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조심, 세 번 걸러라.
말 조심, 세 번 걸러라.
이해인 수녀는 '언어를 위한 기도'란 시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라고 말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하이덱거의 말을 빌리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존재는 언어를 통해 나타나고 표현된다. 언어가 곧 존재이다. 4.11에 치러진 선거에서 김용민 후보의 막말이 화제가 되었다. 그가 전에 몸 담았던 나꼼수는 욕설로 시작하여 욕설로 마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욕이 난무하다. 이러한 언어의 천박함은 학교에서도 무너진지 오래 되었다. 몇 달전 조선일보 기사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언어 사용 실태를 읽은 적이 있다. 예전에 욕은 불량한 학생이나 질이 낮은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막론하고 욕을 한다고 한다. 욕의 전성시대가 된 것이다. 욕의 본질은 저주다. 욕의 대부분은 성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이며 일부분은 저주로 되었있다.
언어 파괴는 곧 정신의 파괴를 뜻하며, 머지않아 도덕의 파괴를 예건하고 있다. 언어와 행위는 결코 다르지 않다. 생각이 언어가 되지만,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언어는 그 언어가 그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충청도 사람들은 말이 느리다. 그런데 재미나에게도 행동도 느리다. 경상도 사람들은 말이 굉장이 빠르다. 역시 행동도 빠르다. 말이 행동을 지배하고있는 증거이다.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다. 미국의 경우도 브리틴 영어에 가까운 동부는 느리고 투박한 느낌이 든다. 동부 사람들은 서부 사람들에 비해 행동이 느린 편이다. 반대편의 서부는 말이 빠르고 연음이 많은다. 행동도 빠르고 연속적인 경우가 많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존재가 규명되고 규정된다. 말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해야 한다. 옛 속담에도 말의 실수를 엎지러진 물로 비유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한 번 한 말은 주워담기 힘든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말'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말이 곧 존재이다. 존재는 곧 말로 표현되며, 행위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막말이 유행하고 퇴폐적이고 저주의 말이 사람들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언행일치의 삶을 통해 자신이 말한 것을 책임지고 말의 실수가 없도록 재고하고 숙고해야 한다. 특히 성도의 언어생활은 세속적인 언어와 구별되어야 하고 덕을 세우는 언어 이어야 한다. 야고보사도는 한 샘에서 쓴물과 단물이 날 수 없는 것처럼 성도의 입에서 하나님 찬양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형제를 저주하는 말이 함께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해인 수녀의 말을 다시 빌리면 말은 씨와 같아서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앗이 열매를 맺어 우리 앞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사도바울은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권면한다. 저주는 저주의 열매를 낳고, 축복은 축복을 낳게 되어있다. 그러니 말 조심이야 말로 성도의 가장 중요한 경건의 습관이어야 한다.
아래는 이동엽신부, 잊혀진 질문(77쪽)에 나오는 말에 대한 예화이다. 우리의 언어생활을 성찰하자.
하루는 소크라테스의 친구가 찾아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보게 소크라테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방금 내가 밖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나? 아마 자네도 들으면 깜짝 놀랄거야. 그게 말일세······.”
소크라 테스가 친구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게. 자네가 지금 전하려는 그 소식을 체로 세 번 걸렀는가?”
“체로 세 번 걸렀냐고? 대체 무슨 체를 말하는 건간?”
“첫 번째 체는 진실이네. 자네가 지금 전하려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아니, 뭐. 그냥 거리에서 주워들었네.”
“그럼, 두 번째 체로 걸러야겠군. 자네가 전하려는 내용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선의에서 나온 말인가?”
친구는 우물쭈물하며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체로 걸러야겠네. 자네를 그토록 흥분하게 만든 그 이야기가 정말 중요한 내용인가?”
“글쎄······, 뭐 그다지 그런 것 같진 않네만······.”
“사실도 아니고, 선의에서 비롯된 마음에서도 아니고, 더구나 중요한 내용도 아니라면 나에게 말할 필요가 없네. 그런 말은 우리의 마음만 어지럽힐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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