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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34
팡세-신을 갈망하는 이유는?
Blaise Pascal 신을 갈망하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통제되지 못하는 어떤 것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잠재하고 있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오직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이다. 아담은 그것을 통제함으로 모든 실권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선악과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것을 '신이 되고자하는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이 욕망은 너무나 강열하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과학과 의학, 경제 등등의 발달은 결국 인간의 통제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고, 모든 환경을 자신의 통제아래 두려하는 것이 바로 신이 되려는 욕망인 것이다. 오직 신만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이나 바벨탑 사건 등은 모두 모든 것을 지배..데카르트 지식 습득 4가지 방법
중용, 도는 가까이 있다.
중용(中庸), 도는 가까이 있다. 이 부분은 도를 실천하려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부분이다. 주희는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이론 적으로도 남아서는 안 되고 삶 속에서 실천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도라고 말한다. 주희에 의해서 편집된 [중용]의 13장과 15장의 내용을 통해 '도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13장 1. 공자가 말했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않는데 사람들이 도를 행하면서 사람에게서 멀어지니 이렇다면 도라고 할 수 없다.” 2. [시경]에 “도끼자루로 쓸 나무를 베는구나! 도끼자루로 쓸 나무를 베는구나! 도끼자루의 모형은 멀리 있지 않다”고 하였다. 도끼자루를 쥐고서 도끼자루로 쓸 나무를 베면서 힐끔 쳐다보고는 오히려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의 도..팡세 257 세 부류의 사람들
이 세상에는 다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첫 번째는 신을 발견하여 이를 섬기는 사람들, 두 번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를 애써 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 번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추구하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첫 번째 사람들은 도리에 합당하고 행복하며, 세 번째 사람은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불행하며, 중간의 사람들은 도리에 합당하지만 불행하다.팡세 200, 감옥에서 화투치기
파스칼은 내기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남겨진 한 시간의 문제를 다른다. 나에게 한 시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사용하겠느냐는 것이다. 팡세 200 한 남자가 감옥에 갇혀 있는데 자기에게 선고가 내려졌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 수 있는 여유는 한 시간밖에 없다. 만약 선고가 내려진 것을 알게 된다면 그 한 시간 안에 충분히 선고를 취소 받을 수 있는 경우, 그 시간을 선고가 내려졌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지 않고 피케놀이(카드놀이의 일종)에 허비한다면 그것은 자연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 자연에 어긋난 일이다. 이것이야 말로 신의 손(신의 벌)을 무겁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신을 구하는 사람들의 열정만이 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의 ..팡세, 실물과 그림
실물과 그림 실물을 보고는 아무도 감탄하지 않는데, 그것을 묘사한 그림을 보며 흡사하다고 감탄하게 되니, 그림이란 이처럼 공허한 것이다. -파스칼, 팡세에서... 우리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피조물은 놀라지 않으면서 그것을 흉내 낸 조잡한 그림에는 놀라워하는 것이 인간이다. 왜 놀라는 것일까? 사람이 신을 흉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와! 정말 똑같다." 사람도 신처럼 그 어떤 것을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능력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도 느낌도 갖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인간이 가진 놀라움이란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 같은 것이다. 파스칼에 인간의 본성에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인간의 ..팡세 358 인간의 불행
Blaise Pascal 팡세 358 인간의 불행 끊임없이 자신을 천사이고 싶어하는 인간을 고발하는 파스칼의 독설은 그의 팡세 358번에서 정점을 이룬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거니와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불행은 천사를 닮고 싶어하면서도 짐승을 닮아가고 있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인간들의 가지는 이중적인 고립은 철저한 자기고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을 하나님으로 자리로 올리고 싶었던 욕망을 소외를 만들고 말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만의 존재의미를 찾고 싶어하지만 삶을 짐승의 삶이다. 천사와 짐승은 양 극단으로 서로 완벽하게 닮아있다.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 순종으로 살아간다면 짐슴은 철저히 동물적 본성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이것은 마치 북극과 남극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만 ..팡세 585 숨어 계시는 하나님
팡세 585 숨어 계시는 하나님 585 신이 자신을 숨기려 하셨던 일 만일 종교가 오직 하나밖에 없다면, 신은 그 속에 뚜렷하게 나타나실 것이다. 만일 우리 종교에만 순교자가 있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은 이처럼 숨어 계시므로, 신이 숨어 계심을 설교하지 않는 종교는 어떤 것이든 모두 진리가 아니다. 또한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모든 종교도 인간을 이롭게 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종교는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숨어계시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어떻게 해서 이런 표현을 썻을까? 앞뒤 본문을 살피면 이사야선지자의 이 표현은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다. 이..자판기와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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