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합력하여 선을 이룬 사람 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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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John Huffam Dickens
우리는 찰스 디킨스를 위대한 소설가로만 알고 있다. 맞다 그는 세기에 나올까 말까하는 위대한 소설가였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유명하게 되기까지는 아픈 삶의 여정이 있었다.
그는 영국 남쪽 포츠머츠, 해국 경리국의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음은 너무나 착했지만 돈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빈곤에 시달려야 했으며, 몇 년간의 사교육이 전부였다. 12세가 되자 공장에 가서 일을 하게 되면서 어린아이로 견디기 힘든 노동을 해야만 했다. 집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었다. 디킨스는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그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공부였다. 어떻게 해서 그가 글을 쓰게 되었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의 작가의 명성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이 된 디킨스는 자신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러나 어느 출판사도 그의 원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무명 작가의 글을 출판해줄 출판사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고 계속하여 글쓰기를 했다. 어느날 어느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신의 원고를 책으로 내려고 합니다. 앞으로 좀 더 좋은 작품을 쓸거라고 믿지만 지금 당장 원고료를 지불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디킨스는 원고료 따위는 중요하지 않지 않았다. 자신의 글이 책으로 출판된다는 소식에 너무 행복해했다.
1836년 그의 첫번째 책인 <보즈의 스케치>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다음해 <피크위크 페이퍼스> 등의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명실상부한 유명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로도 그는 많은 책을 출간했으며, 책이 출간될 때마다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의 책이 이토록 인기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는 산업혁명이 한참 일어나고 있을 때였고,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공장에서 수많은 고통을 감내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디킨스는 공장에서 일한 그 경험으로 실감나는 글들을 만들어 낼수 있었다. 이러한 디킨스의 현실적인 표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게했고, 감동을 주었다.
디킨스는 1870년에 죽었다. 그의 장지는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시인들의 묘역이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다고 한다.
"He was a sympathiser to the poor, the suffering, and the oppressed;
and by his death, one of England's greatest writers is lost to the world."
"그는 가난하고 고통 받고 박해 받는 자들의 동정자였으며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은 영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중 하나를 잃었다."
그가 죽고나자 노동자들은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는 말을 하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얼마나 그들의 아픔과 마음을 잘 표현했지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증거해 준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성공한 사람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누가 아픔을 나쁘다고 말하는가?
누가 고통을 안좋은 것으로 평가하는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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