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통독 일기] 성경 통독이 주는 유익에 관하여
[성경통독 일기] 성경 통독이 주는 유익에 관하여
2017년 9월 22일
오늘부터 성경 읽기를 시작했다. 창세기부터 천천히 읽어 나갈 참이다. 오늘은 29장까지 읽어 나갔다. 목사이면서 성경을 잘 읽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읽지 않는다는 표현보다는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읽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으로 통독해 나가는 것은 더 중요하다. 반복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깊이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준 프리셒트 성경으로 읽고 있다. 나는 본래 NIV 한영성경으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영어와 한글 성경을 함께 읽으면 편하다. 혹시 한글로 번역이 모호한 부분을 영어로 찾으면 뜻이 명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영어 성경이 명확한 이유는 단어에 있기보다 문법의 구조 때문으로 보인다. 영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을 따른다. 그러나 한글은 주어와 목적어가 먼저 나오고 동사, 즉 서술어가 뒤에 이어진다. 히브리어도 영어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순서를 가진다.
창세기는 익숙하다. 창조와 타락, 살인과 홍수, 바벨탑과 족장 시대가 이어진다. 어제는 문득 전통적 관점인 출애굽기는 모세가 기록했다면, 출애굽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잡신을 섬기는 애굽에서 수백 년을 살아온 이스라엘에게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은 지식 자체가 기적이다. 그 하나님이 자신들의 조상과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인 것이다. 신들의 신이고, 유일하신 신이다. 또한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창세기는 시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끝도 있다. 홍수의 심판이 그렇고, 바벨탑과 그 외의 자잘한 사건들도 끝을 보여준다. 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공의의 모습도 보인다. 시작과 종말, 삶의 여정이 버무려진 곳이 창세기다. 창조의 하나님은 거룩한 족보를 통해 세상을 보호하신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심판을 받고 종말을 맞이한다. 요나의 시작도 결국 실패하고, 다시 아브라함을 통해 새로운 나라가 시작된다. 아직 그 나라는 진행 중이다.
통독은 세세한 사건에 주목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과 진행을 이해하는 데 유리하다. 보통보다 빠르게 성경을 읽어가니 대수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 작은 사건들은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그러나 전체 역사의 흐름은 강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보인다. 이것이 통독이 주는 맛이다. 숲속에서는 길을 잃기 쉽다. 그러나 산 정상에 오르면 방향이 잡히고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잘 보인다. 통독은 산 위에 올라 보는 것과 같다. 이것이 대수의 법칙이다. 통독의 유익은 세밀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이들에게 넓은 의미의 답을 줌으로 현재의 사건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릴 적 이해하지 못한 것을 나이가 들어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일단 궁금한 것 몇 가지 질문은 남겨 두자.
1. 창조는 왜 지구에 대한 것만 한정할까?
2. 왜 남자와 여자를 한 번에 만들지 않고 따로 창조했을까?
3.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왜 내버려 두었을까?
4.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제사 제도를 알았을까?
5. 사람들의 수명과 가인과 셋의 족보는 무슨 의미일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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