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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2:28~29 담대함으로 주 앞에

샤마임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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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담대함으로 서는 삶

요한일서 2장 28절부터 29절은 사도 요한이 진리 안에 거하는 신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권면이며, 믿음의 사람들에게 종말론적 긴장과 신앙의 실천 사이를 연결짓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염두에 두고, 그날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는 단지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나 교리적 가르침을 넘어, 지금 여기에서의 신자의 삶이 어떤 태도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짧지만 강하게 드러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재림 앞에서 담대함을 갖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주 안에 거하라, 부끄러움 없이 서기 위해

28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게 하고 그가 오실 때에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한은 성도들을 향해 다시금 '자녀들아'(τεκνία, 테크니아)라고 부르며 사랑으로 권면합니다. 그리고 명령형으로 "그의 안에 거하라"(μείνατε ἐν αὐτῷ, 메이나테 엔 아우토)고 촉구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15장 4절의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과 맞닿아 있으며, 단순히 존재의 개념이 아니라 지속적인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라는 강한 권유입니다.

여기서 ‘거하다’는 동사 'μένω'(메노)는 요한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어휘로, 하나님과의 관계, 말씀과의 연합, 성령 안에서의 지속성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 '거함'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ἐὰν φανερωθῇ, 에안 파네로테) 우리가 '담대함'(παρρησίαν, 파르레시안)을 얻게 하고, '부끄러움 없이'(μὴ αἰσχυνθῶμεν, 메 아이스퀸도멘) 그 앞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조건임을 강조합니다.

'파르레시아'는 본래 공공연한 말하기, 거리낌 없는 확신, 그리고 두려움 없는 용기를 뜻하는 단어로,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 앞에서 피하지 않고 당당히 설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반대로 '부끄러움'은 요한이 사용한 헬라어 'αἰσχύνη'(아이스퀴네)에서 유래된 동사로, 하나님 앞에 서기에 부적절한 상태, 곧 신자의 불순종과 위선, 진리에서 떠난 삶에 대한 결과로서의 수치를 표현합니다.

이 말씀은 재림의 날이 다가올 때, 그날의 두려움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심판의 공포가 아니라, 삶의 진실성을 드러내는 날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신자는 종말의 때를 도피적 시각이 아닌, ‘담대히 서기 위한 오늘의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부 오리게네스는 이 구절을 언급하며 “그 날은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영광 앞에 드러나는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주 안에 거하는 자는 그날에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29절은 그 담대함의 실천적 기준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여기서 요한은 의로움에 대한 신학적 지식을 실천적 삶과 연결합니다. 먼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안다'(εἰδῆτε ὅτι δίκαιός ἐστιν, 에이데테 호티 디카이오스 에스틴)는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 곧 그의 의로우심에 대한 인정입니다. 그러나 그 인식은 곧 신자의 행위로 이어져야 하며, '의를 행하는 자'(ὁ ποιῶν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호 포이온 테인 디카이오쉬넨)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임을 증명합니다.

'의를 행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윤리적 행위나 도덕적 의무를 넘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의 성품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야고보서 2장 18절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선언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삶으로 드러나야 하며, 그것이 곧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즉 거듭난 자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ἐκ αὐτοῦ γεγέννηται, 에크 아우투 게겐네타이)라는 표현은 신자의 영적 출생, 곧 거듭남을 의미하며,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전환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 전적으로 다른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존재의 변화입니다. 요한은 이 거듭남의 유일한 표지를 ‘의의 실천’에서 찾고 있으며, 이는 요한일서 전체에서 일관되게 강조되는 주제입니다.

이러한 선언은 신자의 정체성을 외적인 표식이나 감정적 경험으로 규정하지 않고, 삶의 일관성과 진리 안에서의 행함으로 판별하게 합니다. 의를 행하는 자는 단지 '의로워 보이는 자'가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입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이러한 강조는 이단들의 잘못된 영지주의적 구원 이해를 반박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이단들은 '지식'과 '비밀계시'만으로 구원을 말했지만, 요한은 반복해서 '진리 위에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소망하며 사는 삶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염두에 둔 권면으로 시작하여, 현재의 삶의 열매로서의 '의의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이 구조는 단순히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종말론과 성화 사이의 깊은 신학적 연관을 보여줍니다. 신자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며, 그날에 담대히 서기 위해 지금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종말에 대한 성경적 기대는 회피나 공포의 정서가 아니라, 오늘의 성실함과 내일의 영광을 잇는 다리와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공포가 아니라 기쁨이며, 주를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소망입니다. 그러나 그 소망은 현재의 책임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진실하게 오늘을 살게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날을 진정으로 기다리는 자는 오늘을 가장 진실하게 산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믿는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의 말씀을 따라 의를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

요한일서 2장 28절부터 29절은 신자의 종말론적 소망과 현재의 삶을 연결지으며, 주 안에 거함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앞에 담대히 서야 함을 권면합니다. 의를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며, 그 삶의 진실성이 주님 앞에서의 담대함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며, 날마다 진리를 따라 행하는 삶으로 그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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