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7. 4:1- 22 그는 생명의 회복자요 노년의 봉양자라
4:1- 22 그는 생명의 회복자요 노년의 봉양자라
1. 말씀 읽기
1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3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 12 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어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18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2. 묵상
아무개 신발을 벗다
보아스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나오미의 예상대로 보아스는 날이 밝자 곧바로 베들레헴 성문으로 가서 기업 무를 자를 기다립니다. 히브리 성경은 ‘그리고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다’고 표현함을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지금까지 보아스의 모습은 룻을 도와주는 수동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의 청을 듣고 갑자기 룻을 사는 능동적 주체로 변화됩니다.
성문은 모든 사람들이 지나는 곳이며 성문 안팎으로 시장이 형성됩니다. 우리나라 서울에는 아직도 동대문과 서대문 시장이 존재합니다. 성문은 외부인과 내부인이 만나는 곳이자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곳입니다. 고대에는 중요한 회의를 성문에서 했습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기 위해 타작마당으로 위험을 무릎 쓰고 내려갔습니다. 이제 보아스는 룻을 얻기 위해 성문으로 자신의 명예를 걸고 올라갑니다.
보아스가 성문에 앉아 얼마 있지 않을 때 ‘마침’(바힌네)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갑니다. 얼마나 절묘한 순간인지 모릅니다. 마치 온 우주가 보아스를 돕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그를 부릅니다.
“아무개여 이리와 와서 앉으라”
왜 아무개일까요? 사전을 찾아보니 이런 뜻입니다.
[대명사] 어떤 사람을 구체적인 이름 대신 이르는 인칭 대명사.
즉 이름은 구체적이지만 ‘아무개’는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룻기 기자는 왜 이름을 두고 ‘아무개’로 썼을까요? 단지 그의 명예를 감추어 주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이름을 부를만한 가치가 없어서일까요? 룻기에서 이름은 중요합니다. 고엘 제도는 죽은 자의 이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그가 룻을 거부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룻기 기자는 그의 이름을 가치 없는 존재인 ‘아무개’로 기록했을 수도 있습니다. 4:10을 보면 이것이 더욱 명확해 집니다.
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보아스는 ‘아무개’에게 룻과 결혼하여 죽은 자인 말론의 ‘이름’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것을 거절함으로 말론의 이름을 세우지 못합니다. 보아스는 다시 장로 열 명을 불러 증인으로 세웁니다.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보아스는 그에게 나오미가 엘리멜렉이 기업을 팔려하니 사라고 말합니다. 만약 사지 않으면 자신이 사겠다고 말합니다. 아무개는 즉각 ‘내가 무르리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오미가 더 이상 자손이 없기 때문에 그 땅을 사는 것으로 끝내리라 생각합니다. 보아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죽은 자의 기업을 받아 그의 이름을 세워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5절)
그 이야기를 들은 ‘아무개’는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고 말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소비하여 타인의 집을 세운다는 것이 실리적(實利的)으로 맞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손해 볼 것이 싫어 기업을 무르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상징적인 의무로 그는 자신의 신을 벗어 자신의 의무를 내려 놓습니다. 결국 보아스가 나오미의 죽은 남편 엘리멜렉의 밭과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아내로 맞이하기로 합니다. 보아스의 결정에 백성들과 장로들이 축복합니다.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렇게 하여 룻은 야곱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을 이룬 라헬와 레아와 같고, 유다에게 아이를 낳은 다말과 같은 복을 받으라고 축복합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오벳’이라 부릅니다. 오벳은 ‘섬긴다’는 뜻을 갖습니다.
나오미가 아이를 안다.
룻이 아이를 낳자 베들레헴 여인들이 나오미를 찾아와 축복합니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서도 축복합니다.
먼저 이 아이는 ‘생명의 회복자’입니다.
생명의 회복자(메세프 네페쉬)은 네게 생명을 돌아오게 하는 자란 뜻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풍족하게 나갔으나 비어 돌아오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다시 나오미를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한 이 아이는 ‘노년의 봉양자’입니다.
노년의 봉양자는 직역하면 ‘흰 머리를 먹이다’는 뜻입니다. 노년에 나오미를 배고프게 하지 않을 아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의 회복자와 노년의 봉양자를 삶의 맥락 안에서 정의하면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방 여인 룻을 통해 나오미의 삶이 역전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참으로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입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대하지도 않았고, 기대할 수도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충성스런 룻의 헌신은 나오미에게 생명을 안게 했고, 잃어버린 남편과 두 아들의 이름을 다시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벳은 역사 속에 길이 남아 다윗의 조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부록] 신을 벗는 행위
성경은 신을 벗는 행위에 대해 매우 의미 있는 상징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신은 크게 두 가지의 역할을 가집니다. 하나는 발을 보호하는 것, 다른 하나는 신분과 권리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신을 이야기하는지 살펴봅시다.
