨을 거둔 토마스 아퀴나스보다 비슷한 시기의 사람이지만 성향은 많이 달랐습니다. 둘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견지한 안셀무스와 어거스틴의 전통을 물려받았지만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진 인물들입니다. 아퀴나스가 신앙 위에 철학을 세우려고 노력했다면, 스코투스는 철학으로 신앙을 증명해 내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제인원리론>은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과 흡사하지만 다분히 안셀무스에 비해 현격히 철학적이라는 점에서 많은 차이를 가집니다.
제일원리론은 ‘신을 가장 탁월한 존재이자 최초의 작용인인 동시에 궁극적 목적인’으로 봅니다. 신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그로 인해 존재하는 것들이 존재하게 된다는 인과론의 입장을 취합니다.
스코투스의 생애에 대해 길게 서술된 곳은 없지만 몇 가지 점에서 분명합니다. 스콜라 철학이 왕성 시기의 마지막 주자였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고 1281년 프란치스코에 입회합니다. 그는 후에 다루겠지만 신비주의 성향의 보나 벤투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합니다.
1302년 즈음에 파리에서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강의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303년 6월에 프랑스 국왕과 교화 사이의 논쟁에 끼어들게 됩니다. 교황의 편을 들다 프랑스에서 추방하고 맙니다. 다음 해 다시 프랑스가 허용되어 프란체스코 수도회 신한 교수로 임명됩니다. 그 후 4년 후인 1308년 11월 8일, 무슨 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어깨를 나란해 했지만 사뭇 사른 방식을 취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철학을 기반으로 결과에서 원인을 추적합니다. 하지만 스코투스는 아퀴나스의 그러한 방식을 비판하며 원인에서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과에 의해 원인을 찾아가는 아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한 논증을 배척하고, 원인에서 결과를 도출하는 아프리오리(a priori)한 논증을 참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제일원리론>은 스코투스의 플라톤적 철학 사조가 깊이 스며있는 책입니다.
스코투스의 아프리오리(a priori)한 논증은 이성을 의지 아래에 두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이성을 최고로 두었던 ‘앎’에 대한 의미를 의지의 문제로 사유의 축을 옮긴 것과 같습니다. 비록 둔스 스코투스가 원하는 방식대로 철학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시기마다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의 사유방식은 스콜라적 방식을 따르면서도 이전과도 사뭇 다른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스코투스의 성향을 감안하고 책을 읽어 나간다면 조금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로서 스코투스의 <제일원리론>을 명징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박우석의 해제를 참고하여 정리 요약하도록 하겠습니다. 책은 누멘출판사에서 출간한 <둔스 스코투스의 제일원리론>(박우석 옮김)을 사용했습니다.
2. 요약
책은 모두 4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은 ‘본질적 질서들의 유형’을 다룹니다. 2장은 ‘본질적 질서에 따라 배열된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다룹니다. 3장은 ‘제일원리의 삼중의 수호성’을, 4장에서는 ‘제일 존재의 단순성, 무한성, 그리고 지성’을 다룹니다.
제1장 본질적 질서들의 유형
사물이 제일원리께서 나에게 지존을 기쁘게 하시고 우리들의 정신을 고양하여 그를 명상하게 할 바를 믿고, 이해하고,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나는 있는 자다. 당신은 참된 존재이시고, 온전한 존재이십니다. 참된 존재에 관해 자연 이성이 얼마나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관해 제가 탐구하는 것을 도우소서. 중요한 몇 가지만 정리합니다.
구분된 것들이 적시된다. 구분된 것들 간의 상호 배타성이 보여야 한다. 결과들은 구분되는 것의 내용을 망라하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모든 결과는 선행성과 후행성에 기초한 하나의 본질적 질서가 여전히 있다. 후행자는 선행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제2장 본질적 질서에 따라 배열된 요소들 사이의 상호 관계
*1장에서 제시한 4중의 구분을 명백히 하고 본질적 질서의 관계 항들을 비교한다. 그 결과 모두 열여섯 가지를 정리한다.
그 어떤 것도 그것 자신에 대해서 본질적으로 질서 지워지지 않는다. 질서는 위에서 부과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본질적 질서에서도 순환은 불가능하다. 만약 선행자보다 선행한다면 선행자는 후행자가 된다. 이것은 모순이다. 선행자보다 선행하는 것은 없다. 후행자는 선행지에 의존한다. 필연적으로 후행자는 선행자의 인과성에 의존한다.
