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1-3 묵상, 말씀을 사모하는 삶
말씀을 사모하는 영적 성숙의 시작
베드로전서 2장 1절부터 3절은 거듭난 성도들이 영적으로 자라가기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옛 성품과, 새로운 생명의 본능으로서 말씀을 사모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본문은 성도의 삶이 단순히 구원의 확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권면합니다. 본문을 통해 성도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며, 말씀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성장으로 이어지는지를 깊이 새기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합니다.
버려야 할 육적인 습관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 2:1)
‘그러므로’로 시작되는 이 말씀은 앞선 장에서 말한 거듭남의 은혜와 형제 사랑에 대한 명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로서, 이제는 그에 합당한 삶의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베드로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의 죄악을 언급하며, 성도 안에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것들을 나열합니다.
첫째, ‘악독’은 헬라어로 ‘카키안(kakian)’이며, 이는 마음속에 자리잡은 악의 뿌리, 곧 악한 성향이나 품성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는 단순한 행동이 아닌, 성격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어두운 의도입니다. 둘째, ‘기만’은 ‘돌론(dolon)’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한 술수나 간교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진실하지 못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셋째, ‘외식’은 ‘휘크리시스(hypokrisis)’로, 연극에서 배우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것처럼,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을 뜻합니다. 넷째, ‘시기’는 ‘프토노스(phthonos)’로, 타인의 성공이나 축복을 기뻐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는 감정입니다. 다섯째, ‘비방’은 ‘카타랄리아(katalalia)’로, 뒷담화와 험담을 포함한 파괴적인 언어를 의미합니다.
이 다섯 가지는 모두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파괴하고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입니다. 베드로는 이 죄악들을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버리다’는 말은 헬라어 ‘아포티데미(apotithēmi)’로, 헌 옷을 벗어던지는 행위를 묘사합니다. 이는 성도의 삶에서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행동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는 옛 사람의 삶의 방식과 완전히 단절하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분명한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갓난 아이처럼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죄를 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다음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모함’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린 뒤에는 채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성도의 영적 성장을 ‘갓난 아기’에 비유합니다. 이 표현은 헬라어 ‘아르티게네타 브레페(artigennēta brephē)’로, 갓 태어난 아기들을 가리킵니다. 이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젖을 갈망하며, 그 젖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결코 자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라는 표현은 ‘로곤 아도론(logon adolon)’으로, ‘속임이 없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인간적인 왜곡이나 교묘함이 없이, 순전하게 전해진 진리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로고스(logos)’가 아닌 ‘로곤(logon)’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말씀의 본질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은 성도를 새롭게 하고, 양육하며, 인도하는 영적인 젖과 같은 것입니다.
‘사모하라’는 말은 ‘에피포테오(epipotheō)’로, 강렬히 갈망하다, 절박하게 원하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단순한 관심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갈망입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말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자세로 말씀 앞에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갈망은 단지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의 본능입니다. 살아 있는 자는 말씀을 찾습니다. 자라고 싶은 자는 말씀을 갈망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입니다. ‘자라게 하다’는 헬라어 ‘아욱사노(auxanō)’는 생명체가 내면의 원리에 따라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위적인 부풀림이 아닌, 말씀에 뿌리내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장입니다. 여기서 ‘구원’은 이미 받은 구원의 확증이자, 장차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까지 포함하는 종말론적 구원의 완성입니다. 다시 말해, 성도는 말씀을 통해 날마다 자라야 하며, 그 성장은 단지 성숙의 차원을 넘어서 구원에 대한 확신과 능력 있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3)
이 절은 앞선 권면의 이유이자 동기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면’ 당연히 말씀을 사모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적 연결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맛보다’는 말은 헬라어 ‘게유사이(geusasthe)’로, 실제로 경험하고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지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실제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을 경험한 자의 반응입니다.
‘인자하심’은 ‘크레스토스(chrēstos)’로, 선하고 친절하며 부드러운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시편 34편 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는 구절이 이 본문의 배경이 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진정으로 체험한 사람은 다시는 옛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 인자하심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고, 죄악을 미워하게 하며, 진리를 사모하게 만듭니다.
베드로는 이 인자하심을 체험한 성도라면, 당연히 말씀을 갈망해야 하며, 죄악을 버리고 거룩을 추구해야 함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단순한 신앙생활의 습관이 아니라,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반응이요, 하나님의 성품에 감동된 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결론
성도는 거듭난 자로서 옛 습관과 죄악된 삶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갓난 아기처럼 사모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순전하고 신령하며,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는 본질적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는 그 말씀 앞에 겸손히 나아가야 하며, 이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삶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장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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