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 <중산층 이라는 착각>
조준현 <중산층 이라는 착각>
출판사 / 위즈덤 하우스
가격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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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한 책이 한권 나왔다. 초판발행이 2012년 9월 20일이고, 서점에 깔 린지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다. 저자는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인 조준현교수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요즘 우리나라에게 일어나고 있는 양극화에 대한 비판적 보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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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중산층이란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90년대를 넘어오면서 중산층(中産層) 신종단어가 생겨나면서 대한민국의 표준시민처럼 인식된 적이 있었다. 중산층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중반 통합야당인 민중당 박순천 최고위원이 국회 본회의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우리 당은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러나 중산층이란 용어는 사회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중산층은 재산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봉건시대의 귀족은 아니지만 일반 평민보다 높은 신분과 같은 개념이다. OECD의 개념을 빌리면 중산층은 중위 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계층으로 총인구를 나열할 경우 중간정도의 소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무난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2007년 기준 월 가처분소득 145-435만원 사이의 계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산층은 단지 소득으로만 구분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중산층은 자가용을 가지고 있으며, 한 달 250만 원정도의 소득과 대학교 이상의 학벌을 가진 시민이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평범하게 살아갈 재원과 지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먹고 사는데 지장 없고, 적당한 여유와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를 중산층이라고 말할 수 있다. 90년대 대한민국 국민은 ‘중산층’이라고 자부했고, 중산층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997년 IMF가 일어나면서 중산층은 갑자기 몰락하기 시작했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으로 내려앉았다. 양극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신분제와 비슷하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착화되어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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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주목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묻지 마 살인, 자살, 가정의 파괴 등 양극화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중산층으로 진입은 요원하기만 한다. 저자의 말을 직접 빌리면 이렇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개미귀신이 곤충들을 잡아먹는 장면이 나온다. 개미귀신이란 명주잠자리 애벌레의 다른 이름이다. 개미귀신은 모래밭에 절구 모양의 둥지인 개미지옥을 만들고 그 밑의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미끄러져서 떨어지는 개미 등은 잡아먹는다. 모래지옥에 빠진 곤충들은 온힘을 다해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흘러내리는 모래에 미끄러져 제자리오 떨어진다. 결국 지쳐 더 이상 아무 힘도 남아있지 않게 되면 개미귀신의 먹이가 되고 만다.”(7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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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몰락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소위 말하는 ‘소득의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젊은이들을 일컬어 88만원세대라고 부른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해도 시급 4500원으로 한 달 동안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88만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구조적으로 소득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의 불평등 분배는 중산층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중산층이 받아야할 소득을 부유층들이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시내의 대형마트의 하루 매출은 수억 원에 달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점원들은 시급제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서 일해도 100만원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조적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도록 차단 해 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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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중산층의 몰락이 사회적 문제와 경제적 위기를 불러 온다고 경고한다. ‘중하위층은 한계소비경향, 즉 소득이 늘어날 때 소비가 늘어나는 비중이 높고 반대로 상위층일수록 그 비중이 낮다. 따라서 경기침체로 중하위층의 소득이 줄면 소비가 상대적으로 더 큰 폭으로 감소하고 경기는 더욱 침체하게 된다. 경기침체의 겨로가 고용이 줄어들고 실업률이 상승하면 중하위층의 소득은 더욱 감소하고 다시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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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은 한 나라를 안정적으로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160쪽) 중산층이 많아졌다는 것은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국민들이 불만이 적으며 상대적으로 만족감을 갖는다는 말이다. ‘중산층이 얼마나 두텁고, 중산층이 삶의 질이 어떤 수준인가는 그 사회의 안전판이 얼마나 든든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것이다. 로마의 멸망이나 프랑스 대혁명의 발단은 양극화의 극단적 심화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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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으로 양극화의 길을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로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또는 복권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돈 잘 버는 결혼 배우자 또한 로또이다. 근래에 들어와 최고의 신붓감은 초등학교 여교사이다. 돈 잘 벌고 정년까지 보장해주는 그야말로 ‘신붓감의 로또’인 셈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공무원에 목을 매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특혜 때문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나 꿈의 중산층으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들인 셈이다. 저자는 이러한 로또 열풍으로 인하여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저 출산 현상을 꼬집고 있다. 불가피하게 결혼과 자녀 양육을 위한 준비과정이 늘어나고, 자녀를 적게 출산하여 양육비의 위험부담을 줄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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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러한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지금, 대안은 없을까? 저자는 개발시대의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답은 복지국가이다.
“남들이 10번 삽질 할 동안 나는 20번 한다는 경제개발시대의 패러다임은 이제 폐기하고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은 생산을 가능하게 할 도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생산 증가와 고용과 소득을 증가시켜 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소비 증가는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의 증가로 이어져 다시 소득과 소비를 증가시키는 선순환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다.”(343쪽)
저자는 단지 복지국가가 아니나 ‘복지지출’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는 혜택이 아니라 인간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대우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지는 극빈자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는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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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혀지는 책임에도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는 책이다.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중산층의 몰락을 초래하고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결론에서 저자는 복지국가를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중산층을 다시 세우고 나라의 안정을 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한다면 작금(昨今)에 일어나는 ‘묻지 마 살인’이나 왕따, 가정의 파괴 등은 부의 불평등 분배로 인한 결과인 셈이다. 일한 대로 받지 못하여 시지푸스의 저주처럼 가난의 대물림이 악순환이 되어 경제적 신분이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역사의 교훈을 빌어온다면 경제적 양극화는 궁극적으로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를 잠재적으로 키워간다. ‘우리에게 자유와 떡을 달라’는 프랑스 시민들의 외침은 수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현대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문제이며, 소통의 부재로 인한 갈등의 첨예화이다. 부유한 자들은 자신의 부를 나누어 주고 싶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러한 부유층에 대하여 불신하고, 대항하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88만원 세대, 아웃소싱, 청년 실업 등의 단어 등은 구조적으로 부의 불평등을 낳게 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정서적 불평등을 조장한다. 이러한 위기는 살인, 폭력, 왕따 등의 외향적 표출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살, 우울증, 가정파괴 등의 내향적 표출로 나아가기도 한다.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현대인들은 더욱 소유에 집착하고, 소유에 종속됨으로 물질주적 환원주의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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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안으로 복지국가를 추천한다. 영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니그렌의 <아가페와 에로스>의 한 구절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교회는 탐욕의 바다에서 자기죽임의 나눔을 통해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과제를 안는다. 지교회 중심과 성장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에 대한 경고이자 과제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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