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3:1 - 13:14 강해설교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열망과 경외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역대상 13장입니다. 이 본문은 다윗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열망으로 시작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벧에돔의 집에 궤가 머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적인 교훈을 주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영광스러운 계획의 출발(역대상 13:1-4)
본문을 읽어 봅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온 지도자들과 의논하여 하나님의 궤를 다시 모셔오자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울 시대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궤를 돌보지 않았다는 반성이었습니다(역대상 13:3). 여기서 ‘돌보다’는 히브리어로 ("darash", דָּרַשׁ)인데, 이는 단순히 관리하다의 의미를 넘어서 ‘열심히 찾다, 구하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다윗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궤를 옮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갈망하고 회복하려는 영적 열정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시도는 매우 고무적인 출발이었습니다. 전 이스라엘이 함께 이를 찬성하며 하나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하나로 모인 그 순간은 참으로 아름답고 이상적인 영적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좋은 의도만으로 하나님의 일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중요한 구속사적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합리적 시도, 그러나 경외함이 결여된 운반(역대상 13:5-8)
다윗과 백성들은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옮겨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문제가 됩니다. 그들은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옮기는데,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궤를 돌려보낼 때 사용했던 방식이었습니다(사무엘상 6:7 참조).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식은 레위인들, 특히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것이었습니다(민수기 4:15).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적 열심에 불과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존 칼빈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떠난 인간의 열심은 무질서이며,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있었지만, 경외함과 율법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진정으로 그 뜻을 분별하고, 그분이 정하신 방법과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경외입니다.
웃사, 경건한 실수인가 불경한 무지인가(역대상 13:9-10)
운반 중에 소들이 뛰매 웃사가 궤를 붙잡습니다.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임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이 사건은 인간적으로는 매우 안타까워 보입니다. 궤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댄 행동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건을 ‘범함’(히브리어: ("shal", שָׁל))으로 간주하셨고, 이는 무지나 실수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불경함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궤는 거룩한 것이며, 어느 누구도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율법의 명백한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4:15). 웃사는 그 명령을 알고도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했던 것이며, 이는 인간 중심의 판단이 하나님의 거룩을 침범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에게 은혜이지만 동시에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친숙함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거룩을 경시할 때, 하나님은 그 경계를 분명히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단순히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다윗의 두려움과 방향 전환(역대상 13:11-14)
웃사의 죽음을 본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는 즉시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계획을 중단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임시 보관합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yare’", יָרֵא)로, 경외의 마음, 즉 인간적 두려움을 넘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앞에 서는 경외심을 뜻합니다.
다윗의 이 반응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태도를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경외는 은혜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결국 오벧에돔의 집에 궤가 머무는 동안, 그 집에 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시지만, 동시에 복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경외함 속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은혜가 뒤따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여러분, 역대상 13장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명확한 구속사적 메시지를 줍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다윗의 열심은 귀했지만, 방법이 어긋날 때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에 도전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아무나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질서를 따라야만 비로소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웃사의 죽음은 우리에게 경고입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의 복은 우리에게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시는 자는 경외함과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성령을 사모할 때, 예배의 거룩을 지키고 말씀의 질서를 따라야 그 임재가 복이 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모합니까? 그 사모함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는 진실한 경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궤가 우리의 삶과 공동체 가운데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바르게 나아갑시다. 그분은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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