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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3. 1:15-23 하나님께로 가는 길(2)

샤마임 2018.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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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23 하나님께로 가는 길(2)

 

1. 말씀 읽기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2. 묵상

 

저는 오늘 본문을 접할 때마다 기이함을 느낍니다. 어떻게 해서 룻이 여호와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오미와 그의 가족들을 통해서 여호와를 어느 정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삶은 그야말로 실패 그 자체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에 원망하며 이스라엘을 떠난 불신앙의 여인입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에게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1:13)고 고백합니다. 즉 여호와는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나쁘고 악하며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두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고 느낀 룻이 어떻게 여호와의 백성이 되기로 작정할 수 있을까요? 김지찬 교수도 이렇게 의아해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가정에서, 그리고 이런 시어머니에게서 룻은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이런 나오미에게서 모압의 그모스 신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를 받아들일 만큼의 신앙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쉽지 않다.”(190)


오늘 본문이 그 모든 질문에 답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좀 더 룻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녀의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너도 ...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 ... 돌아가라”(15)


오르바는 돌아갔습니다. 나오미가 강하게 간청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나오미를 따라갈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룻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얼마를 더 가다가 나오미는 룻에게 다시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룻을 책임질 수 없고, 젊은 룻이 삶을 포기하기에는 안타까웠던 것이 분명합니다. 나오미는 룻이 악착같이 자신을 따르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가기를 진심으로 원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말합니다.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다.(15). 그러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나오미가 어떤 의도에서 이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저희가 듣기에는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그의 신들이라는 표현 당시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나오미의 표현에는 중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룻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이자 불신입니다. 악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나오미는 분명하게 자신과 룻을 구분합니다.

그녀의 백성과 그녀의 신, 즉 모압과 그모스입니다. 이것이 오르바와 룻의 정체이며 근본 뿌리입니다. 뿌리는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 두 구절은 모든 이스라엘이 인지하고 있는 내용이며 은연중에 모압과 암몬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는 구절입니다.


신명기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느헤미야 13:1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모압은 절대 이스라엘 총회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선택된 민족이 아닙니다. 가나안 정복 기간 동안 그들을 정복하지 않도록 배려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대우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으로서 대우를 할 뿐입니다. 어쩌면 나오미의 과격해 보이는 표현은 네가 과연 너의 백성과 신까지 버릴 수 있느냐는 의구심에 찬 질문일 수 있습니다. 마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후손들을 향하여 너희를 절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 또한 베드로에게 네가 오늘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충고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알기에 나오미는 룻을 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백성, 어머니의 하나님”(16)


룻은 이번에는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룻기에 나오는 룻의 얼마 되지 않은 대화이며, 수동적인 룻이 아닌 능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유일한 곳입니다. 룻의 말은 동심 구조를 이루며 자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중앙의 고백이 축을 이루며 나오미의 삶과 자신의 삶을 일치시킵니다.

 

A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의지)

  B어머니께서 -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X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고백)

  B’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죽음)

A’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의지)

 

룻의 중심 고백은 나오미가 룻에게 돌아가라 권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받고 있습니다.

 

그의 백성/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그의 신/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백성 나의 하나님이 되고

 

룻은 돌아가라’(슈브)버리다’(아자브, עָזַב)로 반응합니다. 룻에게 시어머니를 떠나는 것은 시어머니를 버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후에 보아스는 룻에게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라고 말하는데 떠나의 원동사는 아자브입니다. 룻은 자신들의 백성들과 신을 버림으로 나오미와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은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2:11) 것입니다.

어머니와 자신을 생명으로 연대합니다. 고백을 중심으로 이전에는 삶 속에서 함께하고, 이후는 죽음으로 함께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을 저주하는 맹세를 합니다. 만약 자신이 한 약속을 어길 시 여호와께서 벌을 내려달라고 청원합니다. 이것은 결코 어기지 않겠다는 룻의 비장한 결단입니다. 룻기 저자는 마지막 저주의 맹세를 하나님(엘로힘)’이 아닌 여호와를 사용하여 고백 이후 보편적 신이 아닌 구체적이고 관계적인 의미로 표현합니다.


룻의 결심을 들은 나오미는 그제야 말을 그치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을 재촉합니다.

