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칼뱅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포스트 칼뱅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칼뱅의 성경 주석은 우연하게 탄생했다. ‘필연’적 ‘우연’으로. 칼뱅은 주석을 쓸 마음이 없었다. 처음은 필요에 의해서 변증을 위한 기독교 강요를 저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리만으로 부족하고 성경을 직접 주석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직면한다. 계시록을 뺀 모든 책을 주석 한다. 계시록을 주석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겸손이나 해석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의 시대자체가 종말론적 편견이 심하게 왜곡되었던 탓에 굳이 그러한 논쟁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 예수이며, 성령의 조명으로 인해 밝히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계시적 측면은 필연적으로 성령의 조명과 함께 인지적 작업이 수반된다. 이성과 감성의 중간 지점이라 할 것이다. 의식적 신비주의에 빠진 중세의 천주교 예배를 탈피하고, 드러난 계시 즉 말씀과 조명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한다. 탈천주교예배는 탈 의식적 예배다. 이미지에서 텍스트로, 의식에서 말씀(설교)으로의 이동이다. 의식부족으로 제동장치가 풀린 극단적 무리들은 성상파괴와 이미지 자체를 우상화 시키는 곳까지 나간다. 칼뱅의 이러한 성경관은 개혁주의라는 새로운 해석관을 만들어 냈고, 설교 중심의 교회 예배를 만들어 낸다. 이 전통은 존 낙스의 장로교 예배와 영국의 청교도 예배, 화란 개혁주의 노선으로 이어가며 지금까지 미국과 한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개혁자들은 설교자들이다. 루터, 츠빙글리, 불링거, 칼뱅, 베자 이후 청교도들에 의한 대부분의 사역은 말씀 사역이다. 기록을 말씀을 해석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였다. 시대를 개혁하는데 설교만큼 탁월한 효과를 내는 것도 없었다. 설교와 더불어 인쇄혁명의 영향으로 책으로 다시 기록되어 퍼져 나간다. 종교개혁자들이 남긴 유산의 대부분이 설교였던 이유는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예배의 개혁은 곧 삶의 개혁이고, 삶은 곧 새로운 정치관, 인간관을 만들어 냈다.
종교개혁은 시민정신의 대두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다. 개혁주의와 장로교가 민주주의 형태의 정치적 성향을 가진 이유는 당시의 중산층을 이룬 시민들 때문이다. 상업의 발달과 지식의 수평적 분배는 종교개혁에 불을 지폈다. 칼뱅의 저술 주제가 여성, 소명(직업), 교리(법률) 등이 많았던 이유는 당시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들은 칼뱅으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변증적 저술에 매달리게 했고, 시대적 요청으로서 답으로 요구된 것들이다.
칼뱅의 성경 주석은 이성 중심, 계시 중심, 논리 중심의 신학적 성향과 시민정신과 민주주의 태동이란 사회적 성향이 손을 맞잡은 형태다. 단지 아쉬움은 신학자도 시대의 아들이듯 칼뱅도 백인중심과 서구 중심의 왜곡된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편견은 앞으로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에 취약한 장로교 개혁주의가 될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다.
칼뱅을 재해석하고 포스트 칼뱅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칼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대안이 될 교회 상을 개혁주의라는 틀 안에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개혁주의 핵심은 '아드 폰테스' 즉 본질로의 회귀다. 르네상스가 인문학적 배경과 헬라적 사상으로의 귀한이라면, 종교개혁은 히브리적 신본 사상으로의 회귀다. 현대교회들이 부르짖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교회의 탈선을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교회의 본질과 존재의미, 방향을 상실했다는 증거다.
시대가 어지럽다. 조용히 성경을 묵상하고 침적 (沈積)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 칼뱅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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