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5장 1-11절 십자가의 사랑
가시 위에 세워진 사랑
로마서 5장 1절부터 11절은 복음의 핵심을 진술하는 중심 본문으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지를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라는 세 가지 상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의 비참한 상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고난을 뚫고 나온 사랑, 곧 ‘가시’ 위에 세워진 사랑입니다. 가시는 성경 전체에서 죄의 결과이자 저주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가시의 상징성을 따라 그리스도의 구속이 얼마나 치열하고 은혜로운 사랑이었는지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연약할 때 – 저주받은 땅에서 피어난 구속의 시작 (롬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바울은 ‘연약할 때’라는 표현으로 인간의 무기력함과 구원받을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헬라어로 '연약하다'(ἀσθενῶν)는 말은 질병, 무기력함, 무능함을 내포하는 단어로, 영적 생명이 끊어진 인간의 상태를 잘 드러냅니다. 이는 창세기 3장, 인간의 범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된 이후(창 3:17-18)의 상태와 맞닿아 있습니다.
가시는 곧 죄의 실체이며, 인간의 내면에 깊이 박힌 절망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 상태는 마치 가시덤불에 갇힌 양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기약대로 죽으셨습니다. 이는 단지 예정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될 가장 완전한 때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가장 비참한 상태일 때, 자기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구원의 문을 여셨습니다. 이 사랑은 꽃길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가시 위에서 피어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대신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죄인 되었을 때 – 찔림의 사랑, 피 흘림의 은혜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바울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우리가 경건해졌을 때가 아니라,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죄인’은 단지 도덕적인 타락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상태, 곧 전적 타락 상태를 말합니다(롬 3:23).
이러한 죄인은 단지 불순종한 자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르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관하려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은 언제나 가시로 가득한 존재입니다. 이사야 53장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 53:5) 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찔림은 단순한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죄의 깊이만큼 찔린 고통입니다.
히브리어 ‘찔리다’(דָּקַר, 다카르)는 예리하게 뚫린 상처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씌워진 가시 면류관은 단지 조롱의 상징이 아니라, 죄로 인해 피 흘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상을 대신하신 사건입니다. 죄인 되었을 때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정결케 할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구속사는 바로 그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의 죄는 가시로 엮인 왕관이 되었고, 그 가시는 그분의 이마를 찔렀습니다.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원수 되었을 때 – 화목케 하신 십자가의 은혜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바울은 인간의 상태를 점점 더 극단적으로 묘사합니다. 단지 연약하거나 죄인이 아닌, 이제는 ‘원수’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철저한 단절과 대적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가시는 단절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가 만들어낸 장벽은 마치 가시 울타리처럼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제사장만이 휘장을 지나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는 늘 제물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휘장을 찢으시고, 가시 울타리를 걷어내셨습니다. 원수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그분은 가시로 찔리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화목’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탈라소’(καταλλαγή)로, 서로 대립되던 관계가 다시 하나로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단순한 사과나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수였던 인간을 품으시기 위해 자기 아들의 생명을 대속물로 삼으셨다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도 이룰 수 없었던 화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 찔림과 죽음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 속에 하나님을 뵈는 자가 아니라, 화목하게 된 자로서 주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결론
로마서 5장 1-11절 말씀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가시’로 요약되는 인간의 절망을 ‘십자가’로 뒤집으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은혜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모두 가시로 둘러싸인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가시를 머리에 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찔리시고 피 흘리심으로, 구속의 길을 여셨습니다. 사랑은 고통을 지나야 진짜가 됩니다. 가시 위에 피어난 사랑,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이며, 그 사랑이 우리를 지금도 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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