이이가 나오미냐?”(19)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도착하자 온 성읍이 그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집니다. 처음 모압을 떠날 때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도착한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중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한 명의 낙오자가 생겼습니다. 오르바는 착하고 바른 여자였지만,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하여 모압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룻도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선택했습니다. 룻의 도착지는 베들레헴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실패하고, 다른 한 사람은 성공했습니다. 한 사람은 잊히고, 한 사람은 이스라엘 족보에 기록될 것입니다. 똑같이 믿음이 여행을 시작했지만 누군가는 중간에 탈락하고 누군가는 마지막 요단강을 건너 천성에 도착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나오미를 보고 수근 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이가 나오미냐?’(19)는 의문사로 볼 수 있고, 감탄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문장 앞의 는 감탄사와 의문문 모두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본다면 감탄사에 가깝습니다. 비록 의문사로 해석한다 해도 놀라움의 표시이지 믿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놀라서 정말 전에 베들레헴을 떠났던 그 나오미가 맞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돌아와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 너무나 초라해진 모습에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마치 스룹바벨 성전의 터가 닦일 때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이 부르짖었던 기쁨과 애통이 하나 된 환호성과 같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을 나오미(희락)으로 부르지 말고 마라(고통)로 부르라고 말합니다.(19) 하나님께서 자신을 심히 괴롭게(마라)’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고통의 이유를 모두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고 믿었던 반성이자,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것에 대한 원망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나오미는 이제야 하나님을 절대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2:8)고 고백하는 것과 별단 다르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신의 인생을 보면서 하나님께 칭얼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애가는 원망을 넘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며, 관계 맺음입니다. 아직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시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점점 가까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류호준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실과 붕괴는 신앙의 크기, 혹은 깊이를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이 참으로 하찮고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때, 바로 그때 당신은 집요하고도 완강한 그리스도의 결심, 나의 신앙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그리스도의 집요한 결심을 온몸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인간의 죄에 고뇌하시는 하나님> p.97)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문득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분명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나오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오미가 돌아가는 곳은 베들레헴이라는 지정학적 장소가 아니라 영혼의 고향인 하나님 아버지의 집인지도 모릅니다.


나오미의 애가에는 고향을 되찾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여호와를 섬김으로 누렸던 임재와 영적인 감격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품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가라는 형식을 빌려 하나님께 투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팀 켈러는 <탕부 하나님>에서 이렇게 격려합니다.


우리의 희망과 꿈은 결코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다. 잃어버린 집을 재창조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경 말씀대로 그 집은 우리가 피해 도망쳐 나온 하늘 아버지의 임재 안에만 존재한다.”(p.141)


사사기 기자는 1장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그녀는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고, 그때는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입니다.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겠죠?


룻기 묵상집 출간되었습니다. 


진즉에 했어야 했지만 저의 게으름으로 이제야 원고를 손보고 보강하여 전자책으로 묶었습니다. 히브리어 폰트는 블로그 상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PDF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에레츠 북스]에서만 구입이 가능합니다. 다음주면 일반 인터넷 서점에서도 구입 가능합니다.



룻기 묵상

룻기 묵상

정현욱 저

절대 절망의 시대에 절대 희망을 만들어낸 보아스와 룻. 숨어서 그들을 기꺼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다룹니다. 설교자를 위한 묵상 집으로 모두 십 회에 걸쳐 묵상하도록 꾸몄습니다. 룻기를 깊이 읽기 원하는 분들과 룻기 본문으로 설교하기 원하는 분들을 위한 묵상집입니다.



가능한 [에레츠 북스]에서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는 파일 전체를 다운로드하여 보관할 수 있습니다.


[목차]

  들어가면서
  1. 1:1-5 우리의 인생은 무엇인가?
  2. 1:6-14 하나님께로 가는 길(1)
  3. 1:15-23 하나님께로 가는 길(2)
  4. 2:1-13 사랑은 겸손의 계곡에 피어나는 백합화로다
  5. 2:14-23 버려라, 마음껏 버려라
  6. 3:1-9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7. 3:10-18 그가 쉬지 아니하리라
  8. 4:1-9 아무개 신발을 벗다
  9. 4:9-17 생명의 회복자
  10. 4:18-22 베레스의 계보
  마치면서
  부록
  판권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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