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없음 /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
그들은 왜 교회를 떠났는가?
종교 없음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
베가북스
열정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에 추수를 생각한다. 추수가 끝나면 동면의 시간을 갖는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기라도 하면 땅이 먼저 알고 새싹을 토해낸다. 소멸과 생성의 기나긴 여정은 이렇게 오묘하다. 정과 반이 합을 이루고, 합은 다시 정과 반으로 나누어 역사는 무한히 반복되는 듯하다. 기독교의 역사를 들여다봐도 자연의 운행과 헤겔의 변증학적 역사관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질긴 생명은 죽은 듯하나 살아 있고, 왕성하게 살아있는 듯하나 어느 덧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현대는 기독교의 겨울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분명하지만 중세의 말기처럼 인기 있는 시대는 분명 아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무종교인은 무신론자들의 시대가 도래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본시 인간은 종교적 존재이지 않던가.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인간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전까지는 결코 쉼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가 종교였다. 무신론적 사고가 지배하는 시기는 곧 가장 종교적인 필요가 요구되는 시대임을 역설적(逆說的)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현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종교인의 급격한 성장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간다. 왜 현대인들은 교회는 떠나는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상실들 중에서도 가장 통렬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공동체 정신의 상실이다.”
공동체를 교회로 치환시켜도 무방하다.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뉴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미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던 한국교회는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것이 궁금하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인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메클런버그 커뮤니티 교회를 개척하여 급속한 성장을 일구어낸 목사이다. 메클런버그 교회는 70%이상 불신자 전도를 통해 성장했다. 순수한 복음과 전도로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루어낸 교회로 주목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 고든 콘웰 신학교의 4대 총장을 역임했고, 기독교 신학과 문화 및 변증학 교수직을 담당했다. 그는 이론가다. 또한 실천가다. 교회를 개척하고, 불신자 전도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킨 이론과 실전에 능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종교 없음’에 체크하는 무신론자들, 또는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에 주목할 필요는 충분하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 책의 중심 주제는 표지에 언급한 타임지의 기사 내용이다. ‘그들은 신을 거부하는 것이 교조적이고 융통성 없는 종교를 거부하는 것’이다. 부록까지 합하여 350쪽 분량이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현대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장애들을 조목조목 진단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를 처방한다. 크게 2부로 나누었다. 1부에서는 무종교인의 증가와 이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그들의 특징들을 분석한다. 2부에서는 교회 안으로 눈을 돌린다.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여 무종교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도하며 교회 성장을 일구어낸 목회자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 준다. 한국교회가 새겨들어야할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들은 왜 ‘종교 없음’에 체크했을까?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생각했고, 다수의 타국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2008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놀라운 통계를 접하게 된다. 1990년 조사 때보다 무려 두 배 가까운 수가 ‘종교 없음’에 표시했다. 우리는 통념적으로 주일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장년이 되어서 다시 교회로 돌아온다는 종교적 회귀(回歸)를 기대한다. 한 때 주일학교에 비전의 일부이기도 했던 이러한 생각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다. ‘청년 시절의 불신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불신자’로 존재하고 있다.(27쪽) 그렇다고 그들이 종교를 거부하거나 반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무관심(無關心)’할 뿐이다.(28쪽) 이 외에도 여러 통계 자료를 근거로 하여 종교 없음에 체크하는 이들이 현저히 늘어나고 있음을 주목한다.
