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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칼럼41
고등부칼럼-역사의 주관자 예수 그리스도
고등부칼럼-지금 당장하라!
고등부칼럼-영적 암초를 주의 하라!
고등부칼럼 - 부끄러운복음 VS 자랑스런 복음
부끄러운복음 VS 자랑스런 복음 복음은 부끄러운 것일까 아니면 자랑스러운 것일까?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한다.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알리려고 하지 않으며,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K는 파지를 주워 팔아 살아가는 자신의 부모를 아무에게도 소개하지 않았고, 직업이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가 초라하고 미천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가치를 작게 여긴다는 뜻이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복음의 가치를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복음에는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역사는 복음을 자랑했..고등부칼럼-무엇을 위해 죽겠는가?
무엇을 위해 죽겠는가? 얼마 어느 TV에서 청담동 며느리의 일상이란 주제로 방영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갑부들이 산다는 청담동, 그곳의 며느리들은 어떻게 살까? 한 분은 자신의 집에 수 천벌의 옷이 있다고 말했다. 하루에 한 벌씩 입어도 족히 몇 년은 걸리는 엄청난 옷이다. 옷의 가격만 따져도 수십억이 넘는다. 사람은 자신이 귀중하게 여기는 것에 돈과 시간을 사용한다. 어떤 사람은 차에, 어떤 사람은 집에, 어떤 사람은 옷에, 어떤 사람은 건강에, 어떤 사람은 친구들에게 투자한다. 그것들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는 그 사람이 어떤 것에 돈을 사용하는가 보면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깝지 않..고등부칼럼-제한될 수 없는 하나님
제한 될 수 없는 하나님 몇 년 전 B교회의 J집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을 믿기 전 그는 자신의 전 인생을 꼼꼼하게 계획하고 준비했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인생을 만들어 나갔다. 그러다 40대 중반에 갑자가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인생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회사의 부도와 함께 나의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만한 마음이 부서지고 자존감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었다. 자살을 시도하기를 몇 번 아내의 권유로 교회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하나님께서 계획한 또 다른 계획을 발견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자신의 계획에 없었던 분, 그렇게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집사님은 하나님의 ..고등부칼럼-기다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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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칼럼-영적 카나리나
영적 카나리나 카나리아는 되새과에 속하는 애완용새이다. 몸 길이는 2.5-13.5cm까지 자란다. 무게는 156-20g이며, 귀여운 모습과 아름다운 털과 고운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다. 옛날에는 탄광에 들어갈 때 항상 카나리아를 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메탄과 일산화탄소에 매우 민감하여 이들 가스에 노출이 되면 죽어 버린다. 카나리아가 노래할 때 광부들은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지만 노래를 멈추면 곧바로 탄광에서 탈출하여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카나리아는 광부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을 받았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어두움을 밝히는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영적 카나리가되어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향하여 심판과 멸망이 임..고등부칼럼 /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길이요 영국 선교사로 일했던 스탠리존스 선교사님이 복음 전하다 밀림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리 길을 찾아도 도무지 찾지를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렵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밀림 속에서 일하는 원주민을 만나게 되었다. 선교사님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마을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알았다는 대답을 한 원주민은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저녁이 다되자 원주민은 자신을 따라오라면서 앞서 가기 시작했다. 길도 없는 험한 곳을 뚫고 가는 것이었다. 선교사님은 두렵기도 하고, 혹시 저 사람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지 않는지 걱정도 되었다. 다급한 마음에 ‘정말 마을로 가고 있습니까?’라고 다그쳐 물었다. 원주민은 선교사님을 보며 ‘나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길이 있는..고등부칼럼-“하나님의 삼고초려(三顧草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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