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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목회칼럼335

세렌디피티(serendipity): 진보는 필연과 우연의 조우 세렌디피티(serendipity) : 진보는 필연과 우연의 조우 세렌디피티는 우연의 실수가 만들어낸 발견이다. 과학분야의 경우 실험 도중 일어난 실수로 인해 중대한 발견을 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이나 3M의 포스트잇 같은 경우다. 이러한 발견은 의도되지 않는 발견이지만 과학적 진보의 디딤돌이 된다. 실패 또는 실수로 치부 될 수 있는 것들을 역발상을 통해 창조적 대안으로 만들 수 있다. 플레밍은 배양실험을 하는 중에 실수로 잡균인 푸른곰팡이를 혼입한 것이 감염증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는 항생물질을 발견한 이유가 되었다. 포스트잇의 경우도 접착제가 잘 붙지 않아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하여 탈부착이 가능한 포스트잇이 된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진보를 찬찬히 들..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10. 11.
목회칼럼-신앙의 절차탁마(切磋琢磨) 목회칼럼신앙의 절차탁마(切磋琢磨) 절차탁마(切磋琢磨)란 사자성어가 있다. 뜻을 찾아보면 옥이나 뿔 등을 갈고 닦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이 말은 종종 학문이나 기예 등을 열심히 배우고 훈련하여 높은 경지에 오르는 과정에 대한 비유로 사용된다. '절차탁마하여 실력을 길러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등으로 사용한다. 훈련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는 절차탁마의 과정이 필요하다. 세공(細工)되지 않는 다이아몬드는 돌맹이 지나지 않는다. 세공사에 의해 다듬어 질 때 고가의 보석이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사람다워지지 않는다. 배움과 학습을 통해 사람답게 된다. 절차탁마의 뜻을 직해하면 절차탁마(切磋琢磨):자르고, 갈고, 쪼고, 간다는 뜻이다..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10. 10.
중고등부칼럼-기억장치 기억장치 유태인의 힘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현대 유태인들의 저력은 학교나 뛰어난 두뇌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공부의 맛을 배우고, 공부의 필요성과 목적을 배우면서 자란다. 무엇보다 자신이 유태인임을 기억함으로 삶의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살아간다. 수천 년 동안 그들은 땅이 없는 민족, 경계가 없는 방랑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유태인으로서의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끊임없는 ‘기억전승’이 효과 때문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유태인임을 잊은 적이 없다. 유태인의 힘은 가정에서 만들어낸 기억 전승(傳乘) 때문이다. 가정이 기억하는 장치인 셈이다. 정현모PD는 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전통과 명절은 유태인의 가족주의 문화를 더욱 더 심화시켜 주었으며, 유태인 가족주의..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10. 5.
독서칼럼, 중고책 이런 재미로 읽는다. 독서칼럼헌책에서 읽어 내는 시대 이야기 헌 책방에서 책을 구입하면 솔솔찮은 재미가 있다. 헌책은 새 책이 줄 수 없는 세월과 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다. 헌책의 묘미는 거시적 풍경뿐 아니라 미시적 풍경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헌책을 읽다보면 책 속에 기록한 메모와 끼어져 있는 명함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저자나 출판사의 흔적이기도 하다. 당시의 역사들을 더듬어 찾아가다보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마치 오래된 옛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수개월 전 보수동 헌책방에 들렀다. 몇 권의 책을 골라 나중에 읽을 양으로 책장에 꽃아 두었다. 엊그제 교육에 대해 알고 싶은 집에 교육 관련 서적을 살폈다. 루소의 에밀이 눈에 들어왔다. 비에 젖은 흔적이 남아있다. 책..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9. 25.
중고등부 칼럼-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 중고등부 칼럼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 각오하라. 인생은 재방 없는 한 평의 영화다. 버나드 쇼가 그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쓰지 않았던가. 인생은 그렇게 우물쭈물 할 필요가 없다. 고민하고 숙고한 다음 거침없이 달려가야 한다. 그러니 각오하라. 앞으로 닥쳐올 당신의 인생을 멋지게 맞닥뜨릴 준비를 하라. 그 다음 멋지게 살아가라. 유다는 예수님의 육신적 친동생이다. 카톨릭은 마리아 처녀 승천설을 주장하지만 엉터리다. 성경은 그들의 견해를 거부한다. 마리아는 이 땅에서 발을 딛고 하늘을 품었던 평범한 한 여인으로 살았다. 유다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땅의 이야기를 간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성도는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가는 소명자다. 땅을 거부하는 순간 하늘도 잃는다. 초대교회의 가..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9. 21.
