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칼럼-율법의 본질
율법의 본질
율법에 대한 부정적 편견(偏見)이 크다. 구약과 율법은 대개 저주하고, 죽이고, 정죄하고, 돌로 치는 장면을 연상(聯想)한다. 이런 편견은 성경을 잘못 가르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몫이 작지 않다. 하나님의 엄위와 공의만을 강조하다보니 한 부분만을 극단적으로 확대해석한 것이다. 구약을 대할 때면 마치 저주와 피의 냄새를 맡는 것 같다. 구약에 대한 오해다. 그것도 아주 큰 오해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했을까? 마5:17에서 율법을 완성자로 소개한다. 마23:23에서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소개 한다. 눅24:44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나(예수)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씀 하신다.마22장에서 예수님은 어떤 계명이 크냐는 율법사의 질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이며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명확하게 말씀 하신다. 사도 바울의 해석을 귀담아 들어 보자. 롬13:10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므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선언한다.
구약에서 말하는 율법의 본질은 ‘사랑의 실천’이다. 죄는 도덕적 타락을 넘어 남의 것을 탐하고 해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우상숭배 역시 사랑이신 하나님을 떠나 자기욕망과 탐욕의 삶에 빠져 이웃을 수단화 시킨다. 율법의 핵심은 사랑이며, 십계명은 사랑의 헌장이다. 율법을 우리 안에 내재된 탐욕을 보여주고 죽이라고 명한다. 더 나아가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령한다.
사랑의 실천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이해해 주고 그들을 도와주면 된다. 전당물을 억지로 주지 않는 일이 없어야 하고,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고, 저울을 속여 남의 소유를 탐하지 말아야 한다. 종 되었던 애굽의 생활을 기억하라는 당부는 그들의 사정에서 생각해 보라는 말이다. 율법은 사랑의 실천을 위한 지표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사랑의 의무와 계명을 기억하라고 말씀 하신다.
꿈꾸는 비저너리 정현욱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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