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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는 그리스도인> 김기현

샤마임 201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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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그리스도인

저자 김기현

출판사 성서유니온선교회

가격 8,500원

초판 2009년 8월 3일 / 초판 3쇄 2010년 5월 28일




 

 

올 초 성서유니온선교회에서 성경묵상지도자캠프를 열었다. 동료 목사님과 함께 2박 3일의 즐거운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성경묵상에 대해서 책도 많이 읽고 매일성경을 통해 꾸준히 묵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배울 필요가 없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그래도 ‘그래도’라는 것이 있다. 그래도 정식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 법, 용기를 내서 캠프에 참석했다. 2박 3일의 시간이 결코 길지 않았건만 내게는 수년은 훌쩍 지나버린 듯한 시간이었다. 강의가 서투르고 이미 알고 있는 식상한 언어의 포탄을 맞으며 버텨야 했다. 모든 강의가 그렇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그랬다. 급실망한 나는 억지로 버텨야 했다. 그래도 수료하면 수료증이 나온다는 말에 혹하여 이력서에 한 줄 남기려고 참아냈다. 내게 가장 즐거운 시간은 휴식 시간과 취침 시간이다. 가져간 몇 권의 책을 다 읽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틀이 지나니 끝이 났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하나 걱정이 슬그머니 뒤통수를 아프게 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성서유니온출판사에서 발행한 책들을 할인된 가격으로 팔고 있는 모습이었다. 쾌재를 부르고 몇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묵상에 대해 공부하려 왔으니 묵상에 관련된 책들부터 골랐다. 첫 번째 책은 탁주호 목사의 ‘큐티는 파티다’였고, ‘성경교사를 위한 성경핸드북’ 존 베일리의 ‘매일기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은 책은 김기현 목사의 ‘글쓰는 그리스도인’이다. 


글쓰는 그리스도인? 약간 유치해 보이는 제목이 달린 책을 굳이 산 이유가 있다면 먼저 김기현 목사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내 자신도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도한 지출을 하고 나서야 책 사는 것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 책 ‘글쓰는 그리스도인’은 8개월 동안 나의 책상 한쪽 귀퉁이에 고독하게 지내야 했다. 모든 것은 우연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제 우연히 책장 정리를 하다 이 책을 발견했다. 책을 발견하고 나는 약간 놀랬다. 이 중요한 책을 발견했다는 기쁨과 그동안 읽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는 자책과 후회감이 어색하게 뒤섞여 몰려 왔다. 그리고 단숨에 책을 읽어 났다. 읽어 가는 중에 이렇게 긴장하고 흥분하고 즐거운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워낙 독서를 즐겨하고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한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일단 써라. 그리고 계속 써라’이다. 여기에 무슨 핑계가 필요하겠는가. 글이란 써야 는 법이다. 쓰지 않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일단 글을 쓰는 것이 순서이다. 청어란 아카데미 양희송 원장의 청탁으로 불연 듯 떠오른 하나의 아이디어가 발단이 시작된 책이다. 그 순수하고 단순한 질문은 ‘그리스도인이 왜 글을 써야 하는가?’이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Ⅰ부에서는 ‘왜 그리스도인이 책을 쓰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Ⅱ부에서는 글을 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왜 글을 써야 하는가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역시 제자도의 일부’이기 때문으로 고백한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는 예수가 그리스도이고 그를 믿어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예수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예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열망이 그를 글쓰기에 인도한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이 글쓰기로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책을 쓴 이유를 독서에서 찾는다. 책이 너무 좋아 계속하여 읽다보니 글로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것이다. 컵에 물이 차면 넘치기 마련이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지라 서평을 쓰게 되었고, 그 결과 ‘공격적 책읽기’와 ‘공감적 책읽기’가 나오게 되었다.(15쪽)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일기쓰기를 통해 내면의 치유를 경험하고(2장), 서평을 통해 사고를 계발하고(3장), 펴지를 통해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4장), 칼럼을 통해 세상을 변혁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5장)

 

Ⅱ부에서 저자는 글쓰는 방법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먼저 미친 듯이 책을 읽어야 한다.(6장), 메모하고(7장), 글이 개요를 구성하고(8장), 문장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해야하고(9장), 마지막으로 퇴고의 방법에서 사랑하니 죽이라(사(死))고 말한다.