모세의 신 : 헌신과 섬김의 상징
가장 먼저 모세가 신을 벗는 장면입니다. 아마도 신을 벗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유일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모세가 신을 벗는 장면일 것입니다.
출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 부분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소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모세로 하여금 신을 벗게 합니다. 그 이유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땅에 신을 신지 못합니다.
이방 신전의 제사장들도 신전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고 신전에 들어갔습니다. 고대의 신들은 대부분 가죽이나 짚 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신 자체가 더러웠습니다. 또한 신을 신는다는 것은 독립적인 존재임음 드러내 냅니다. 여호수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수 5: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홍준기의 <리딩 스펙트럼1>에 보면 이런 표현도 나옵니다.
"19세기 인도에서 인도인은 영국인 사무실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었다. 반면 영국인 은 인도의 사원에 갈 때도 구두를 벗으려 하지 않았다. 신을 신는다는 건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 짓는 상징적 행위로 간주됐다."
신은 지배자만이 신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자신을 지배하는 자 앞에서 신을 벗어야 했습니다. 신을 벗는 행위는 자신을 그 지배자에게 종속 시키는 행위입니다.
룻기, 기업을 무르지 않을 때 : 권리를 양도
두 번째 장면은 룻기에 있습니다. 일반 자료에는 표기하지 않은 곳이 많은 데 중요한 본문 중의 하나입니다. 보아스가 룻의 청을 듣고 기업 무를 자를 찾아가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그는 기업을 무를 것이라고 하지만 룻과 결혼해 그 집에 대를 잇게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합니다. 그는 포기하는 행위로 자신의 신발을 벗습니다.
"7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룻 4:7.8)
룻기에 나오는 신 벗는 행위는 자신의 의무를 벗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모세가 신을 벗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부여됩니다. 신발은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을 벗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 됩니다.
마음의 비통함과 슬픔의 표시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비참한 마음으로 성을 나선다. 맨 발로 감람산 길로 올라간다.
삼하 15: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급하게 도망가서 신을 신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신을 신을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신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 슬픔을 멈추라 말하고 신을 신도록 명령합니다.
겔 24:17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자유민 또는 부의 상징
고대의 세계에서 신발을 신는 행위는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자유민이나 귀족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노예들은 신을 신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는 집으로 돌아갈 때 신을 신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신을 신기라고 말합니다. 집을 나갈 때는 신을 신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재산을 탕진하자 신도 신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눅 15:22-23)
사명과 소명을 상징
신을 신는 행위는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사명을 받을 때 신을 신습니다. 전투에 나갈 때 특히 신을 신고 전쟁에 임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 또한 신을 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여행을 보내기 전 신발을 신도록 합니다.
엡 6: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막 6:8-9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막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성경 속에 나타난 신이나 신을 벗는 행위는 몇 가지를 뜻한다.
1. 하나님 앞에서 죄인, 또는 초라한 자로 드러남
2. 상대방을 존중하고, 섬김의 대상으로 대할 때
3. 가난하거나 궁핍의 상징
4. 극한 슬픔이 상태
5. 소유권을 포기할 때
6. 여행을 떠날 때-사명을 위해
7. 지위와 신분을 드러냄
룻기 묵상집 출간되었습니다.
진즉에 했어야 했지만 저의 게으름으로 이제야 원고를 손보고 보강하여 전자책으로 묶었습니다. 히브리어 폰트는 블로그 상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PDF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에레츠 북스]에서만 구입이 가능합니다. 다음주면 일반 인터넷 서점에서도 구입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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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묵상
정현욱 저
절대 절망의 시대에 절대 희망을 만들어낸 보아스와 룻. 숨어서 그들을 기꺼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룹니다. 설교자를 위한 묵상 집으로 모두 십 회에 걸쳐 묵상하도록 꾸몄습니다. 룻기를 깊이 읽기 원하는 분들과 룻기
[목차]
들어가면서
1. 1:1-5 우리의 인생은 무엇인가?
2. 1:6-14 하나님께로 가는 길(1)
3. 1:15-23 하나님께로 가는 길(2)
4. 2:1-13 사랑은 겸손의 계곡에 피어나는 백합화로다
5. 2:14-23 버려라, 마음껏 버려라
6. 3:1-9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7. 3:10-18 그가 쉬지 아니하리라
8. 4:1-9 아무개 신발을 벗다
9. 4:9-17 생명의 회복자
10. 4:18-22 베레스의 계보
마치면서
부록
판권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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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4. 2:1-13 사랑은 겸손의 계곡에 피어나는 백합이로구나 (0) | 2018.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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