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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책을 팔지 않습니다

샤마임 201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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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팔지 않는다. 책을 준 적은 있어도 팔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누군가는 나의 이러한 습관을 마땅치 않아 한다. 소장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고 내다 팔고 다른 책을 사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죽어도 그럴 생각이 없다. 아니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목회를 아예 접으려고 가지고 있던 3천 여권의 책을 내다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책을 팔려 한 적은 없다. 책은 나의 영혼이고, 나의 분신이다. 책을 파는 것은 곧 나의 기억과 영혼을 파는 것이다. 나의 영혼을 팔 수는 없지 않는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집착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독특한 독서습관 때문이다. 나는 독서 할 때 책의 내용만을 읽지 않는다. 책 자체를 읽는다. 책의 표지, 책의 판매부수, 책의 디자인, 글씨체, 행간, 등등 많은 부분을 꼼꼼히 본다. 읽으면서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표시하기도 하고, 등을 붙여 생각을 적어 놓는다. 또 하나의 독특한 습관 중의 하나는 책을 사면 내지를 펼쳐 나의 사인과 책을 산 서점, 날짜를 꼭 적어 놓는다. 모든 책에 다 사인을 하지 않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표시는 해둔다. 책에 나의 추억과 경험을 기록한다. 뇌에만 기억을 저장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에도 기억은 저장된다. 이러니 책을 단순한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다른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일전에 서면 대현지하 상가에 자리를 잡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간 적이 있다. 꼭 사야할 책이 있어서 가지는 않았다. 맘에 드는 책이 있으면 싼 가격에 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날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맘에 드는 책을 몇 권 골라왔다. 그런데 그 날따라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이란 표지말이 들어왔다. 무엇을 팔고 갔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새로 들어온 책이니 신간이 많이 있을 거란 기대감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과연 내가 사고 싶었던 몇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찬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도 그렇고, 처음 보는 책이지만 '책이 되어버린 남자'도 맘에 쏙 들었다.

 

이곳에 들어오는 책들은 최소한 40%에서 많게는 80%정도의 할인되어 판매된다. 중고서적이라 그러한 가격이 매겨진다. 그곳에서 거의 새 책들도 많다. 줄도 그어있지 않고,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어 보이는 책도 많다. 그런 책을 보면 '나야 책을 싸게 사서 기분은 좋지만, 이 책을 파는 사람들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귀하고 좋은 책을 읽어 보지도 않고 그대로 팔아 버린 저들의 꼼수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차피 안 읽을 책 이곳에 팔아 꼭 필요한 나 같은 사람이 저렴하게 사게 해주는 씀씀이는 맘에 든다. 그럼에도 그들이 왜그리 불쌍한지 모르겠다.

 

'성경이 깨끗한 만큼 영혼은 더럽다'는 서구의 속담이 있다.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수없이 많고 귀하다. 그런 책을 냅다 팔아버린다면 얼마나 불쌍한 영혼인가? 필자는 책을 지저분하게 읽는다. 책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책 여백에 기록하고, 나의 의견과 주관을 분명하게 표시한다. 시간이 지나 책을 다시 읽어보면 그 때의 생각과 추억이 그대로 살아난다. 책과 내가 하나가 되고, 책은 나의 일부가 된다. 책은 나의 자식이고, 나의 삶이다. 그러니 어떻게 책을 팔 수 이겠는가? 심지어 빌려주는 것조차 싫다. 책은 나의 비밀스런 연인이고 사랑인 탓이다. 나에게 책을 파는 것은 나의 영혼을 파는 것이다. 나는 절대 책을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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