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은혜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말씀묵상] 마6:1-4
은혜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가 포용하는 것이라면, 은혜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행한 것을 스스로 기억하고 남들이 기억해 주기를 원합니다.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보십시오. 그곳에는 ‘내가 이렇게 수고했으니 칭찬을 해 주어야 합니다.’라는 자신의 선한 행위와 수고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이 나의 선한 행위를 기억해 주지 않으면 서운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은 아닙니다. 내가 나의 수고를 기억하는 것도, 남이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올바름은 ‘내가 남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 즉 기억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헌신적인 수고는 쉽게 망각하면서 나의 사소한 봉사는 기억해 주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산상수훈이라 부르는 곳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5에서 7장까지의 내용인데, 이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천국백성의 헌장 또는 헌법과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 보면 ‘잊어버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6:3입니다.
마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이 말씀은 설교에서도 많이 듣고 우리가 자주 읽는 친숙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오른손과 왼손은 한 지체이기 때문에 서로 모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지의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오른손은 중요한 곳을 상징하고 왼손은 하찮은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른 즉 중요한 것을 할 때는 사소한 왼손과 같은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뱁새가 황새의 뜻을 알 수 없듯, 왼손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의 문화에 의하면 오른손은 중요한 손이고, 왼손은 하찮은 손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본문을 해석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 무슨 뜻일까요?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죠. 앞 뒤 문맥을 살펴보면 위의 구절이 분명해집니다. 바로 앞부분인 5:43-48까지는 원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선인과 악인에게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려 주시듯 차별 없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구분 짓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권면이 있을 후에, 본문의 말씀이 따라옵니다.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면 우리는 곧바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란 말씀입니까?
6:1-4까지는 사랑의 방법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1절에서는 '사람에게 보이지 말라'고 하시고, 2절에서는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표현이 다를 뿐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애씀과 선함을 보이고 싶어 합니다. 혹여나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하기도하고 억울해 합니다. 그러나 동일하게 하나님은 사람이 보면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한다고 하시고, 만약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면 이 땅에서 이미 상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3절인데,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모르게, 즉 은밀하게 해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를 리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아직도 중동 사람들은 오른손을 귀중하게 여깁니다. 어떤 한국분이 중동 지역에서 가서 악수를 했는데 하필 왼손으로 했다고 합니다. 왼손잡이 인지라 자신도 모르게 왼손이 나온 것입니다. 중동 사람은 왼손을 내밀자 굉장히 불쾌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들은 오른손으로는 중요한 사람과 교제와 환영의 악수를 하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왼손으로는 굳은 일이나 특히 변을 볼 때 반드시 왼손으로 닦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화장지가 없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을 변을 닦습니다. 물로 헹구기는 하지만 왼손은 불결하고 하찮은 것을 상징합니다. 오른 손과 왼손이 하는 일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고, 서로 간섭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래된 전통과 관습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무의식중에 행하고 실천합니다. 즉 오른 손으로 악수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악수하면 바로 오른 속이 나가는 것입니다. 왼손이 하는 일도 마찬 가지입니다. 이처럼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고, 왼손이 하는 일도 오른 손이 알지 못합니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죠. 사람은 당연한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일상 속의 평범한 것을 일일이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말은 당연한 것이므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구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것이고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일상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군가 알아주기 위해 구제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정말 이러한 해석이 옳은가를 다른 구절에서 찾아봅시다.
양과 염소의 비유로 알려진 마태복음 25:31-46입니다. 이곳에 보면 종말의 때에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느네 되었을 때 영접했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돌아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그랬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뭔가 잘 못 아신 것 같습니다.”
임금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맞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선행과 헌신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잊어버렸습니다. 왜일까요?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사소한 것이었고,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기억하는 이는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은혜로운 망각이라고 부릅니다. 은혜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수고뿐 아니라, 타인의 허물과 부족함까지도요. 우리는 아직도 나의 수고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습니까? 남이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라기보다 남을 먼저 기억해주는 것은 어떨까요? 예수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의 죄가 감추어지고, 잊어버리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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