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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7:19 주해와 묵상,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여호와

샤마임 202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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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7:19 주해와 묵상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사 57:19, 개역개정)

본문 주해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라는 구절은 히브리어 원문에서 _“בּוֹרֵא נִיב שָׂפָתָיִם”_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보레(בּוֹרֵא)*는 ‘창조하다’는 동사로,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무(無)에서 창조하실 때 사용된 그 단어이다. 즉, 단순히 말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입술의 열매 자체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선언하시는 구절이다.

 

“입술의 열매”는 히브리 시어로서 ‘언어’, ‘찬양’, ‘회개’, ‘신앙고백’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호 14:2 참조). 이는 인간의 말이 단순히 공허한 울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역사하는 구속적 행위임을 시사한다.

 

“먼 데 있는 자”와 “가까운 데 있는 자”는 단순한 거리적 표현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괄하는 구속사의 확장을 암시한다. 바울은 이 구절을 엡 2:17에서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평강’을 선포하는 사건으로 이해하였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반복은 히브리 문학의 강조법으로, 이 평강이 단순한 안녕이나 번영이 아니라, 샬롬(שָׁלוֹם)의 본래적 의미, 곧 ‘관계의 회복’, ‘내적 통합’, ‘하나님과의 화목’을 나타낸다.

 

마지막 “내가 그를 고치리라”는 선언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적 치유이며, 이는 단순한 육체적 회복이 아닌, 영혼과 언어, 존재 전체에 대한 회복을 의미한다. 언어의 창조, 평강의 선언, 고침의 약속은 모두 메시아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구속사의 중심이다.

열매를 창조하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말을 만든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이 나의 입술에 열매를 창조하신다. 말은 내가 만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내 영혼 깊은 곳에 심으신 생명의 씨앗이 언어라는 열매로 맺힌 것이다. 이사야 57:19의 말씀은 내 언어에 대한 시선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하나님은 단지 나의 말에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말의 씨앗을 처음부터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이 표현은 내가 얼마나 쉽게 말하고, 얼마나 무책임하게 고백하며, 얼마나 자주 말로 죄를 짓는지를 찔러낸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의 무의미한 말들 속에서조차 생명을 창조하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은혜를 말한다. 나의 말이 나의 믿음을 드러내고, 나의 믿음이 나의 존재를 구성할 때, 나는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앙을 고백하며, 평강을 구하는 자로 살아가게 된다.

 

특별히 이 구절이 반복해서 말하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선언은, 내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내 언어는 종종 평강을 깨뜨리는 도구가 되었다. 사람을 논쟁 속에 몰아넣고, 나 스스로의 영혼을 분열시켰으며,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도 감추어진 마음으로 껍데기만 남은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도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의 말 속에서도 일한다. 나는 네 입술의 열매를 다시 창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내게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선언한다. 말씀은 로고스이며, 그리스도 자신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동시에 인간의 언어로 ‘고백되어야 할 진리’이시다. 우리의 입술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할 때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 이 고백은 인간의 이성과 감정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셨기에 가능한 신앙의 사건이다.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평강은 이방인과 유대인, 가까운 자와 먼 자 모두에게 선언된다. 나 또한 원래는 ‘먼 데 있는 자’였다. 말에 있어서,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자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평강을 선언하셨다. 그리고 그 평강이 내 말 속에, 내 고백 속에, 내 삶 속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평강은 단지 감정의 평온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다시 회복된 존재로 살아가는 길이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말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말은 존재의 반영이며, 믿음의 열매이다. 하나님은 나의 입술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평강을 나누게 하시며, 진리를 증언하게 하신다. 내가 매일 하는 기도, 고백, 찬양, 그리고 침묵조차도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열매일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 말의 뿌리를 손수 일구신다. 내가 무너질 때에도, 비틀거리며 터뜨리는 신음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를 고치리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말은 치료의 시작이다. 그 말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입술의 열매로 고백한다.
“주는 나의 주시며, 나의 평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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