'세습'은 죄인가요? '세습'은 죄인가요? 먼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저는 세습에 대해 반대하지도 찬성하지도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1. 세습을 찬성하는 이유 둘 세습하지 않으면 교회 존립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몇 분은 아버님이 개척하신 교회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세습해서 담임목사를 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것을 법으로 세습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교회는 문을 닫을 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저의 첫 번째 세습에 대한 생각입니다. 세습방지법은 또 다른 배제입니다. 아들은 다음 목회자 후보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또 다른 배제입니다. 마치 흑인이 백인의 차별을 역차별로 맞서는 것과 같습니다. 약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전용'이란 말도 엄밀하게 따지면 남성차별입니다. 그러니 아..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9. 16.
중고등부칼럼-은혜, 만남을 기적으로 만들다 은혜, 만남을 기적으로 만들다 슬퍼하지 마라. 만남은 선택이다. 니체는 과거의 선택의 축적이 오늘이라고 단언한다. 오늘의 선택은 내일은 여는 문이다. 현재의 위기는 과거의 선택으로 열매 맺어짐이다. 그러니 제발 오늘 여기를 불평하지 말고, 내일의 위한 만남을 선택하기를 힘쓰라. 노사연이 노래하듯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정말 기적 같은 만남이 은혜로 주어진다. 복음을 증거하던 바울이 옥에 갇혔다. 그곳에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가 있었다. 주인은 빌레몬으로 바울의 복음 전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고, 오네시모는 복음 받아들이고 예수의 제자가 된다. 아무 쓸모없던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남으로 큰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11절..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9. 14.
포스트 칼뱅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포스트 칼뱅주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칼뱅의 성경 주석은 우연하게 탄생했다. ‘필연’적 ‘우연’으로. 칼뱅은 주석을 쓸 마음이 없었다. 처음은 필요에 의해서 변증을 위한 기독교 강요를 저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리만으로 부족하고 성경을 직접 주석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직면한다. 계시록을 뺀 모든 책을 주석 한다. 계시록을 주석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겸손이나 해석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의 시대자체가 종말론적 편견이 심하게 왜곡되었던 탓에 굳이 그러한 논쟁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의 핵심은 그리스도 예수이며, 성령의 조명으로 인해 밝히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계시적 측면은 필연적으로 성령의 조명과 함께 인지적 작업이 수반된다. 이성과 감성의 중간 지점이라 할 것이다. 의식적 신..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9. 14.
독서칼럼-책은 창문이다. 독서칼럼책은 창문이다. '지금' '여기'서 '그때'와 '그곳'을 볼 수 있다. 책은 다른 세계를 보여 준다.책은 다른 시대를 보여 준다.책은 다른 사람을 보여 준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밀폐된 시공간에서 죽어 간다. 장자의 말대로 우물안의 개구리다.우물안의 개구리는 자기가 본 세상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고집이 세고 확고한 논리를 제시한다. 바다를 보고 온 사람은 반드시 진다. 장자왈 '우물 안의 개구리와 바다를 논하지 말라.' 책을 읽으면 필연적으로 겸손하게 되고 자신의 무지를 인식하기에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된다. 책을 읽고도 여전히 교만하고 잔소리가 많은 사람과 절대 사귀지 말라. 그 책은 창문이 아니라 창고다. 자신의 욕심과 편견을 채우는 창고. 그런 사람은 남을 무시하고 자기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9. 14.
중고등부칼럼 - 만족과 불평의 역학 중고등부칼럼 만족과 불평의 역학 톨스토이의 '러시아 민화집'에 보면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있다. 바흠은 시골에서 욕심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농부다. 어느 날 도시에 사는 언니가 찾아와 바흠의 아내에게 도시의 화려함을 자랑한다. 삶에 만족하며 살던 바흠의 아내는 갑자기 비참해 진다. 남편을 부추겨 더 많은 땅에서 농사를 지어 돈을 벌자고 한다. 바흠은 아내를 기쁘게 하려 1000루블만 주면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땅을 주는 곳을 찾아 간다. 단 조건이 있다. 해가 지기 전 출발 장소까지 도착해야 한다. 바흠을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원하는 땅을 얻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얻기 싶어 계속하여 달려갔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자 출발장소로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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