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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 구조와 강해

샤마임 2025.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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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 구조

출애굽기 3장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구속사 전체에서 매우 중심적인 장입니다. 아래는 출애굽기 3장의 구조입니다.

  1.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3:1–6)
  2.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부르심 (3:7–12)
  3. 하나님의 이름 계시: 나는 스스로 있는 자 (3:13–15)
  4.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 (3:16–22)

출애굽기 3장 강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 3장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이 장은 구약 전체에서도 매우 특별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신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부르심, 그리고 이름의 계시는 그 어떤 설교보다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고,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하게 만듭니다.

출애굽기 1장과 2장은 이스라엘의 고난과 한 사람 모세의 준비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3장은 그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원의 도구로 세워지는 본격적인 시작을 보여주는 장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깊이 묵상하며, 우리의 일상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를 원합니다. 이제 본문을 함께 살펴보며 그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출 3:1–6)

본문을 읽어 봅시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출 3:1). 모세는 지금까지 40년을 미디안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도망자였고, 목자였으며, 자신의 인생이 이제는 이렇게 끝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평범한 일상 속에서, 목양의 길 한복판에서 모세를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 것을 보았더라"(출 3:2).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떨기나무'(히브리어 (seneh))는 광야의 작고 초라한 관목입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holy presence)를 상징하는데, 불타지만 타지 않는 나무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동시에 인내와 지속성, 그리고 은혜를 상징합니다.

이 장면은 고난받는 이스라엘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불은 고난의 상징이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떨기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이 멸망하지 않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그 떨기나무를 통해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출 3:4). 두 번의 반복은 성경에서 친밀하고도 절박한 부르심의 표현입니다. 마치 사무엘을 부르실 때처럼 말입니다(삼상 3:10).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합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신을 벗는 행위는 겸손과 복종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감히 발로 디딜 수 없는 존재이며, 오직 은혜로 그 임재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하나님의 임재가 임할 때 거룩한 땅이 됩니다. 목양의 평범한 땅도, 회의실도, 교실도, 가정도—하나님이 임하시면 거룩한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부르심 (출 3:7–12)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 3:7). 여기서 '보다'(히브리어 (ra'ah)), '듣다'((shama)), '알다'((yada))는 모두 하나님의 감각적이고 인격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고통의 현장에 함께 계시고, 그 아픔을 느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모세는 이 말씀에 즉각 반응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겸손과 두려움을 봅니다. 모세는 과거에 자기 힘으로 정의를 세우려다 실패했던 기억이 있기에, 이제는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합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사명 수행의 유일한 근거입니다. 히브리어로 '함께 있다'((hayah imka))는 표현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삶 안에서 역사하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능력을 사용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모세를 통해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르시는지를 배웁니다. 완벽한 사람, 강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출애굽기 3장 후반 강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출애굽기 3장 후반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의 깊은 계시와, 이스라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명령을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앞서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분의 이름을 직접 드러내십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장로들과 바로 앞에서 행할 구속의 계획을 명확히 밝히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단순히 불쌍히 여겨 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시며 이름을 통해 자신의 존재방식을 계시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계시: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출 3:13–15)

본문을 읽어 봅시다. 모세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사명을 받은 자로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누가 보내셨는가?’는 ‘그 사명의 권위와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히브리어 원어는 *(Ehyeh Asher Ehyeh)*로, 직역하면 "나는 내가 되는 자다", 또는 "나는 나다"입니다. 이 말은 무한하고 자존적인 존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 변하지 않는 절대자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으시며, 스스로 계시는 분입니다.

이 고백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정체성이며,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와도 연결됩니다. 예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라고 하실 때, 그 표현 속에는 "나는 I AM이다"라는 계시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는 곧 출애굽기의 계시와 신약의 그리스도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 이어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가 나의 이름이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5). 여기서 여호와 (YHWH)는 (Ehyeh)와 같은 어근을 공유하며, ‘존재하시는 분’, ‘계속해서 계시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언약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감정이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신이 아닙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며, 자존적이고 스스로 충만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 삶에 임하신다면, 그 사명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이 동반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 (출 3:16–22)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확한 명령을 주십니다.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곧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아 애굽에서 행한 일을 다 보았노라 하라"(출 3:16). 여기서 '돌보아'라는 말은 히브리어 *(paqad)*로,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주권적인 관심과 구원 행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눈여겨보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직접 개입하시기 위한 시간에 이르렀다는 선언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듣고 믿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곧장 바로 앞에 나아가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으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서 희생제사를 드리게 하소서"(출 3:18)라고 요청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사흘길'은 상징적 표현으로, 단순한 거리 개념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충분한 거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단지 해방만을 위한 민족이 아니라, 예배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목적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가 이 요청을 순순히 들을 리 없다는 것도 아십니다. "내가 아노니 강한 손을 쓰기 전에는 그가 너희를 보내지 아니하리라"(출 3:19).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 안에서 애굽의 거절조차도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출 3:20). 이 말씀은 출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예고하는 구절이자, 하나님의 구원이 단지 도피가 아닌 심판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빈손으로 나오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리니...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출 3:22).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의 보상이자, 오래도록 억압받은 백성에게 주어지는 해방의 증표입니다. 억눌린 자를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선포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여러분, 출애굽기 3장의 후반은 하나님의 존재 계시와 구원의 계획이 구체화되는 순간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하나님의 선언은 그 어떤 인간 언어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신비와 권위를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당신의 이름과 권세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묻습니다. "하나님, 누구십니까? 나는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나다. 나는 너와 함께한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이 바로 사명의 시작입니다. 우리의 해방은 단지 억압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예배와 언약의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며 고백합시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며, 그분이 나를 보내신다." 그때 우리의 인생에도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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