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죽음 (창50:15-26)
요셉의 죽음
창50:15-26
도입,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저는 오늘 요양병원을 심방하면서 재미난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할머니들이 침대에 앉아서 화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거울을 바라보면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얼마남지 않는 시간을 망각한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거부하고 영원한 청춘으로 남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삶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삶의 아름다움이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테헤란에서의 죽음’입니다.
한 돈 많고 권력 있는 페르시아 사람이 어느 날 하인과 함께 정원을 산택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인이 비명을 지르면서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고 했다.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말 중에서 가장 빠른 말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 말을 타고 오늘 밤 안으로 갈 수 있는 테헤란으로 도망치겠다고 했다. 주인은 승낙을 했다.
하인이 허겁지겁 말을 타고 떠났다. 주인이 발길을 돌려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죽음의 신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주인이 죽음의 신에게 물었다.
“왜 그대는 내 하인을 겁주고 위협했는가?”
그러자 죽음이 신이 대답했다.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늘밤 그를 테헤란에서 만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그가 아직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했을 뿐이지요.”
이 예화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죽음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가 되었고, 누구나 죽어야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난다’까지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삶을 너무나 비극적으로 바라보는 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한 사람의 죽음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셉이라는 걸출한 인물입니다. 구약에서 요셉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가깝게 보여주는 인물도 없습니다. 사랑받는 아들의 위치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배신과 버려짐의 고통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가장 확실하게 체험한 인물입니다. 우리가 요셉에게 놀라움과 경이를 표시하는 이유는 절대절망의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는 자신을 죽이려하고, 인신매매로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하며 그들을 위해 자신이할 수 있는 최선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 살아갈 삶의 방향과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요셉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가야할 삶의 지도를 그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 형들을 위로하는 요셉
15절을 보면 야곱의 죽음 이후 형들에게 큰 근심하나가 생겼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형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않을까” 형들은 아버지가 죽자 더 이상 걸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요셉이 자기가 가진 권세를 이용해 자신들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수심이 있습니다. 지금은 약하고 힘이 없지만 다음에 권력을 가지게 되거나 부를 갖게 된다면 누구나 복수하려합니다. 형들도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요셉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버지는 죽었지만 아버지의 유언은 남았으니 아버지의 유언을 들먹이며 요셉에게 보복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창] 50: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창] 50: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런데 요셉의 형들의 이야기를 듣고 ‘울었’습니다. 요셉이 울었다는 소식을 들은 형들은 이제 종을 보내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찾아와 ‘엎드려’(18절)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형들이 엎드렸다는 말을 좀더 생각해 봅시다. 처음 형들이 요셉에게 엎드렸다는 말을 요셉의 꿈속이었습니다. 형들은 꿈 이야기를 듣고 요셉을 죽이려했고, 진짜로 죽인 거나 다름없는 행위를 했습니다. 구덩이에 빠뜨려 굶겨 죽이려했다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22년 후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은 애굽의 총리에게 절을 했습니다.
[창] 42: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22년 전 그들은 어떻게 요셉을 대했습니까? 창37:19-2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37: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창] 37: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을 결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사랑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을 무시하고 인간 취급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적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떻습니까? 그들은 스스로 요셉을 찾아와 엎드려 절을 하고 있습니다. 형들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고, 죽음의 공포로 인해 정신을 놓고 말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의 모습은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요셉은 어떻게 복수심을 극복했는가? 어떻게 형들을 용서했는가?
[창]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창]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영적 리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사소한 복수심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친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멀리하는 사람은 결코 영적리더의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해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간구했습니다.
눅 23장 34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하나님은 왜 요셉을 사용했는가?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르지만 하나님의 한 백성이고, 아버지의 자녀라는 그 이유만으로 그들은 안았고 포용했습니다. 요셉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이었습니다. 신명기 32:35에면 ‘보수’ 복수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인간이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 32장 35절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이것의 요셉의 생의 말미에 보여준 영적 교훈입니다. 13세기 피렌체의 천재 시인 단테를 복수하려는 증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증오, 그것은 지옥을 건축하는 가장 탁월한 재료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수하고 싶은 증오심을 참는 한 번의 침 삼킴입니다. 사막의 베두인들에게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료는 증오의 소리가 입 안에서 솟구칠 때 그것을 꾹 삼키는 침이다.”
2. 언약을 전승하라.
요셉이 위대한 믿음의 족장이 이유는 다음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24-25을 봅시다.
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인간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죽음을 평범한 죽음으로만 끝내지 않고 죽음으로 믿음의 유산을 전승하며, 하나님의 백성됨의 정체성을 후예들에게 일러 주고 있습니다. 즉 “비록 우리가 지금은 여기 살아도 이곳은 영원한 곳이 아니다. 우리가 가야할 또 다른 곳이 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인데. 그 때가 되면 나의 뼈를 추려 가나안땅에 가지고 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출] 13:19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수] 24:3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 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요셉이 죽고 약 450년이 흐른 뒤, 하나님은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이것을 보았고, 자신의 유언에 그것을 남겼습니다. 랜디 알콘은 <돈 소유 영원>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부모가 물려줄 것은 신앙이다. 당신의 영적 유산이 자녀 세대를 거쳐 계속 흘러가게 하라.”(5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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