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칼럼-이 세상의 파수꾼
호밀밭의 파수꾼
어제 우연하게 눈길이 가는 책이 있어 아무 곳이나 펴고 읽기 시작했다. 고인이 된 장영희 교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책이다. 문학고전을 소개하는 책인데 에세이 형식으로 쓴 탓에 글이 맛깔스럽고 운치가 있어서 종종 꺼내 읽는 책이다.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간 모범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장교수님을 고즈넉한 마음으로 동경하고 우러러본다. 삶뿐만이 아니라 글 솜씨 역시 내 입에 착 달라붙는다.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하고 우울하거나 삶의 질곡이 깊어진다 싶으면 손을 내밀어 꺼내 읽는다. 어제는 계시 받은 것처럼 책을 펼쳐들었고,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소개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읽자마자 부끄러움과 감동이 밀물처럼 마음 속 깊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행운을 누렸다.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약간 긴 길이지만 글이 너무 좋아 그대로 옮겨와 본다.
호밀밭의 파수꾼, 참 특이한 이름이고 이곳저곳에서 소개한 덕에 작년(2012년) 10월 예림서적에 들러 사서 꼭 읽어야지 하면서 책꽂이 꽂아두고 잊힌 책이다. 그다지 당기는 것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아니면 이 책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피상적인 지식밖에 소유하지 못한 탓도 있다. 한 구석에 꽂혀진 책을 보면서도 그다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 책에 대한 정보가 미미하다보니 그랬을 것이다. 분명! 그러다 장영희 교수의 소개 글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 그 책’ 내 잎에서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 말이다. 이 책이 유난히 나의 마음에 꽂힌 이유는 지금 내가 중고등부를 맡고 있기 때문이고, 십대를 위한 사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영희 교수의 소개 글을 읽고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찾아내서 대화가 나온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세 시간을 넘게 뒤적거려도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포기하고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나와 책상에 앉아 무심결에 뒤적거린 곳에 그 대화가 있었다. 이덕형이 옮긴 문예 출판사판을 인용하면 이렇다.
“어쨌거나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본단 말야. 몇 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난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지만 말야.”
홀든은 어른들 특히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꿈을 통해 드러내 주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러나 딱 한 가지는 해야 하고 할 필요가 있다. 아니 그 한 가지만 잘해도 된다. 그것은 어린이들이 노는 것에 정신이 팔여 위험한 낭떠러지로 떨어질 찰나에 그를 붙잡아 다시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놓으면 된다. 샐린저는 아이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어른들의 충고라고 말한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하는 데 필요한 것은 어느 화장실 문에 새긴 자기 이름을 찾으면서 계속 엉터리 같은 충고를 늘어놓는 거야.”
우리는 어쩌면 어린이들에게 쓸데없는 충고만 잔뜩 늘어놓는 어른들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이들을 허식으로 가득 찬 충고를 하기 전에 진심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돌보려는 마음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이들을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사랑해 주자. 어쩌면 우리들은 세속적 욕망에 찌들어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받아들일 줄 모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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