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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958

중고등부칼럼-꿈의 루비콘 강을 건너라!

2013년에는 꿈의 루비콘 강을 건너라! 2013년 새해가 밝았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새해가 되면 저마다 한 해의 꿈을 설계하고 계획한다. 어떤 이들은 인생대박‘로또’를 기대하며 첫날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빌기도 한다. 로또는 아니더라도 행운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범인(凡人)들의 욕망이다. 그럼 예수의 제자들은 어떤 꿈을 꿔야할까? 올해는 가슴 뛰는 꿈을 가져보자. 먼저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꿈을 꾸자.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기독교의 역사를 새로 쓰는 혁명적 삶을 살았고, 어거스틴은 방탕아에서 초대교회의 교부가 되었고, 루터는 중세의 타락한 교회를 새롭게 하고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월버포스는 노예해방에 자신의 전 삶을 헌신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님은 미국의 흑인 인권을 위해..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1. 4.

중고등부칼럼-유종의 미를 거두자

유종의 미를 거두자! 벌써 2012년 마지막 날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옛 어른들은 시간이 쏜살처럼 날아간다고 했다. 활에서 떠난 화살이 적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이 지나가 버리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한 해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연말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처럼 다짐과 계획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어 어느새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에 결연하게 세운 다짐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결코 물러서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결단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차일피일 뒤로 미루다 결국 년 말은 다가오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러한 유혹이 따르..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2. 12. 29.

목회칼럼-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목회칼럼-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누군가에게 설렘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이 설렘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렘으로 가득하게 한다. 목회자로서 사역을 시작한지 벌써 만14년 8개월이 채워졌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들임에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깊이 배어있는 시간들이다. 처음에는 열정으로 가득 차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고 스스로 고뇌해야 했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은 실의에 빠져있다. 마음속으로 '내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설교하고 섬기는 데도 저들은 왜 변하지 않는 것일까?' 고민한다. 필자 역시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은 적이 거..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2. 12. 28.

다시 십대(중고등부)로 돌아간다면

어느 설문에서 다시 십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를 물었다. 놀랍게도 66.9%가 공부였다. 현재 중고등부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싫은가를 물으면 '공부'다.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 왜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가 사회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는 학벌 사회기 때문에 학벌이 낮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는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년 이 후의 사람들이 십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 같은 경우 자신의 취미를 살리고 싶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일상이야기/교회교육 2012. 12. 16.

목회칼럼-머리가 될 것인가? 꼬리가 될 것인가?

목회칼럼머리가 될 것인가? 꼬리가 될 것인가? 누군가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뱀의 머리가 되고 싶습니까? 용의 꼬리가 되고 싶습니까?"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질문입니다. 저는 한 참을 고민하다 뱀의 머리가 낫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대답을 하고 나서 저만의 고민인가 싶어 몇 분들에게 여쭈어보니 대부분이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국사람들의 심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용의 꼬리가 보다는 작지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뱀의 머리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은 연합해서 팀을 이루기보다는 홀로 뭔가를 이루는 것을 더 좋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 아들의 큐티를..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2. 11. 25.

목회칼럼-감동있는 목회를 하라!

목회칼럼감동이 있는 목회를 하라! 감동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예전에 어떤 목사님은 감동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 적이 있다. 그분이 어떤 사역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감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생각해 볼만한다. 감동을 이야기 전에 한 가지 재미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심리학에서 종종 이용되는 이야기다. 자 게임을 시작해보자! 어떤 사람이 10만원을 당신에게 준다. 그런데 당신 옆에 한 친구가 있는데, 당신은 10만원을 받고 그것은 친구와 나누어 가져야 한다. 얼마를 친구에게 주던지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문제는 그 친구가 당신이 준 돈에 불만을 품고 받지 않으면 당신도 그 돈을 받을 수 가 없게 된다. 그러나 단 10원이라도 친구가 받는다면 당신은 나머지 돈을 받을 수 있다. 그 사실을 당신의..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2. 11. 25.

목회칼럼-중년의 위기와 영적 위기

목회칼럼 중년의 위기와 영적 위기 영화화 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소설 라는 소설이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인 로버트 킨케이드와 가정주부인 프란체스카의 나흘간 사랑을 다룬 실화 소설이다. 여주인공인 프란체스카는 교사 일을 하며 행복해 했지만 남편의 반대와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사직을 내려놓아야 했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꿈을 이루기에 너무나 척박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고 홀로 집을 지키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마을을 찾아온 사진작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감정에 이끌려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 이었다. 사진작가였던 킨케이드과 대화를 나누면서 프란체스카는 그녀가 그토록 동경하던 자유를 누리며 살아..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2. 11. 22.

목회칼럼-자일리톨과 영적기만

목회칼럼 자일리톨과 영적 기만(欺瞞) 우리나라의 껌의 역사는 자일리톨 이전의 껌과 이 후의 껌의 역사로 구분할 만큼 자일리톨은 우리나라 껌의 역사에서 신기원을 이루었다. 2000년 11월 롯데에서 자일리톨 껌이 출시된 지 5개월 만에 국내 단일 품목 껌으로는 처음으로 매축 30억원을 기록했고, 2001년 1월에 40억 원을 달성했다. 이뿐 아니라 그해 9월에는 무려 105억 원을 기록했다. 제과업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월매출 100억을 뛰어 넘었다.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일리톨의 인기를 사그러들줄 모르고 있다. 식사 후에, 잠들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하나씩 씹고 자는 것이 일상이 된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자동차나 손가방에 자일리톨 한통씩 들어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정도로 자일리톨은 이제 우..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2. 11. 22.

묵상일기-시편23편 1절

묵상일기시편 23편 1절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다. 여호와는 보편적 명칭인 ‘신’ 즉 ‘하나님’이 아니다. 여호와는 구속사적이고 개인적인 이름이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장님, 목사님 등이 사회적 명칭 아니다. 그것은 ‘정현욱’이란 분명한 이름을 말한다. 유교적 배경을 지닌 우리나라에서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다. 정자, 현자, 욱자 되십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나의 목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양이 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양은 목자 없이는 살지 못한다. 양은 목자 의존적이다. 인류의 역사는 사람이 기르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동물을 본적이 없다. 오직 양만이 유일한 야생양이 없는 동물이.. 일상이야기/글쓰기특강 2012. 11. 18.

목회칼럼-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 무척 사무쳐 다가온다. 먼 이웃이 아니다. 원수는 더더욱 아니다. 네 이웃이다. 나의 가까운 이웃, 한 이불 덮고자고 아내와 이이들 일 수 있고, 나와 매일 얼굴을 맞대는 사장과 회사 동료일 수 있고, 학교와 학원에서 만나는 친구 일 수 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몇 개월 전 어떤 여집사님의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목사님! 저를 괴롭혔던 원수는 이제 용사가 되는데 아침마다 보는 남편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이혼 직전에 있던 분의 이야기다. 들으면 답답해오면서도 울림이 있는 말이다. 용서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용서가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요즘 미로슬라브 볼프의 을 읽으면서 네 이웃을 사랑하는 말이 비수처..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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