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
서평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
저자 야마무라 오사무
옮김 송태욱
출판사 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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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다. 제목에 딴지를 거는 이유는 단 하나 얼마 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이름이 '종이책 읽기를 권함'이기 때문이다. '권함'이란 말이 약간 소극적이기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든다. 또한 저자의 애절함이 느끼지는 단어이기도 하다. 맘에 든다. 그런데 비슷한 이름이 붙여진 것에 대해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바꾸었으면 좋겠다.
먼저 책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표지가 참 특이하다. 아직까지 이런 표지는 처음이다. 겉표지가 거름종이를 사용했다. 종이의 종류를 잘 알지 못하니 거름종이란게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거칠고 누런 종이를 사용했다. 내지를 들어가도 종이가 거칠기는 일반이다. 샨티? 출판사도 낯설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2003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에 초판 발행된 책이다. 전체적으로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여백이 많다. 특히 글이 있는 내지에 들어가면 확실히 여백이 많다. 예전 같으면 여백으로 책을 채운다면 욕먹을 책이지만 나에게 여백은 편하게 책을 읽히게 하고 메모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인다. 책에 대한 간단한 평을 한다면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팔리는 책이다. 책의 특성상 독서법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고 보았을 책이다. 기존의 천천히 읽기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자신만의 천천히 읽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는 정보과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근대사상의 영향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해 왔다. 우리나라는 ‘빨리 빨리’ 단어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될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덕분에 세계 어느 나라도 누리지 못하는 경제적 풍요와 문명의 혜택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행복 만족도는 처참할 정도로 낮다. 몇 년 전 갤럽에서 세계 10개국의 행복만족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가 가장 낮게 나왔다.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의 발전은 물질과 문명의 풍요로움을 더해주었지만 정신적인면에서는 더욱 후퇴했고,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유는 단 하나 ‘빨리’ 살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천천히’ 살 때 일어난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엥겔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여유를 생각할 틈이 없다. 그들은 하루하루가 생존의 위기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진입하였음에도 정신은 피폐하고 마음의 여유를 여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급변하는 경쟁사회는 과도한 정보를 주입했고, 이로인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축적되고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제 천천히 살 때가 되었다.
천천히 책을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자는 천천히 읽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빨리 읽으면) 책에서 보여야할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들려야 할 울림이 들리지 않는다.(중략) 글을 쓰는 사람이 전력을 다해, 시간을 들여, 거기에 채워 넣은 풍경이나 울림을 꺼내보는 것은 바로 잘 익어서 껍질이 팽팽하게 긴장된 포도 한 알을 느긋하게 혀로 느껴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빨리 읽으면 독서의 맛도 멋도 모른다. 갑자기 몰려온 수많은 지식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 정신을 황폐화 시킨다. 속독은 얻은 것은 거의 없으면서도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연인과 커피숍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급하게 마신 다음 다시 거리로 나가는 것과 같다.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사소한 대화를 사랑어린 마음으로 나눌 시간을 알지 못한다. 속독은 음미하면서 마시는 커피다.
저자는 그동안 자신의 독서역사를 살펴보면서 천천히 읽기의 맛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의미 있게 요약하면, 저자가 소개한 대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문장으로 대치할 수 있다.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천천히 읽어야 읽혀지는 것들이 있다. 갓담은 김치와 묵힌 김치가 다르듯이 천천히 읽기는 확실히 다르다. 천천히 읽어야 책 속에 담긴 풍경과 여백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이십대에 보지 못했던 부분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견한 것을 좋아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읽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천천히 읽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유익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나를 이런 책을 읽어왔다>의 저자로 알려진 다치나바 다카시식의 속독을 비평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그것을 ‘정보 인간’으로 정의한다. 정보 인간은 독서를 대량 정보 섭취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천천히 읽을 수 없다. 3초에 한 페이지, 한 달에 서른 권이라는 양적 독서를 추구한다. 다카시는 책은 문장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구조가 어떤지 그 흐름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피고, 그 다음 절 단위로 세세한 흐름을 파악해 나가는 것으로 본다. 빨리 읽기 위한 방법이다. 저자는 다카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독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계속하면서 정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 ‘인간을 끊임없이 정보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정보 신진대사체로 보는 것’이야말로 정보 시대의 인간상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라는 것이다.(19-20쪽)
이러한 다카시의 독서법에 대하여 저자는 ‘다만 그것은 물론 고도의 정보 인간 같은 것이 아니라 단순한 멍청이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천천히 읽기는 인간으로서의 당연히 해야할 특권이자 의무처럼 주장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그가 다카시를 향하여 ‘스스로 정보를 척척 섭취하고 배설하는 정보인간이 되려는 그런 인생을 선택한 사람에게만 유효한 독서술’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것만 보아야 그가 속독을 얼마나 싫어하는 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저자의 주장대로 정보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모든 책이 천천히 읽을 대상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필자도 몇 분만에 책을 한 권 읽은 적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메모법이나 여행서적 등은 몇 시간씩 천천히 들여다 볼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 책은 처음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읽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러한 천천히 읽기의 분명한 선을 긋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리가 약해 보인다. 옮긴이가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천천히 읽기’만을 쓴 책은 아니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자신의 천천히 읽기에서 얽힌 여러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분명 좋은 예이기는 하지만 흐름을 끊어 놓는다는 점에서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무료하고 따분한 부분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일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일본 저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가끔씩 세계고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대체로 책 이야기는 일본책들이다. 아쉽게도 그가 소개한 책들은 몇 권을 빼고는 거의 번역되지 않는 책들이다. 이 부분도 이 책을 읽는 데 애를 먹었다. 분명 좋은 책임에도 한국 독자인 나로서는 소외를 느끼는 것 같아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또 한 가지 흠을 추가한다면 에세이식으로 쓰여진 탓에 명확하고 분명한 논리가 약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역자가 밝힌대로 정보는 얻는 것보다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또한 천천히 읽어야할 책이다. 급하게 그리고 빨리 읽고 싶은 이들에게는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답답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저자가 권하는 독서법을 정리해 보면
천천히 읽어야 마음이 간다.
천천이 읽어야 감동이 된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얼마간의 감동을 느꼈을 때는, 그렇지 않아도 천천히 읽는 내가 더욱 천천히 읽고 있었을 때였다. 급커브에 브레이크를 건 전차처럼 거의 멈춘 듯 속도를 죽이고 읽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27쪽)
천천히 읽는 것과 빨리 읽는 것은 방법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다.
“살아가는 리듬이 다르면 세계관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 세계가 드러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33쪽)
독서는 통독이 기본이다.
“나는 다 읽었을 때의 기쁨이 독서의 기쁨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48쪽)
먼저 앞 부분의 열 쪽 정도는 정독하라.
“우선 모든 책은 대체로 첫 열 쪽 정도는 정독할 필요가 있다.”(59쪽)
자기만의 책 읽는 주기를 정하라.
“내 독서는 주 단위이다. 일 주일에 한 권, 따라서 한 달에 네 다섯권은 정도를 읽게 된다.”(118쪽)
천천히 읽기를 권함 -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샨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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