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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강해 5~8절 나그네를 환대하라

샤마임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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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하여 형제들을 섬기는 삶

요한삼서의 중반부인 5절부터 8절까지의 본문은 가이오의 삶 속에 드러난 구체적인 신앙의 실천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단지 교리를 가르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성도가 진리 안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본문은 순회 선교사들을 향한 가이오의 환대와 헌신을 중심으로, 복음 사역을 위한 동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 타인을 섬기는 삶이 얼마나 복되고 의미 있는지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기를 원합니다.

 

진리 안에서 드러난 사랑의 실천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5절). 이 말씀은 단순한 칭찬 이상의 깊은 주해가 필요한 본문입니다. 요한은 가이오가 형제들에게 보여준 행동을 '신실한 일'(πιστὸν ποιεῖς, piston poieis)이라 부르며, 그 행위의 성격을 영적 차원에서 조명합니다. 여기서 '신실한'이라는 형용사는 단순히 성실하다는 뜻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과 일치하는 참된 행위임을 의미합니다. Pistos는 신약 전체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되어 자주 사용되는 단어로, 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은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이라는 표현은 초대교회의 선교 현실을 반영합니다. 당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각 지역을 순회하던 선교사들은 자신을 영접해주는 지역 교회의 후원에 의지해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가이오는 그들을 단지 잠시 머무는 손님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형제로 대하며 성심껏 섬겼습니다. 이 모습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교훈을 실제로 실천한 삶의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나그네 된 자들에게 식탁을 베풀고, 필요를 채우며, 안전한 거처를 제공하는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증언과 인정

6절에서는 형제들이 교회 앞에서 가이오의 행위를 증언하며, 요한도 이를 인정하고 칭찬합니다.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잘 하겠도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는 "합당하게"이며, 원문에서는 axios tou theou로 번역됩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나님께 합당한 방식으로'라는 뜻이며, 이는 단순히 예의 바른 전송이나 작별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에 일치하는 태도로 사역자들을 대하고, 그들을 마치 하나님을 대하듯 정중히 섬기고 배웅하는 삶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원리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사역은 곧 사람을 향한 섬김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점입니다. 초대교부 클레멘스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먼저 형제를 존귀히 여기며, 그 삶을 돕는 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이 원리를 강조하며, 교회가 사역자들에게 단순한 동정을 넘어, 하나님을 위한 파송자로서의 태도를 지녀야 함을 권면합니다. 또한 '전송한다'(προπέμψῃς, propempsēs)는 단어는 단지 인사를 하며 보내는 의미가 아니라, 물질적 지원과 기도로 그 여정을 책임지는 동역의 개념을 내포합니다. 이는 사도행전에서도 사용되며, 바울이 선교지로 떠날 때 교회가 함께 기도하며 지원했던 모습과 일치합니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들

7절은 선교사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사역 동기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 구절은 복음 사역의 순수성과 헌신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ὑπὲρ τοῦ ὀνόματος, hyper tou onomatos)라는 표현은 그들의 사역 목적이 자신의 유익이나 명예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권세 전체를 상징합니다. 곧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복음의 권위에 붙들려 사역의 길을 나섰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는 구절은, 그들이 사역에 있어서 재정적 의존을 세상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복음이 상업적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신중한 태도였으며,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과 교회의 섬김 안에서만 채우려는 믿음의 결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요한은 이를 통해 교회가 이 사역자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동역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오직 믿음과 헌신, 그리고 공동체의 협력 안에서만 온전히 전파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교부들은 이 본문을 인용하며, 교회의 재정은 복음을 위해 헌신된 자들을 위해 흘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진리의 동역자가 되는 복

8절은 이 짧은 단락의 결론처럼 주어집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마땅하다'(ὀφείλομεν, opheilomen)는 표현은 단순한 권고를 넘어 도덕적, 신앙적 의무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순회 사역자들을 영접하고 섬기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복음 공동체로서 반드시 감당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러한 영접을 통해 우리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συνεργοὶ τῇ ἀληθείᾳ, synergoi tē alētheia)가 된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가장 아름다운 호칭 중 하나로, '동역자'라는 단어는 사도 바울도 자주 사용했던 표현입니다. 단순히 재정 후원자, 물질적 제공자를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사는 인생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곧 신앙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말입니다. 예배만 드리는 신자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땀 흘리는 동역자, 진리를 위해 헌신하는 협력자가 되라는 부름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을 넘어서, 말씀을 따라 섬기고, 행하며, 함께 그 진리의 일을 감당하길 원하십니다.

결론

요한삼서 5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단순히 가이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주어진 사명에 대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말할 뿐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며, 복음을 위해 나아가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섬기고 동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은 곧 형제를 위한 헌신 속에서 구체화됩니다. 진리의 일에 참여하는 자, 하나님을 위한 동역자가 되는 삶은 우리가 붙들고 실천해야 할 복된 길입니다.

요한3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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