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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삼서 강해 11~12절 데메드리오의 선한 증거

샤마임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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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본을 따르고 진리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

요한삼서의 11절과 12절은 앞선 디오드레베의 부정적 사례와 분명한 대조를 이루며, 신앙 공동체 내에서 본받아야 할 참된 모범과 기준을 제시합니다. 앞에서 디오드레베가 진리를 거스르고 교만과 권력으로 교회를 어지럽혔다면, 이제 사도 요한은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을 통해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동시에, 그는 수신자인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는 분명하고 단호한 권면을 줍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를 넘어, 성도의 삶의 방향과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무엇이 참된 선이며 어떻게 선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지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배우게 되기를 원합니다.

 

선을 본받고 악을 멀리하라는 명령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느니라"(11절). 사도 요한은 이 구절에서 수신자인 가이오를 ‘사랑하는 자여’라 부르며 다시 한번 친밀한 목소리로 권면합니다. 그가 악과 선에 대한 선택을 촉구하며 사용하는 표현은 단순히 감정적인 당부가 아닙니다. ‘본받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mimeou로, ‘모방하다’, ‘따르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단순한 동조를 넘어 적극적인 삶의 모양과 방향을 닮아가라는 뜻입니다. 이는 ‘선’과 ‘악’이라는 구체적 삶의 태도와 연결되며, 단순한 분별이 아닌 실제적인 모방과 따름의 행동을 요청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선'(ἀγαθόν, agathon)과 '악'(κακόν, kakon)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개념입니다. 요한은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했다’고 말하며(ek tou theou estin), 이는 단지 하나님을 안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 속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을 본 분’으로 소개하면서 사용된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은 단지 시각적 경험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생명의 교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부 이레나이우스는 이 본문을 인용하면서,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며, 그 행위 속에서 하나님을 닮는다”고 주해하였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선’은 단순히 외적인 행위만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자가 그분의 본성을 실천적으로 드러내는 삶 전체를 뜻합니다. 성도의 삶은 단지 악을 피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머무르지 않고, 선을 따르고 본받아야 하는 적극적인 부르심임을 우리는 이 말씀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데메드리오의 선한 증거

요한은 이어지는 12절에서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을 언급하며, 그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인물로 알려져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데메드리오는 무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이 구절에서 요한은 데메드리오를 세 가지 관점에서 높이 평가합니다. 첫째는 ‘무사람’(παντῶν, pantōn), 즉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진리’로부터 증거를 받았다는 점, 그리고 셋째는 사도 요한 자신과 그 동역자들 역시 그를 추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증거를 받았다’는 표현입니다. 헬라어로 memartyrētai라는 단어는 ‘증언하다’, ‘증인으로 세우다’라는 뜻을 지닌 martyreō의 수동형입니다. 즉,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이 그의 신앙과 삶에 대해 자연스럽게 증언하게 되는, 그만큼 삶으로 복음을 살아낸 자였다는 뜻입니다. 특히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다’는 표현은 독특하며, 진리를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으로 표현하며, 진리 자체가 데메드리오의 삶을 인정한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단순한 평판 이상의 것이며, 그의 삶 전체가 말씀과 복음에 일치되었다는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소개하며,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 아느니라 하고 덧붙입니다. 이는 가이오와 요한 사이에 쌓인 신뢰를 반영하는 표현이며, 데메드리오를 공동체의 지도자나 파송된 사역자로 받아들이라는 권면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외부에서 온 전도자나 지도자에 대해 신중한 분별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도나 영적 권위자의 추천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데메드리오는 외적 평판뿐 아니라, 진리 자체로부터의 증언, 그리고 사도의 보증을 동시에 가진 이로서, 모든 면에서 본이 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진리의 열매로 나타나는 삶의 아름다움

데메드리오의 삶은 디오드레베와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의 권위와 욕망을 위해 공동체를 휘두르고, 외부의 사도적 권위를 거절하며, 공동체의 사랑과 환대를 차단한 자였습니다. 반면, 데메드리오는 말없이 진리 안에서 일관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공동체 전체로부터 신뢰를 얻고, 진리로부터도 인정받는 인물로 서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진정한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됩니다.

 

진리는 단지 이론이나 교리의 틀 안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진리는 삶 속에서 증명되어야 하며, 삶으로 드러나는 진리는 언제나 선한 영향력을 남깁니다. 데메드리오의 삶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가르침보다는 증거로 진리를 보여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의 본질을 말보다 행동으로, 교리보다 실천으로 드러내야 함을 그의 삶을 통해 배웁니다.

 

초대교부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그 입이 아닌 그 걸음으로 증언한다.” 데메드리오는 그러한 자였습니다. 그는 큰소리로 설교하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삶 전체가 복음의 향기였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진리의 열매로 이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삶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공동체가 회복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결론

요한삼서 11절과 12절은 디오드레베와 같은 악한 본을 따르지 말고, 데메드리오와 같은 선한 삶을 본받으라는 사도 요한의 분명한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는 말은,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 영적 관계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데메드리오라는 인물은 그러한 선의 삶이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선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곧 진리 안에 거하는 길이며, 그런 삶을 통해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부르심을 다시금 붙들게 됩니다.

요한3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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