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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서 강해 12–13절 참된 사귐의 은혜

샤마임 202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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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기쁨을 나누는 교제: 참된 사귐의 은혜

요한이서 12절과 13절은 짧지만 편지를 맺는 중요한 부분으로, 사도 요한의 따뜻한 심정과 공동체를 향한 깊은 애정을 잘 보여줍니다. 요한은 단지 서신으로만 전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진정한 교제와 대면을 통한 사귐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 본문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신자 공동체 안에서 진리와 사랑으로 나누는 만남이 얼마나 큰 기쁨과 은혜를 주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신앙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참된 교제를 이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대면의 교제가 가지는 영적 의미를 다시 깊이 깨닫고자 합니다.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12절에서 요한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종이와 먹'(χάρτου καὶ μέλανος, 하르투 카이 멜라노스)은 당대의 서신 작성 수단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제한된 소통 방식임을 암시합니다. 사도 요한은 기록을 통해 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깊은 교제를 원했습니다.

'대면하여 말하려 한다'(ἐλθεῖν καὶ στόμα πρὸς στόμα λαλῆσαι, 엘세인 카이 스토마 프로스 스토마 랄레사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직접 이어지는 소통을 의미합니다. 이는 고린도후서 7장 4절과 2요한 12절 등에서 나타나는 '직접적인 교제'에 대한 초대교회의 가치를 반영합니다. 초대교부 이그나티우스는 이와 관련해 "서신은 교훈을 주지만, 대면은 영혼을 불붙게 한다"고 말하며, 살아 있는 만남이 신앙을 더욱 깊이 성숙시키는 역할을 함을 강조했습니다.

요한은 서신의 한계를 넘어,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며 나누는 교제가 신자들에게 더 깊은 기쁨과 영적 충만을 가져올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편리한 소통 수단이 넘쳐나지만, 진정한 사랑과 진리는 여전히 직접적인 만남 속에서 더 깊이 전해지고 완성됩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문자나 메시지만이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이 구절은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대면하여 말하려는 이유를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기쁨'(χαρὰ, 하라)은 단순한 감정적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비롯되는 깊고 변함없는 영적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 기쁨은 요한복음 15장 11절에서도 예수께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충만하게 하려 함'(πεπληρωμένη, 페플레로메네)은 헬라어로 '가득 채우다', '완전하게 하다'는 의미를 가지며, 기쁨이 부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주어질 것을 나타냅니다. 초대교부 클레멘트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참된 기쁨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완성되며, 그것은 단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이 말하는 기쁨은 단순한 교제의 즐거움이 아니라, 진리 위에 세워진 교제에서 오는 영적 열매입니다. 신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나눌 때, 그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공동체의 교제는 단순한 친목을 넘어, 영적 기쁨을 충만히 누리고 나누는 자리여야 합니다.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

13절은 요한이 편지를 맺으며 덧붙인 짧은 인사입니다.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 여기서 '자매'(ἀδελφῆς, 아델페스)는 문자적으로 볼 때는 육체적 친족을 의미할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다른 지역 교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초대교회는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형제', '자매'로 부르며 하나의 영적 가족임을 인식했습니다.

'문안하다'(ἀσπάζονται, 아스파존타이)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 사랑과 평안을 전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로마서, 고린도서, 베드로전서 등 신약성경의 여러 서신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공동체적 유대와 상호 연대, 그리고 하나님의 평화를 서로에게 기원하는 초대교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인사는 요한이 쓰는 편지가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초대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구절을 두고 "문안은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를 향한 끊임없는 사랑의 숨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사랑과 관심 속에서 풍성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론

요한이서 12절과 13절은 서신의 맺음말이지만, 진정한 공동체의 본질을 깊이 보여줍니다. 진리는 단지 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만남과 교제를 통해 완성됩니다. 얼굴을 맞대고 나누는 사랑과 진리의 교제는 신자들에게 참된 기쁨을 충만하게 합니다. 또한 신앙 공동체는 혈연을 넘어 영적 가족으로 서로 문안하고 격려하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명을 지닙니다. 우리도 이러한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며, 진리와 사랑 안에서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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