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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3:4~10 죄는 불법이라

샤마임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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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의 사이,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

요한일서 3장 4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본문은 죄에 대한 인식과 태도,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 그리고 참된 신자의 삶의 열매에 대해 강력한 영적 분별을 요청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시대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죄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숙고하게 합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무엇이며, 죄를 끊는 삶이 어떤 것인지 선명하게 분별하고, 거룩을 향한 믿음의 길을 다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죄의 본질은 불법이며 그리스도는 죄를 없애려 오셨습니다

4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여기서 '죄'(ἁμαρτία, 하마르티아)는 단지 윤리적 실수가 아닌,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반역하는 본질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불법'(ἀνομία, 아노미아)은 문자 그대로 '율법 없음',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요한은 죄와 불법을 동일시함으로써, 죄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의도적이고 반항적인 행위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어서 5절에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목적을 밝힙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안 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리스도는 죄를 '없애려고'(ἵνα τὰς ἁμαρτίας ἄρῃ, 히나 타스 하마르티아스 아레이) 오셨습니다. 여기서 '없애다'(αἴρω, 아이로)는 단순한 감정적 용서가 아니라, 죄의 실체를 제거하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는 단지 죄를 덮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십자가 위에서 짊어지시고 제거하셨습니다.

'그에게는 죄가 없다'(καὶ ἁμαρτία ἐν αὐτῷ οὐκ ἔστιν, 카이 하마르티아 엔 아우토 우크 에스틴)는 진술은 예수님의 흠 없는 존재를 강조합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죄가 없으셨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실 수 있었으며, 그분 안에 거하는 자 역시 죄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야 함을 전제합니다. 이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이 단지 모범 제시가 아니라 구속과 해방임을 보여주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자와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

6절부터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의 삶의 특징을 말합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여기서도 '거하다'(μένει, 메네이)는 단순히 지식적 동의나 종교적 참여가 아닌, 지속적이고 인격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지속적으로 짓지 않는다는 것이 요한의 강조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범죄하지 아니한다'(οὐχ ἁμαρτάνει, 우크 하마르타네이)는 헬라어 현재 시제로, 지속적이고 습관적인 죄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신자가 완전무결하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태도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반면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다'는 표현은, 참된 신앙 체험의 부재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죄 가운데 머무는 자는 실제로는 그를 보지도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7절에서 요한은 사랑의 어조로 경고합니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라고 말합니다. 당시 공동체 내에 있었던 거짓 교사들은 죄의 심각성을 축소하고, 구원은 행위와 상관없이 영적 지식이나 체험에 의해 주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하는 자는 ‘의를 행하는 자’입니다. '의를 행한다'(ποιῶν τὴν δικαιοσύνην, 포이온 테인 디카이오쉬넨)는 표현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며, 신자의 삶의 내용이 반드시 의로워야 함을 강조합니다.

마귀에게 속한 자와 하나님께 속한 자

8절과 9절은 매우 강한 대조 구조를 취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여기서도 '죄를 짓는 자'(ὁ ποιῶν τὴν ἁμαρτίαν, 호 포이온 테인 하마르티안)는 습관적이며 고의적인 죄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ἐκ τοῦ διαβόλου ἐστιν, 에크 투 디아볼루 에스틴)입니다. 요한은 중간 지대가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죄에 머무는 삶은 단지 신앙의 미성숙이 아니라, 그 본질이 마귀에게 속해 있다는 명백한 영적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멸하다'(λύσῃ, 뤼세이)는 단어는 묶인 것을 풀어 해방시키는 의미이며,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죄와 죽음의 세력, 마귀의 통치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궁극적인 승리임을 나타냅니다.

9절은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하나님의 씨'(σπέρμα αὐτοῦ, 스페르마 아우투)는 신자의 거듭남을 설명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이는 성령과 말씀에 의한 내적 변화와 하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씨는 외적인 행위로 드러나며, 이는 죄의 거절로 나타납니다.

'죄를 짓지 못한다'(οὐ δύναται ἁμαρτάνειν, 우 뒤나타이 하마르타네인)는 말은 신자가 죄에 대한 유혹이나 실패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내면에 자리 잡은 하나님의 생명력 때문에 더 이상 죄와 타협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강한 윤리적 감수성을 표현합니다. 이는 거듭난 자의 삶이 근본적으로 죄와 불화하며, 그 방향성과 본질이 의로움을 향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와 마귀에게 속한 자의 기준

10절은 이 단락의 결론으로, 마치 법정에서 판결문을 읽듯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나누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의를 행하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형제를 사랑하느냐’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요한일서 전체의 핵심 주제로서, 참된 신자의 삶은 반드시 의와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강한 윤리적 요청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기준은 단지 외적 행위의 잣자가 아니라, 내면의 본질을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신자의 삶은 정체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삶이 신분을 증거하고, 신분이 삶을 이끕니다. 초대교부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인은 삶으로 그리스도라 불리는 자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 신분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결론

요한일서 3장 4절부터 10절은 죄와 의, 마귀와 하나님, 거짓과 진리를 분명하게 나눕니다. 참된 신자는 죄를 미워하고 의를 행하며,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죄를 반복하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삶은 결코 하나님께 속한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거하도록 진리와 성령 안에서 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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