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삼서 강해 9~10절 악한 말 하는 자를 주의 하라
교회 안의 권위와 진리를 왜곡하는 자를 대면함
요한삼서 9절과 10절은 지금까지의 따뜻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전환점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앞서 가이오의 진실한 사랑과 순회 전도자들을 향한 헌신이 소개되었다면, 이제는 교회 안에서의 문제 인물, 디오드레베에 대한 고발이 등장합니다. 이 두 절은 짧지만, 교회 내 권위의 남용과 진리 왜곡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 공동체에도 깊은 경각심을 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사랑과 진리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사라지고, 진리가 개인의 야망과 결합할 때 공동체는 갈등과 혼란 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 본문을 깊이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권위와 진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그리고 진리에 어긋나는 지도자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바르게 깨닫게 됩니다.
교회를 사유화한 디오드레베의 실체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9절). 이 한 구절 속에는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의 씨앗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요한이 교회에 무언가를 기록하여 전달한 바 있으나, 디오드레베라는 인물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첫 번째 문제는 그의 마음 중심에 있는 교만입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philoproteuōn이며, 이는 '가장 높은 자리를 사랑하다', '최고의 자리를 갈망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즉, 디오드레베는 단순한 의견 차이의 인물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던 자입니다.
Philos는 '사랑하다'라는 의미이고, prōtos는 '첫째,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리더십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월감과 자기 중심성이 결합된 영적 교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길 원했고,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함께 세워져야 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회를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무대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머리 되시며, 모든 성도는 그분 안에서 형제 자매입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공동체를 섬기는 대신 군림하려 했고, 사도적 권위를 거부하는 교만함으로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단지 교회 정치의 문제를 넘어, 영적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태도입니다. 그가 가이오나 사도 요한처럼 진리 안에서 겸손하게 교회를 세우려 했다면, 그는 공동체의 귀한 지도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사유화했고, 교회를 사적인 권력의 장으로 삼았습니다.
초대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이 본문을 강해하면서, "디오드레베의 죄는 교회 안에 외적 이단이 아닌 내적 교만이 뿌리내렸다는 사실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교회와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경고입니다. 우리가 사역을 감당할 때, 진심으로 섬김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지, 아니면 스스로 으뜸 되고자 하는 은밀한 욕망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해석하고 전할 때에도, 진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명성과 자리 보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라는 말은 단순한 환영의 거부가 아닙니다. 여기서 '받아들이다'는 헬라어 epidechetai로, 사도적 권위나 외부 사역자들을 인정하고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오드레베는 사도 요한의 편지조차 거절했고, 이는 단순한 의견 충돌이나 소통 문제를 넘어, 사도성과 진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교회 내 권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질서와 공동체의 연합을 무너뜨리는 교만한 행위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공동체 안의 영적 질서 자체를 부정하며, 자신의 통제와 의도를 기준으로 공동체를 판단하는 위험한 자세를 보였습니다.
악한 말과 배척으로 공동체를 해치는 자
10절에서는 디오드레베의 문제점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곧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만족하지 아니하고 형제들을 영접하지도 아니하며 영접하려는 자들을 금하고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이 구절에서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전반적인 행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그가 교회 안에서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먼저 언급된 문제는 '악한 말로 비방한다'(φλυαρῶν ἡμᾶς λόγοις πονηροῖς, phlyarōn hēmās logois ponērois)는 것입니다. 여기서 phlyareō는 '근거 없는 비방을 하다', '헛된 말을 퍼뜨리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드문 단어로, 디오드레베의 말이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교회를 분열시키는 왜곡된 거짓 중상임을 강조합니다. Ponēros는 '악한, 사악한'이라는 뜻으로, 단순히 불쾌한 언사가 아니라 악한 영적 동기에서 비롯된 말임을 암시합니다. 요한은 이러한 말들을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를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의 비방은 사도 요한을 향한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직에 대한 도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말의 권력과 파괴력을 묵상하게 됩니다. 교회는 말씀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진리가 아니라 악의에서 비롯된 왜곡된 언사가 될 때, 교회는 무너지고, 성도들은 상처받게 됩니다. 오늘날의 교회 공동체 역시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왜곡된 언설이 공동체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도자는 항상 말의 정직성과 영적 책임 앞에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는 또한 형제들을 영접하지 않고, 심지어 영접하려는 자들까지도 억압하며, 더 나아가 교회에서 내쫓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는 단지 개인적 불화가 아니라, 교회의 문을 닫고, 공동체의 생명줄인 환대를 끊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내쫓는다'(ἐκβάλλει, ekballei)는 단어는 강제로 추방하다, 몰아내다의 의미로 사용되며, 복음서에서는 귀신을 쫓아내는 데 사용된 강한 단어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자신이 세운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성도들을 희생시키는, 자기중심적이고 파괴적인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권력이 교회를 지배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따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영향력 있는 자리에 서 있는 자들이 결코 권위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이며, 모든 권위는 그분으로부터 위임된 것입니다. 그것을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실체를 드러내시고 교정을 요구하십니다. 교회는 권력의 장소가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장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잊는다면, 우리는 디오드레베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취하게 됩니다.
사도적 권위와 공동체의 회복
요한은 이러한 문제 상황을 방관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사도적 권위 아래에서의 교회 질서 회복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잊지 아니하리라'(ὑπομνήσω, hypomnēsō)는 단어는 기억하다, 상기시키다의 의미를 지니며, 이는 디오드레베의 행위를 공적으로 드러내고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문제를 공적이고 질서 있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모범이 됩니다. 문제를 방관하거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 안에서 진리의 기준으로 바르게 세워가는 방식입니다. 또한 이는 공동체 안에서 누가 참된 권위를 가진 자이며, 그 권위가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지도자는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그 권위는 절대로 진리를 왜곡하거나 억압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론
요한삼서 9절과 10절은 교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권위의 왜곡과 진리의 훼손을 다루며, 하나님께서 교회의 질서와 말씀의 정직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디오드레베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 했고, 이는 교회를 심각하게 위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이를 묵과하지 않고 진리를 따라 분명히 대면하고 교회의 질서를 회복하려 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교회의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과 섬김에 기초해야 함을 배우고,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를 따라 행동하는 지혜와 용기를 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누구의 사유물도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과 사랑 안에서만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요한3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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