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장 강해
출애굽기 1장 강해
출애굽기 1장 1-14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1장 말씀을 함께 나누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를 원합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억압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1장 1절부터 14절은 요셉 이후의 세대가 겪은 고통과, 그 속에서도 끊임없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고대 이스라엘의 고난사가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세상 속에서 정체성을 잃고 억압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를 함께 묵상해 봅시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
본문을 읽어 봅시다. 출애굽기 1장 8절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이 말씀은 단순히 정치권력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권력 아래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학적 전환점입니다. 여기서 "알지 못하다"는 말은 단순한 무지(ignorance)가 아니라, 일부러 무시하고 배제하는 의도적인 행위입니다. 히브리어로는 (yada)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관계적 앎을 의미합니다. 즉, 이 왕은 요셉과 그 백성의 정체성과 은혜의 역사를 일부러 지우려는 자입니다.
요셉은 애굽 땅의 구원이었고, 그의 지혜는 이방 땅에 하나님의 복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은혜의 기억은 잊혀지고, 하나님의 백성은 이방의 억압 아래 종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려 합니다.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권력을 절대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이 와중에도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의 백성
출애굽기 1장 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여기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창세기 1장과 9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하신 축복, 즉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집트 땅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나타냅니다.
히브리어로 '생육하다'는 (parah), '번성하다'는 (rabbah), '강하여지다'는 *(atsam)*인데, 이 세 단어가 이어져 사용된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증가를 넘어서 하나님의 생명의 힘이 이방의 땅에서도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자들에게 큰 위로입니다. 외부 환경이 아무리 불리해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 아래 계속 자라고, 퍼지고, 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해와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정결해지고 번성합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은 사람에게서 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나기 때문입니다.
고통받는 자들의 신음
1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우고 고역으로 괴롭게 하여" 이 구절은 단순히 노동의 과중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인간의 권력 아래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비극적인 현실을 말해줍니다. 히브리어로 ‘괴롭게 하다’는 *(anah)*는 ‘짓밟다’, ‘억누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정체성의 파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신음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훗날 모세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의 고통을 내가 분명히 보고, 그 신음 소리를 들었다"(출 3:7). 하나님은 인간 권력의 억압 속에 무너진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실재성(divine immanence)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함 속에 무너지고 신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 절망하지만, 하나님은 침묵 가운데서도 우리를 향해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리고 정하신 때에 반드시 구원의 손을 내미십니다.
세상의 두려움과 통제의 논리
출애굽기 1장 9-10절은 바로의 두려움을 보여줍니다. "이 백성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 대적과 합하여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여기서 바로는 자기 권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 백성을 통제하려 합니다. 이 말은 단순한 정치적 전략이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세상의 반역(rebellion against the kingdom of God)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이후로 그의 백성을 통해 세상을 회복하시고자 하셨고, 세상은 끊임없이 이를 막기 위해 억압과 통제의 수단을 동원해 왔습니다. 이는 바벨탑 사건(창 11장)과도 연결됩니다. 인간이 자기 중심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계획을 막고자 했던 그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는 두려움 때문에 이스라엘을 억누르지만, 역설적으로 그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실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번성과 생육이 너무 강하게 나타나니, 세상 권력이 불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면, 세상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체성을 잃으면, 세상은 우리를 오히려 동화시켜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억압이 존재할지라도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다는 확신입니다.
결론 정리
출애굽기 1장은 단지 고대의 역사적 기록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속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방식으로 자라고, 억압받고, 그러나 결국 구원의 약속 안에서 보호받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예언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은 지금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세상은 교회를 무시하고, 억압하며, 통제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강하여지기를 원하십니다. 고통의 시간 속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고통은 하나님의 구원이 가까워진다는 신호입니다. 우리의 신음은 하늘에 닿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신음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1장을 보며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는 보이지 않아도 믿겠습니다. 나는 고통 속에 있어도, 주의 언약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붙들겠습니다. 나는 작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번성과 강함의 근원이심을 믿습니다." 아멘.
출애굽기 1장 15-22절 강해
믿음의 산파 십브라와 부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출애굽기 1장 후반부인 15절에서 22절 말씀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이 본문에는 당시 히브리 산파였던 십브라와 부아가 등장합니다. 짧은 몇 절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구속사의 흐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신앙의 본을 보여주는 여성들입니다.
본문을 먼저 살펴봅시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 명령합니다.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 그 자리가 아이면 그를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출 1:16). 이는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말살하려는 정책이었습니다. 바로는 남자아이를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미래를 끊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생명을 죽이는 정책이자, 하나님 창조 질서에 대한 반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산파들은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 경외합니다.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 1:17). 여기서 '두려워하다'는 히브리어 *(yare')*는 단순히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서는 경건함과 존경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 두 여성은 바로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우선이라는 믿음의 결단을 내립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깊은 교훈을 줍니다. 세상의 논리가 생명을 위협하고 진리를 억압할 때, 우리는 누구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법이 인간의 법보다 높다는 이 신앙의 태도는 신약의 사도행전에서도 이어집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하나님은 이 산파들의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출 1:20). 여기서 '은혜'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tov), '좋게 하시다' 또는 '복을 주시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생명을 살린 행동을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 경외의 태도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 산파들에게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다'(출 1:21)고 말씀합니다. 이 표현은 보통 남성 중심의 계보에 등장하는 표현인데, 여기서는 여성에게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이는 이들의 믿음이 단순한 의로움 그 이상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한 영적 리더십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여러분, 십브라와 부아는 이름조차 모를 수 있는 인물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순종한 자들의 행위가 결코 잊혀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강요 앞에서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선택한 그들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까? 법과 제도, 사람들의 시선, 사회의 논리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십브라와 부아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담대하게 서는 믿음의 선택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기억하시고, 은혜와 복으로 갚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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