종교 없음에 체크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10 가지의 보편적 특징을 집어낸다. ‘남성’ ‘젊다’ ‘백인’ ‘반드시 무신론자가 아니다’ ‘매우 종교적이지 않다’ ‘민주당원’ ‘낙태와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 하는 것을 찬성한다.’ ‘진보주의자 혹은 온건파’ ‘종교적인 기관들에 대해서 반드시 적대적이지 않다’ ‘대다수가 서부인 이다.’ 미국인이라면 위의 열 가지 특징들을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젊고, 진보적이고, 서부인 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다문화 적이고, 비앵글로섹슨족에 속한다. 그들은 비록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무종교인에 대해 이해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 대부분이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대다수가 매일 기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영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영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41쪽)
그들은 하나님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침례 교인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교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저자는 3장에서 ‘변호사, 총, 그리도 돈’이라는 제목으로 그 이유를 진단한다. 그는 현대에 일어나는 세족주의 현상과 과학의 발견 등을 언급하면서 ‘퍼펙트 스톰’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영화 제작되기도 한 이 용어는 1991년 10월에 일어났던 폭풍으로 세 개의 폭풍이 하나로 뭉쳐져 거대한 폭풍이 된 것이다. “신앙에 대한 근세의 공격을 말하자면, 대격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코페르니쿠스와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 사상들의 결합이었다.”(53쪽) 그러나 정말 중요한 폭풍이 남아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세속적인 붐’(57쪽)이다.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말을 빌려 와 정의하면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 좌파로 기우는 젊은이들과, 동일한 이슈들에 대해 우파로 기우는 가장 눈에 띄는 종교 지도자들, 이 양자들의 조합 때문’(60쪽)이다.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교회는 ‘법과 정치와 깊이 유착되어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증오에 찬데다 공격적이고 탐욕에 빠져 있’(61쪽)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교회의 모순과 병폐는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은 ‘예스’, ‘교회는?’ ‘노’가 되었다.(68쪽)
우리나라도 세월호 사건 이후 보수와 진보의 극명한 대조와 대립현상이 일어났다. 그 대립은 사회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띠었다. 한 교회 안에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갈라졌고, 나이든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기성세대가 볼 때 젊은이들은 다음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였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실망했고, 교회 안과 밖이 너무 다른 이중적 삶에 회의를 가졌다. 그들은 결국 교회는 ‘안나가’는 ‘가나안’ 성도가 되었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사탄의 무리로 치부하여 비판과 정죄를 일삼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제 변해야 한다고 저자는 외친다. 단순한 베이비붐 세대처럼 추억을 찾아 교회를 찾는 이들의 시기를 지났다는 것이다. 더 이상 탕자들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다.(124쪽) 이젠 ‘개종에 의한 성장’을 추구할 때이며,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에 대한 전도로 궤도를 바꾸어야 한다.
화려한 교회당을 건축하면 오리라고 꿈도 꾸지 마라. 이제 그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144쪽)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적당히 잘해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면 교회로 발길을 할 것이라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147쪽) 이전 시대는 ‘부흥회’ ‘가가호호 방문전도’ ‘주일학교’ ‘교회 버스 운행’ 등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150쪽) 필자의 교회는 가가호호 전도를 하지만 일 년 내내 결신자는 거의 없다. 저자는 안이한 교회의 전도방식에 일침을 가하면서 이제 전도의 방법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지금이야말로 복음전도를 다시 생각해야할 시점이며, 복음전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야할 때다. 이제 복음전도는 과정과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153쪽)
과정과 사건. 매우 의심장한 말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교회가 과연 불신자들에게 친절한지를 살펴보라고 촉구한다. 오히려 교회는 ‘무종교인’들에 대해 적대적이고(155쪽), 심지어 불친절하며, 무종교인의 입장에 무관심하다.(157쪽) 저자는 교회의 가장 큰 패러다임의 변화를 ‘대의명분’으로 정의한다. 교회만의 속 좁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걸맞은 사회를 세워는 것’(175쪽)이다.
한국교회가 위험하다. 골다공증에 걸린 노인처럼 휘청거리고 있다. 복음은 철저히 혁명적이다. 속수무책으로 몰락해가는 현대교회의 모습은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 저자는 이러한 교회의 몰락이 교회가 본질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선교적 관점으로 무종교인들을 바라보지 않고, 적대적인 교회 문화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다. 또한 타교회의 양떼를 탐하는 안이하고 비양심적인 전도방식에 일갈(一喝)을 가한다. 그럼에도 교회는 존재해야하고, 교회에 대한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보수적 성경관을 견지하면서도 진보적 삶을 추구하는 저자의 전도관은 작금의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온전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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