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강해 2:7-11 사랑의 계명
어둠을 몰아내는 사랑의 계명
요한일서 2장 7절부터 11절까지는 참된 신앙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전 절들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가 거짓말쟁이라고 강하게 경고한 후, 이제 그 계명의 본질, 곧 사랑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룹니다. 이 본문은 단지 윤리적인 권면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공동체의 본질을 밝히는 핵심 진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참된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이 무엇인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왜 신앙의 본질인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어둠을 몰아내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새 계명이자 옛 계명인 사랑
7절에서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여기서 요한은 '새 계명'(ἐντολὴν καινὴν, 엔톨렌 카이넨)을 부정하며, 그것이 '옛 계명'(παλαιὰν ἐντολήν, 팔라이안 엔톨렌)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는 다시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노라"고 말합니다. 이는 언뜻 보기에 모순처럼 보이지만, 요한의 표현은 의도적인 문학적 긴장 안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계명은 본질적으로 옛 계명입니다. 이는 레위기 19장 18절에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시작되며, 이미 구약 율법 속에 포함된 윤리적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계명'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삶과 죽음 속에서 사랑의 계명은 새롭게 갱신되었으며, 이제는 그분의 희생적 사랑을 본받는 차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여기서 '새롭다'(καινὴν, 카이넨)는 말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롭고 전례 없으며 더 깊은 차원의 갱신된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 사랑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삶과 십자가 위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며, 성도들에게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자기부인의 사랑으로 요청됩니다.
참된 빛이 비치기 시작한 지금
8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니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찬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여기서 요한은 '새 계명'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선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계명이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ὅ ἐστιν ἀληθὲς ἐν αὐτῷ καὶ ἐν ὑμῖν)은 예수님 안에 그 계명이 실제로 실현되었고, 신자들 안에서도 그 계명이 실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ἡ σκοτία παράγεται, 헤 스코티아 파라게타이)는 표현은 종말론적 빛의 도래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죄와 사망의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의 빛이 이 땅 가운데 임하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찬빛'(τὸ φῶς τὸ ἀληθινόν, 토 포스 토 알레시논)은 요한복음 1장에서 이미 사용된 표현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그 빛이 이미 임했기 때문에, 신자는 더 이상 어둠 가운데 거할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신자의 삶이 단지 도덕적 개선이 아닌, 구원의 사건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둠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찬빛 가운데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론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삶 속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실천을 통해 증명되어야 합니다.
형제를 미워함은 어둠에 거함입니다
9절부터 11절까지는 매우 직설적인 대조 구조를 통해 형제를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실존적 차이를 보여줍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9절),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10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그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11절).
요한은 여기서 말과 삶의 불일치를 다시금 고발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한다'(ἐν τῷ φωτὶ εἶναι λέγων, 엔 토 포티 에이나이 레곤)는 고백은 말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가 형제를 '미워한다'(μισῶν, 미손)는 것은 그의 실상이 어둠에 속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때의 '미움'은 단지 감정적 반감이 아니라, 타인을 거부하고 배제하는 태도 전반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는 공동체의 사랑과 일치, 연합을 파괴하는 무서운 어둠의 현상입니다.
반면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거리낌이 없다'(σκάνδαλον, 스칸달론)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 안에 실족케 할 요소가 없습니다. 이는 내면의 평안과 공동체 내에서의 조화를 뜻하며, 성령 안에서의 안정된 정체성과 연합을 나타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사랑은 어둠을 몰아내는 유일한 빛이며,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11절은 다시 미워하는 자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는 어둠 속을 걷고 있으며,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눈이 어둠에 멀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 표현은 죄의 중독성과 영적 무지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어둠은 단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이며, 하나님과 단절된 영혼의 상태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수 없고, 삶의 방향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위치의 문제입니다.
결론
요한일서 2장 7절부터 11절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곧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이며, 신앙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본질적인 열매임을 강조합니다. 사랑은 새 계명이자 옛 계명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드러났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는 아직 어둠에 속한 자이며, 참된 신앙을 소유한 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를 품으며, 하나님의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을 날마다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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