 

참 많은 부분 공감이 갔다. 필자는 일 년에 적어도 10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신학을 시작하고 나서 읽은 책만 대충 세어도 만권은 족히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할 만큼 글쓰기는 늘지 않고, 생각의 깊이도 더해지지 않았다.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다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 롤랑 바르트의 '이미지와 글쓰기', 이만교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등 수없이 많은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 나갔다. 읽으면 읽을수록 도전이 되고,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즐거운 일이지 슬픈 일인지 모르지만 글쓰기가 즐거움에서 악몽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꾸준히 글을 써왔다. 하루에 적어도 1000자 이상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버텨왔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의 답답함의 ‘뻥’ 뚫리는 듯한 상쾌함을 경험했다. 그동안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글쓰기 실력을 늘리기에만 함몰되어 무엇 때문에 글을 써야 하는지 망각하고 말았다. 뭔가 쓰고 싶고 써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왜?’라는 질문을 몰아내 버렸다. 그러다 정말 우연하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여는 말에서 한 방 얻어맞고 말았다.

“왜 글을 쓰는가? 아니 왜 글을 써야 하는가? 하나님이 그리 하고 계시니까. 그리 하라 하시니까. 내 안의 주체하지 못할 생명과 기쁨이 있으니까. 그리고 글 쓰는 것이 내게 생명이고 기쁨이니까. 내 글을 읽는 소수의 독자들이 내가 누렸던 것을 동일하게 경험하니까.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21쪽)

 

어찌보면 너무 평범해 보이는 고백이 왜 이리 크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것은 글을 쓰려는 데마 마음을 두고 주체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은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하다. 고3년 4월 처음 예수를 영적하고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 때문에 기도하고 감사했다. 그리고 그 때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일기에 담아 두었다. 적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누군가에게 들려주지 않으면 답답해서 어쩔 수 없이 썼다. 유진 피터슨은 개와 뼈다귀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려준다. 살이 없어 맛도 배부름도 채울 수 없는 뼈다귀를 하루 종일 입에 물고 빨고 있다. 이것이 묵상이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묵상하고 또 실천해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푹~ 빠져 지내야 한다. 시편의 상당한 분량이 다윗의 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윗의 묵상이 얼마나 현실적인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하나님과의 가슴 벅찬 감격을 잃어 버렸다. 글쓰기 실력만을 높이려했던 어리석음 때문에 ‘나’를 잊어버린 것이다. 글쓰기는 먼저 ‘나’를 찾아야 한다. 나를 찾고 내 안의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무엇인가를 시작해야한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하지만 특히 바울의 편지를 언급한 부분(71쪽)과 주보에 칼럼을 연재(73쪽)하는 부분을 언급할 때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필자도 중고등부를 맡아 지내오면서 수년 동안 주보에 칼럼을 써왔다. 얼마 길지 않은 단문이었음에도 그것을 쓰기까지가 얼만 힘겹고 어려웠는지 모른다. 억지로 쓰기고하고, 좋은 구절을 베껴 옮기기도 하면서 말 그대로 ‘발악’을 했다. 저자도 이 부분에서 자신의 힘들었던 부분을 토로해 놓은 것을 보고 위로를 많이 얻었다. 신약 성경 자체가 편지가 아닌가. 성도들의 필요성을 채워주고 교리적으로 올바른 가르침을 주기위해 쓴 것들이다. 글은 때로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목사에게 있어서 성도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사역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글쓰기야 말로 매우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교인들은 .. 목회자를 이해하게 되고, 교회를 더 사랑하게 되고’ 칼럼을 통해 ‘교인들을 상담해 주고, 교육하고, 목사와 교인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탁월하다.’고 말한다. 일거양득이 아닐까? 글 쓰는 목사에게는 목양과 글쓰기 실력이 계발되고, 교인들에게는 좋은 가르침과 교제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사실 이 책을 서평하기가 참 난해하다. 욕심은 금물이지만, 책의 전체 내용 중에서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옮겨 놓고 싶은 심정이다. 이론적인 부분에서도 실용적인 부분에서도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모두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이 가득하다. 조금 찔리는 부분이 있다면 에필로그로 달아놓은 출간 이후의 상황들을 설명해 놓은 곳이다. 필자만의 환상은 아니리라. 책을 쓰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고, 엄청난 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상상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지적해 주고 있다. 한 마디로 꿈깨라. 그러나 끝까지 도전하라.

 

개인적인 사담이자만 지금까지 읽은 김기현 목사의 책 중에서 가장 탁월한 책이 아닌가 싶다. 내가 워낙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 탁월한 책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글쓰기를 답해 주었을 뿐 아니라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날카롭게 상세하고 제시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참 멀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리라.

 

“그러나 하나의 주제를 꾸준히 파고들다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니시야마 아키히코의 <내 이력서를 바꾸는 공부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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