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한계시록 4장 묵상 강해설교

샤마임 2025. 4. 30.
반응형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요한계시록 4장은 이제까지의 교회들에 대한 메시지에서 시선을 돌려, 하늘의 장면으로 독자를 인도합니다. 이 장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구조와 흐름에서 전환점이 되는 본문이며, 땅의 혼란과 박해, 불완전함을 넘어서 하늘의 질서와 거룩,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여전히 보좌에 앉아 다스리신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그 위에 계신 분은 주님이시며, 그 앞에서 모든 예배와 경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이 본문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고,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길 바랍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들린 음성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라는 말씀은 1-3장의 교회에 대한 메시지를 마친 후, 전혀 새로운 비전을 소개하는 전환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하늘에 열린 문”은 단순한 환상의 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하늘의 실제적 통치와 예배를 계시하시기 위한 출입구입니다. 헬라어로 “문”(thura)은 실제적인 문 이상으로, ‘접근과 허락’의 상징입니다.

이어지는 음성은 1장에서 들은 “나팔 소리 같은” 동일한 음성입니다(계 1:10). 이는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권위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출애굽기 19장에서 시내산에 임한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초대는 단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요한이 보아야 할 더 깊은 계시로의 초청입니다. 주님은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마땅히’(dei)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반드시 일어나야 할 사건들로,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섭리적 필연성을 내포합니다.

하늘의 보좌와 보좌에 앉으신 이 (4:2-6a)

요한은 즉시 성령에 감동되어(4:2)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게 됩니다. 이 보좌는 헬라어 ‘thronos’로, 단순한 좌석이 아니라 권세와 통치의 상징입니다. 하늘 보좌는 단지 신화적 이미지가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주권의 중심입니다. 다니엘서 7장의 환상과 이사야 6장의 장면에서도 보좌는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주는 핵심 상징입니다.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는 “보좌에 앉으신 이”로 표현되며, 이는 하나님 아버지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보석 같은 광채로만 언급됩니다. “벽옥과 홍보석”(4:3)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을 암시합니다. 또 보좌 주위에는 “무지개가 있어 에메랄드 같이 보이더라”고 합니다. 무지개는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이 인류와 세우신 언약의 표징으로 등장하며, 여기서는 하나님의 언약 신실성과 자비의 속성을 상기시킵니다.

보좌 주위에는 24 보좌가 있고, 거기에는 24 장로가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4:4). 이들은 구약의 12 지파와 신약의 12 사도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그들의 흰 옷은 의로움과 성결을, 금관은 이긴 자에게 주시는 상급을 나타냅니다. 이는 요한계시록 2-3장에 주신 이기는 자들에 대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는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옵니다(4:5). 이는 출애굽기에서 시내산에 임하신 하나님을 떠올리게 하며, 거룩한 두려움과 권능의 상징입니다.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켜져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소개됩니다. 이는 성령의 충만성과 완전성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하나님 보좌 앞에 계시는 성령님의 능동적인 사역을 나타냅니다.

또 보좌 앞에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펼쳐져 있다고 합니다(4:6). 이는 고대 근동에서 바다가 혼돈과 두려움의 상징이었음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펼쳐진 유리 바다는 모든 두려움과 혼돈이 정복되고 평온하게 된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통제 아래 있는 세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표현된 장면입니다.

네 생물의 찬송과 천상의 예배 (4:6b-11)

보좌 가운데와 주위에는 네 생물이 있습니다. 이 생물들은 각각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여섯 날개를 가졌고 눈들이 가득하다고 묘사됩니다(4:6b-8). 이는 에스겔서 1장과 이사야 6장에서 등장한 천사들의 모습과 유사하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대표하는 존재들로 해석됩니다. 사자는 맹수의 대표, 송아지는 가축의 대표, 사람은 이성적 피조물, 독수리는 날짐승의 대표로, 전체 창조 세계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이 생물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고 찬양합니다(4:8). 세 번 반복된 "거룩하다"는 히브리어 문법에서 최고의 강조 방식이며,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이 고백은 시간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며, 하나님의 영원성과 변함없음을 선포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이 찬양을 들은 24 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예배하며, 자신들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내려놓습니다(4:10). 이는 자신들의 모든 영광과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오직 그분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4:11).

여기서 “합당하다”(axios)는 법적 용어에서 유래한 말로, 존귀와 찬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으심을 받았다”(ektisthēsan)는 과거 완료형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유효한 능력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창조 질서를 유지하시고 그 안에 계신 살아 있는 주님이십니다.

결론

요한계시록 4장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웅장한 예배 장면 중 하나로, 모든 성도가 예배의 본질을 다시 회복하도록 초대합니다. 땅의 교회가 고난과 유혹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늘에서는 끊임없는 예배가 울려 퍼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여전히 보좌 위에 계십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며, 우리는 그분 앞에 영광과 존귀를 돌릴 책임이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하며, 그 앞에 면류관을 내려놓는 겸손한 헌신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이 하늘의 예배와 조화를 이루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 장별요약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