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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9:1 - 9:34 강해설교

샤마임 202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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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 예배자의 이름이 다시 불릴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여시고 귀 기울이시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상 9장 1절부터 34절까지는 언뜻 보기엔 단순한 귀환자의 명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어떻게 회복시키시고, 그 회복의 중심에 예배와 성전 봉사를 놓으셨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하는 자로, 제자리를 회복할 때 비로소 정체성을 되찾게 됩니다. 이 말씀 안에서 오늘 우리의 사명과 자리를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의 흩어짐과 하나님의 심판

본문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사건을 먼저 상기시키며 시작합니다. "유다가 범죄하였으므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더니"(역대상 9:1). 이 구절은 역대상 앞 장들과 연결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졌는지를 요약합니다. 히브리어 ‘사로잡다’라는 단어 ‘갈라’(גָּלָה)는 단순히 육체적 이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뜻하는 영적 단절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의 메시지는 곧 회복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시지 않으시고, 정한 때가 이르자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이키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징계는 파괴가 목적이 아니라 정결과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징계 속에서도 항상 회복의 문을 열어 두십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회복된 정체성

2절부터는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정착한 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 자손과 므낫세 자손이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는데”(역대상 9:3).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남유다 왕국에 속했던 유다와 베냐민만이 아니라, 북이스라엘 지파였던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도 함께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한 귀환 이상의 신학적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은 단지 지리적 회복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 회복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갈라졌던 민족이 다시 하나로 모이고, 하나님 앞에 함께 예배하는 백성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단지 수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이며,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거룩한 중심입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레위 사람과 제사장의 회복—예배의 재건

그 다음으로 본문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명단을 언급하며, 그들의 직무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레위 사람 중에서 스마야와 하삽과 아스리감과 하사뱌와 브끄히야와 맏다냐와 미가가 있었으며”(역대상 9:14). 이들은 성전에서 찬양과 봉사, 정결 의식을 담당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특히 문지기의 역할이 강조됩니다. “문지기는 다 문이 있는 곳에 있어서…”(역대상 9:22). 히브리어로 ‘문지기’는 ‘쇼에르’(שׁוֹעֵר)로, 단순히 문을 여닫는 사람이 아니라, 성소의 거룩함을 지키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제사장이 제사장답게, 예배자가 예배자답게 설 수 있도록 성전의 경계를 지켰습니다. 예배의 질서와 정결은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토양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사역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말씀을 맡은 자, 찬양을 맡은 자, 기도를 맡은 자, 그 모두가 성소의 경계를 지키는 ‘문지기’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공동체 전체가 회복됩니다.

성전 중심의 공동체—하나님 나라의 질서

본문 후반부에서는 성전 주변의 거주자들과 그 역할이 세밀히 기록됩니다. “이 모든 사람은 다 자손의 족보를 따라 예루살렘에 거하여 그 직무를 행하였으며”(역대상 9:34). 이 문장은 단순한 행정 기록이 아니라, 예배 중심 공동체의 질서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각 지파, 각 가문, 각 직무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질서 있게 세워졌고,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여기에는 우열도 없고, 크고 작음의 차이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듯, 교회는 한 몸이며, 각 지체가 다 중요합니다(고린도전서 12:14-27).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존재들입니다. 내가 맡은 일이 작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구속사의 집을 짓고 계십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대상 9장 1절부터 34절까지는 이름의 목록 같지만, 그 이름들 사이로 흐르는 것은 회복과 소명의 이야기입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들이 돌아와, 다시 예루살렘에 거하며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서가는 모습은, 곧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이름을 부르시며 자리로 돌아오라 하십니다. 그 자리는 예배의 자리이며, 사명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다시 하나님의 임재를 향할 때, 비로소 우리는 회복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이름을 잊지 않으시고, 생명책에 기록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교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시대를 위해 제자리를 지키는 예배자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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