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연구] 아브라함(4) 롯과 헤어지다
[성경인물 연구]
아브라함(4) 롯과 헤어지다
1) 다툼이 일어나다
애굽에서 사라를 빼앗기고 수난을 겪었던 아브라함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롯과 헤어지게 된다. 그들이 겪는 문제는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13:2)했기 때문이다. 2절에서는 아직 갈등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문제가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사라로 인해 애굽 왕 바로에게 많은 것을 얻었다. 이것은 롯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자신의 재산의 일부를 나누어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많은 재산은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더 이상 함께 동거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돌아오자 가장 먼저 전에 장막 치던 곳, 그가 처음 제단을 쌓은 곳(비 12:8)에서 거한다. 이 표현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다른 표현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표현은 아담이 셋을 낳은 후이다.
창 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2)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게 된다. 아브라함은 조용히 롯을 불러 한 친족이니 다투지 말자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주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한다.
롯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아브라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요단 지역을 바라본다. 그곳을 보니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표현한다.(3:10절) 결국 롯은 요단 온 지역을 선택하고 동으로 옮겨 간다.
성경에서 동쪽은 저주 받은 곳으로 자주 이야기 된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의 동쪽으로 갔고, 가인도 동쪽으로,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도 동쪽으로 간다. 후에 동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앗수르와 바벨론이 위치하는 곳이다. 요단들은 가축을 기르기에 적합했지만 악인들이 거주하는 땅이다.
창 13: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롯의 선택을 통해 몇 가지는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롯은 가족보다 가축을 먼저 생각했다.
이것은 요단들에 물이 넉넉하다는 10절의 표현을 통해 드러난다. 목자들이 다툰 이유는 물 때문이다. (이 부분은 필자의 <유배자의 관점에서 본 시편 23편>을 참고 바람)
둘째, 아브라함의 신앙이 맘에 들지 않았다.
롯의 관점에서 아브라함은 답답하다. 그는 하나님만 예배하며 가축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아브라함이 싫었다. 고리타분하고 즐길 줄 모르는 사람으로 본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그가 마침내 소돔까지 이르렀다는 12절을 통해 명백해 진다.
창세기 안에서 ‘떠난다’는 의미는 장소적 의미만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으로부터 떠난다는 말과 상당히 일치한다. 후에 롯은 완전히 아브라함을 떠나 모암과 암몬의 조상이 된다. 이스마엘는 이삭을 떠나고, 에서는 야곱을 떠난다. 떠남으로 새로운 민족의 조상이 되지만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가 만들어진다.
3)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여호와
롯이 떠난 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다. 그리고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하신다. 이 표현은 동쪽만 바라보았던 롯과 비교된다.
롯 :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니 ... 동으로 옮기니... 큰 죄인이었더라(10-11절)
아브라함 : 눈을 들어 ..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14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아브라함은 롯의 떠난 사건을 충격적으로 받았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심적으로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언약을 다시 말씀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12장의 언약과 비교하면 언약이 구체화되고 있다. 12장에서는 ‘큰 민족’으로 말하지만 이곳에서는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13:16)하신다고 약속한다. 땅의 언약도 ‘내가 네게 보여줄 땅’(12:1)이지만 13장에서 동서남북과 ‘주리라’는 약속을 추가한다.
“14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주리라’는 약속은 첫 언약 때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한 후 인 7절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가나안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는 진정‘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간략한 도표로 그리면 이렇다.
12장 | 13장 |
큰 민족 | 땅의 티끌 |
네게 보여줄 땅 | 동서남북. 주리라 |
우리는 아브라함과 롯의 헤어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출애굽의 관점에서 본다면 롯의 모암과 암몬 자손의 조상이라 것과 그들과 싸우지 말아야할 이유를 알려 주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브라함과 다투듯이 이스라엘과 다툴 것이고 아브라함을 버리듯이 이스라엘을 버릴 것이다. 이것은 좀 더 후에 일어난다.
[묵상한 주제]
1. 다투지 않고는 살 수 없었을까?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이 가진 풍부한 가축과 소유 때문입니다. 부유함과 풍부함은 안정과 평안을 줄 것 같지만 다툼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재산으로 다투는 가족보다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에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툼의 이유를 분명히 안다면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툼이 없는 완전한 삶을 꿈꾸지만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크고 작은 다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삶은 갈등의 연속입니다. 이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브라함은 선택권을 롯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성품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롯이 어떤 선택을 해도 아브라함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오직 보이는 물질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았고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일이며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일어날 때 실리(失利)만을 따르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에 있다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멀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약속이 있고, 언약이 존재합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의 언약 속에 있음을 기억하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보이는 현상만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고, 그 언약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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