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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sées25
[팡세] 540 보이는 신과 보이지 않는 신
[팡세] 358 이성에 복종된 기독교
[팡세] 358 이성에 복종된 기독교 만약 모든 것을 이성에 복종시킨다면 우리의 종교를 아무런 신비로운 것도 초자연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고 했다. 중세의 부정신학자 안셀무스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믿는다고 이해가 될까? 믿음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할까? 난 반댈세. 그건 불가능 하다고. 차라리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는 것이라네.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차라리 믿지 않겠어. 만약 믿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일을 알고, 이해한다면 얼마나 사는 게 재미가 없을까. 난 그짓은 못하겠다. 믿음이란 말이지.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어도 믿는 것이 믿음이지. 나에게 오는 불행 안 몰라. 이해가 안 돼! 세상이 갑자기 위기에 닥치는 것..[팡세] 333 하나님만이 진정한 선이다.
[팡세] 121-153.154 인간은 짐승이면서 천사다
팡세-신을 갈망하는 이유는?
Blaise Pascal 신을 갈망하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통제되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잠재하고 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오직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이다. 아담은 그것을 통제함으로 모든 실권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선악과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것을 '신이 되고자하는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이 욕망은 너무나 강열하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과학과 의학, 경제 등등의 발달은 결국 인간의 통제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고, 모든 환경을 자신의 통제아래 두려하는 것이 바로 신이 되려는 욕망인 것이다. 오직 신만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이나 바벨탑 사건 등은 모두 모든 것을 지배..팡세 257 세 부류의 사람들
이 세상에는 다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첫 번째는 신을 발견하여 이를 섬기는 사람들, 두 번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를 애써 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 번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추구하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첫 번째 사람들은 도리에 합당하고 행복하며, 세 번째 사람은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불행하며, 중간의 사람들은 도리에 합당하지만 불행하다.팡세 200, 감옥에서 화투치기
파스칼은 내기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남겨진 한 시간의 문제를 다른다. 나에게 한 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사용하겠느냐는 것이다. 팡세 200 한 남자가 감옥에 갇혀 있는데 자기에게 선고가 내려졌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 수 있는 여유는 한 시간밖에 없다. 만약 선고가 내려진 것을 알게 된다면 그 한 시간 안에 충분히 선고를 취소 받을 수 있는 경우, 그 시간을 선고가 내려졌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지 않고 피케놀이(카드놀이의 일종)에 허비한다면 그것은 자연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 자연에 어긋난 일이다. 이것이야 말로 신의 손(신의 벌)을 무겁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을 구하는 사람들의 열정만이 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의 ..팡세, 162 클레오파트라의 코
팡세, 실물과 그림
실물과 그림 실물을 보고는 아무도 감탄하지 않는데, 그것을 묘사한 그림을 보며 흡사하다고 감탄하게 되니, 그림이란 이처럼 공허한 것이다. -파스칼, 팡세에서... 우리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피조물은 놀라지 않으면서 그것을 흉내 낸 조잡한 그림에는 놀라워하는 것이 인간이다. 왜 놀라는 것일까? 사람이 신을 흉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와! 정말 똑같다." 사람도 신처럼 그 어떤 것을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능력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느낌도 갖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인간이 가진 놀라움이란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 같은 것이다. 파스칼에 인간의 본성에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인간의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