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한일서 강해 3:11~18 처음부터 들은 계명

샤마임 2025. 4. 21.
반응형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삶

요한일서 3장 11절부터 18절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사랑임을 강조하며, 단지 말이나 감정의 사랑이 아니라 실천과 희생을 동반하는 참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권면입니다. 이 단락은 처음부터 반복된 사랑의 계명을 상기시키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사망에 거한다는 단호한 선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할 것을 요청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랑이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더 깊이 깨닫고자 합니다.

처음부터 들은 계명, 형제를 사랑하라

1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요한은 이 편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복잡하거나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들은 것', 즉 복음의 본질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처음부터'(ἀπ᾽ ἀρχῆς, 압 아르케스)라는 표현은 요한서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복음이 전해질 때부터 함께 선포된 변하지 않는 진리임을 나타냅니다. 사랑은 복음의 시작이며 중심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새 계명’과 연결되며, 신약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계명입니다. 단순한 감정적 애착이나 친분이 아닌, 복음적 사랑(ἀγάπη, 아가페)은 의지적이고 희생적인 헌신을 포함합니다.

12절은 이 사랑의 반대 예로 가인을 언급합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여기서 요한은 창세기 4장을 배경으로 하여, 사랑의 결핍이 결국 살인이라는 극단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가인의 문제는 단지 분노나 시기의 감정이 아니라, 그 본질이 '악한 자에게 속하였다'(ἐκ τοῦ πονηροῦ, 에크 투 포네루)는 데에 있습니다. 이는 마귀의 속성에 사로잡힌 상태로서, 사랑이 없는 삶은 결국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경고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 가운데 있습니다

13절에서 요한은 성도들에게 경고합니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반영합니다. 세상은 의와 진리를 미워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과 충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신자는 세상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뜻에 충실해야 합니다.

14절과 15절은 생명과 사망의 기준이 사랑에 있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한은 '형제를 사랑한다'(ἀγαπῶμεν τοὺς ἀδελφούς, 아가포멘 투스 아델푸스)고 말할 때, 그것이 단지 인사나 말이 아니라 실제로 삶에서 드러나는 행위임을 전제합니다. ‘사망에 거한다’(ἐν τῷ θανάτῳ μένει, 엔 토 타나토 메네이)는 표현은 단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 상태를 뜻합니다.

15절은 사랑하지 않는 상태가 단지 무관심이 아니라 적극적인 '미움'(μισῶν, 미손)이며, 이는 곧 살인과 동일하다고 선언합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선언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하신 말씀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단지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이미 살인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은 사랑과 생명, 미움과 사망을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이는 단지 감정적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삶은 생명의 증거이며, 사랑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사망 가운데 있다는 선포는 매우 날카롭고 도전적인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 같이

16절은 이 단락의 중심 구절이자, 신자의 사랑의 본을 제시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말씀은 아가페 사랑의 결정적 정의이며, 사랑이란 자신을 희생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목숨을 버리셨다’(ἔθηκεν τὴν ψυχὴν αὐτοῦ, 에테켄 테인 푸쉬엔 아우투)는 표현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선한 목자가 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이미지와 동일합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단지 감탄하거나 감사의 감정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사랑을 아는 자는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마땅하다'(ὀφείλομεν, 오페이로멘)는 단어는 ‘빚을 지다’ 혹은 ‘의무를 가지다’는 뜻으로, 사랑의 실천이 선택이 아닌 도덕적, 영적 의무임을 강조합니다. 초대교회 교부 이레니우스는 이 구절을 가리켜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을 다른 이의 생명을 지키는 데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신자의 사랑이 단지 정서적 공감을 넘어서, 실제적 희생과 나눔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도전입니다.

17절은 이를 일상적 차원으로 연결합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요한은 사랑을 막연하거나 영적인 개념으로만 보지 않고, 구체적인 생활의 행위로 이어지는지를 점검합니다. ‘도와줄 마음을 닫는다’는 표현은 단지 무심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이 세상의 재물’(τὸν βίον τοῦ κόσμου, 톤 비온 투 코스무)은 단순히 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자원과 능력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흘러야 하며, 흘러가지 않는 사랑은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즉, 베풀지 않는 자는 받은 사랑도 없는 자라는 것이 요한의 단언입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18절은 이 단락의 결론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은 이 말씀을 통해 형식적인 말뿐인 사랑을 경계하고, 실제로 손과 발이 움직이고 삶이 반응하는 사랑을 요청합니다. ‘행함’(ἔργῳ, 에르고)과 ‘진실함’(ἀληθείᾳ, 알레데이아)은 사랑의 실체를 드러내는 두 날개입니다. 말은 쉽지만, 진정한 사랑은 실제의 수고와 헌신, 그리고 마음의 정직함이 필요합니다.

초대교부 클레멘트는 “입으로 말하는 사랑은 꽃이지만, 행함과 진실함은 그 열매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열매로 증명되며, 그 열매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요한은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신자들이 생명에 거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누릴 수 있다고 이끌어갑니다.

결론

요한일서 3장 11절부터 18절은 신자의 삶의 본질이 사랑에 있음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사랑은 단지 감정이나 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생명에 속한 자요,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3장구조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