인과성이 존재하다면 존재하는 것은 목적인이 존재하며, 이것은 인과성에 의한 질서이다. 목적인은 결과를 도출한다. 목적은 인과에 있어서 제일 원인이다. 원인들의 원인이라 부른다. 목적은 인과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제일 원인이다. 목적은 사랑이고, 지향한다.
[약간 모호하게 들리는 이 부분은 스코투스가 이바첸나의 주장을 이용하여 원인들의 원인이신 하나님을 사랑으로 제시합니다. 존재의 목적과 인과는 사랑에 의해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연은 목적을 위해 행위 한다. 결국 존재하는 것은 목적인에 의해 질서 지워진다. 진리를 실질적으로 포함하는 목적은 결론의 주체보다 더 완벽하다.
제3장 제일원리의 삼중의 수위성
*제일원리가 제일 작용인이고 제일 탁월한 자이며, 궁극적 목적이라는 점에서 3중의 수위성을 가진다고 말하면서 열여덟 가지 결론을 증명합니다.
존재하지 않은 것은 원인이 될 수 없다.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제일자이다. 그것은 작용되어질 수도 없고, 그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 덕에 작용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난해한 이 부분을 쉽게 풀면, 스스로 작용하는 것들은 본성에 의해 움직이는 것들입니다. 본성은 다시 본성을 심은 어떤 존재에 의한 것이 됩니다.]
무한한 순환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일자의 수위성이 불가피하다. 그 자체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본성에 속한다. 만일 우주가 하나이면 하나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곳은 유일한 제일자가 있는 곳이다. 제일 목적은 인과 지워질 수 없다. 제일이기에 그보다 선행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가장 탁월하다. 탁월한 본성은 단순히 제일이다. 최고선의 본성은 인과 지워질 수 없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지서 지우는 원인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최고의 본성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존재하는 유일무이의 어떤 본성에는 앞서 이야기한 삼중의 본질적 질서, 즉 작용인, 목적인, 그리고 탁월성의 질서에 있어서 삼중의 수위성이 있다.
제4장 제일 존재의 단순성, 무한성, 그리고 지성
*4자에서는 제일원리의 본성이 지니는 완벽성들은 보여줍니다. 그 결과 열한 가지의 결론을 증명합니다.
당신은 단순하고, 무한하고, 지혜롭고, 의지를 지니고 계십니다. 먼저 제일인 본성은 그 자체로 단순하다. 본질은 질료와 형상을 갖지 않는다. 제일 본성은 어떤 유(類)에 속하지 않는다. 최고의 본성은 그 어떤 것도 최고의 것이다. 제일 본성은 완벽하다. 어떤 지식도 제일 본성에게 우유적(우연적)일 수 없다.
당신은 제일 작용인이십니다. 당신의 궁극적 목적이십니다. 당신은 완벽성에 있어서 최상이요, 당신은 모든 것들을 초월하십니다. 당신은 완전히 인과 지워지지 않으며, 그러므로 생성될 수 없고, 소멸될 수도 없으십니다. 당신은 필연적 존재이십니다. 당신은 지적이고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은 한없는 선이시고, 당신의 선함을 가장 자유로이 전해 주시는 빛이시며, 가장 사랑할만한 당신에게 모든 존재들은 그것의 궁극적 목적으로 향하듯 그 자신의 방식으로 되돌아갑니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 당신 외에는 신이 없는 유일한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지성도 하나, 의지도 하나, 능력도 하나, 필연적 존재도 하나, 선도 하나입니다.
당신은 영원히 복되십니다. 아멘!
3. 나가면서
둔스 스코투스의 논리 전개는 이전의 안셀무스와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안셀무스가 현상에서 신의 존재로 나아갔다면, 스코투스는 신의 존재의 필연성으로 현상을 파악했습니다. 신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존재하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목적을 가지며, 그로 인해 다양한 인과관계를 가진다는 것이 스코투스가 말하는 제일원리론의 핵심입니다.
이 책을 결코 읽어내기 쉬운 책이 아닙니다. 본서 자체가 난해하지만 번역이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난해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철학적 사유의 방식과 단어 등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은 탓이기도하고, 문법이 맞지 않은 어색한 비문이 적지 않습니다.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잇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 방식과 둔스 스코투스의 플라톤적 사유 방식은 앞으로 일어날 종교개혁의 철학적 토양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스코투스의 제일원리론을 단지 철학서로 보기에는 너무 작게 보는 것입니다.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스코투스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의 쇠망과 더불어 일어나는 새로운 철학 사조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음 세기에는 그가 남긴 논문으로 인해 실재론자와 유명론자들의 논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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