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니나 상코비치 <혼자 책 읽는 시간>
벌써 두 번째 빌린 책이다.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지 않는 나에게 특이한 일이다. 그만큼 이 책이 나에게는 좋게 다가왔다는 것이리라. 이 책을 빌리기 위해 간 것은 아니지만, 보는 순간 다시 빌려야 되겠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났다. 괜찬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손에는 이미 책이 들려 있었다.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 저자의 이름이 참 특이했다. 처음에 이분이 라틴아메리카 계열의 사람인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인이었고,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이 드러났다. 안 표지의 저자 소개란을 유심히 살피지 못한 탓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터프츠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천연자원수호위원회 담당 변호사, 해양보호단체인 협만구하기의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이 부분만 읽었어도 됐을 것을.... 단지 언니를 잃고 독서를 통해 치유해가는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였다. 책을 읽으보면 진짜 아줌마다. 변호사니 법률이니 하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직 일년 동안 날마다 한 권씩 읽고 서평쓰는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있다. 너무, 그것도 너무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였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점점 '어? 어? 이상하다?' 평범한 주부치고는 글을 너무 잘쓰는 것이다. 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라고까지는 그렇다치더라도 보통 수준은 훨씬 뛰어넘는 실력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그러다 중반 이후로 자신의 가족 소개를 하면서 이 분이 보통 분은 아니라는 점이 확실해 졌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6장 종이로 슬픔을 흡수하는 법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우리가 자랄 때 부모님은 2차 대전 기간에 유럽에 살았던 경험을... 어머니는 앤트워프에 사셨고, 독일군이 1940년 5월 벨기에를 침공하던 것을 기억... 전 가족은 .. 프랑스로 가서... 아버지는 시골에서 자랐다. ... 아버지는 형제 중 열명 가운데 넷이 2차 대전 때 죽었다.... 아버지는 전쟁으로 고향을 떠났고, 결국은 대양을 건너 새세계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인 니나 상코비치는 하버대에서 로스쿨과정으로 법학을 전공했다.
2차대전의 참혹을 3대를 걸쳐 몸으로 살아왔고, 어릴 적부터 책에 익숙했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조건과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조건이 다 만족한다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책을 소개하는 분들이 이 책은 평범한 주부의 독서 치유기 정도로 포장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주부이다. 이러한 저자의 약력은 상식을 깨고 신선한 바람을 주지는 않지만, 독서에 대한 지적인 평가와 수준높은 작문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가 두 번이상 책을 다시 선택할 만큼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40대 중반인 언니를 잃고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으로 독서를 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을 일기처럼 써내려가고 있다. 하루에 한 권을 읽고, 그 책을 서평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저자는 거짓말처럼 이것을 해냈고, 결국 일년의 독서를 통해 자신을 찾고 마음을 치유하게 된다. 독서치유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준다.
궁금해 지는 것은 어떻게 해서 독서를 통해 마음이 치유될 수 있을까? 변학수는 <문학치료>에서 아말감효과를 소개한다. 금이 든 광석을 갈아 수은을 입히면 아감만이 된다. 이 아말감에서 수은을 제거하면 순수한 금이 남게 되는 방법이다. 문학은 우리 안에 있는 상처를 간접적인 방법으로 끌어내어 제3자의 입장에서 다시보게하여 치유한다. 그 방법은 '공감'이다. 예를 들어 남편의 외도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어느 주부가 정희경의 <시앗>(시앗의 뜻은 남편의 첩)을 읽고 공감하며 자신보다 더한 사람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아내몰래 30년이 넘도록 두집 살림을 했지만 자신은 '고작'(?) 잠깐 한눈이 팔려 외도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아는 오프라윈프리는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책을 통해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음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불행은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속담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는 '상실'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책을 읽어가다보면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그토록 질투와 존경의 대상이었던 언니를 보내고 나서 자기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가면서 자신보다 더 아픈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글의 일부를 들여다 보자.
"아버지도 안톤처럼 전쟁의 잔혹한 행위로 인해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 전쟁의 참화를 직접 목격했고, 전쟁 뒤에는 내향적이 되었다는 점에서, 가족과 직업이라는 구조물을 쌓아 올려 스스로를 보호하게 한 점에서... 아버지를 과거로부터 보호해주는 방패가 바로 어머니, 언니들, 나였다. 우리는 아버지가 알고 있는 고통과 아버지 사이에 세워진 충격 완화벽이었다. 보호만이 아니라 더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약속이 곧 우리였다. 이제 언니가 죽고 나니 그 방패에 틈이 생겼고, 충격 완화벽에 균열이 일어났다. 약속이 깨진 것이다. 남은 우리가 그 균열을 때울 수는 있겠지만 때문 자국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다."(177-178쪽)
책이 매개체가 되어 아버지와 아버지의 시대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아픔이 밀폐된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왔던 평범한 것들임을 알게 된 것이다. "책들이 바로 경험이다. 그것은 사랑이 주는 위안, 가족의 성취, 전쟁의 고통, 기억의 지혜를 입증하는 저자들의 말이다. 기쁨과 눈물, 즐거움과 고통, 모든 것이 보랏빛 의자(저자가 앉아서 책을 읽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에 내게 왔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그토록 많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179쪽) 책을 통해 분명하게 알게된 저자의 고백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지 치유만을 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책을 읽는 방법과 해석의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도 책에 중독된 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독서법에 관련된 책을 읽어왔다. 이제 멈출만도 한데 관성의 법칙 때문인지 도무지 멈출줄 모른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독서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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