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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목회칼럼335

교회교육칼럼 -교회마다 도서관을 만들자. 교회교육칼럼-교회마다 도서관을 만들자. 부산노회 주일학교 연합회 교육분과 위원장을 맡으면서 주일학교의 현실을 더 깊이 체감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3월 18일)에는 삼일교회를 담임하시는 송태근 목사님을 모시고 2013년도 제1차 교사 전문 강습회를 열었다. 임원들이 먼저 섭외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편안하게 참석했다. 삼일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가능해 보였던 섭외가 쉽게 풀어졌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송목사님이 주일학교를 위해 기꺼이 달려와준 덕이다. 7시가 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너무 적은 인원이 참석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30여분이 지나자 비워진 의자가 거의 없을 만큼 사람들로 채워졌다. 아마 7시가 너무 이른 탓이 아니었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목사님..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20.
목회칼럼-성공의 세가지 원리 [목회칼럼]성공의 세 가지 원리 1. 집중의 원리 한가지 일에 집중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한 우물을 파라했다.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은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많은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해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공의 가장 큰 원칙이자 기본은 집중의 원리다. 페르시아에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어느 청년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 부자가 되고 왕이된 왕에게 찾아가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 왕은 청년에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잔에 포도주 한잔을 따라주면서 “이 포도주를 저작거리에 나가 한바퀴 돈 다음 다시 나에게 가져오면 가르쳐 주겠다. 그러나 만약에 잔에 있는 포도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네가 너의 목을 치겠다”고 말했다. 한 참 뒤에 청년이 진땀을 뻘뻘..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17.
중고등부칼럼-세 나무의 깨어진 꿈 세 나무의 깨어진 꿈 꿈 많은 세 나무가 있었다. 올리브나무, 떡갈나무, 소나무. 그들은 자기만의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올리브나무는 정교하고 화려한 보석상자가 되어 온갖 보석을 담으리라 기대했다. 어느 날 나무꾼이 올리브 나무를 베어 말구유를 만들어 버렸다. 보석상자의 꿈에 부풀어 있었던 올리브나무는 상심하여 이렇게 자신을 보며 비참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갔다. 왕의 배가 되어 모든 배들의 부러움을 사게 될 것을 꿈꾸었던 떡갈나무도 베어져 어느 어촌의 작은 고깃배가 되었다. 하루 종일 역겨운 생선 비린내를 맡으며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타령하며 살아갔다. 소나무는 우람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산꼭대기에서 우뚝 서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섭리를 나타내며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느 폭풍이 몰아치던 날..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16.
나눔, 삶과 죽음의 경계 나눔, 삶과 죽음의 경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1:4)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것을 볼 때, 그들의 한결 같은 특징은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고 받기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치유는 받기만 해서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다른 마음 상한 자들을 찾아 내가 받은 위로의 기쁨을 나누고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나누어 가져야 비로소 상한 마음이 완전히 치료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에 있는 두 개의 바다, 즉 갈릴리 바다와 사해를 비교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요단강은 신선하고도 맑은 물을 갈릴리 바다로 흘러 들어가..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15.
목회칼럼-먼저 하나님을 내 안에 채우라 목회칼럼먼저 하나님을 내 안에 채우라 어린 아이에게 동전을 보여주었다. 실험결과 평균적으로 객관적인 크기보다 훨씬 크게 말했다. 부르너 교수는 가난한 어린아이와 부유한 가정의 아이를 비교 했다. 역시 가난한 가정의 아이는 고액의 동전을 더욱 크게 보는 걸로 확인했다. 인간 안에 내재된 욕구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이것을 ‘욕구에 의한 착시 현상’이라고 불렀다.(조형심리, 오미겐타로, 동국출판사 참조) 착시가 클수록 열등감이 심하고 상대적인 빈곤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비교적으로 신경질적이고 비활동적이며 시기와 질투심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욕구의 크기와 착시의 크기는 비례한다. 가수 김수희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고 애모에서 노래했다. 어떤 사람 앞에만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13.
목회칼럼-왕멍, 위기를 기회로 사용하다. 목회칼럼왕멍, 위기를 기회로 사용하다. 위기가 오면 누구나 힘들어 한다. 그러나 위기를 절망하고 패망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발판으로 삼아 성공과 성장의 기회로 삼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전보다 더 위한 인물로 거듭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정약용도 그렇다.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탁월한 학문적 진보를 이루었다. 10여년 기간 동안 500여권의 책을 서술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 온다. 위기를 기회로 멋지게 사용한 것이다. 얼마 전 안상헌의 신간인 을 읽다가 왕멍이란 사람을 소개하는 부분을 읽었다. 이름이 생경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짤막하게 소개된 그의..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13.
뱀파이어 크리스찬 뱀파이어 크리스찬 댈러스 A.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는 순종 없는 크리스찬들을 일컬어 ‘뱀파이어 크리스찬’이라고 말한다. 뱀파이어 크리스찬은 뱀파이어가 그렇듯이 ‘피’에만 관심이 있다. 예수님의 피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하여 졌음을 감사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순종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믿음의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없다. 그저 자신의 죄가 용서 받았음에 감사할 뿐이다. 달라스 윌라드는 크리스찬과 제자를 구분한다. 그닥 성경적인 구분은 아니지만, 그의 구분의도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크리스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제자는 아니다. “제자란 상대와 같은 존재가 되고, 상대가 하는 일을 하기 위해 적절한 조건 아래서 그 사람과 함께 있기로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10.
중고등부칼럼-나의 묘비명 나의 묘비명 ‘우물쭈물 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소설가였던 어니스트 훼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묘비명을 가지고 있다. 게일보든이란 발명가의 묘비명은 이렇다. ‘나는 시도하다 실패했다. 그러나 다시 또 다시 시도해서 성공했다.’ 사람은 저마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묘비명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총체이자 기억이다. 당신의 묘비명은 어떻게 기록되기를 원하는가? ‘삶을 헛되어 살다 의미 없이 죽은 사람’이라고 기억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여기에 고귀하고 아름다운 섬김과 사랑을 실천한 ○○○가 잠들다.’라고 기록되길 원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현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금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 나머지 중요한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9.
<분주함이 주는 결과> -김광성목사 모비 딕이라는 소설에 보면 그 배에 선원들이 고래를 잡기 위해 총동원 되는 장면이 나온다. 선원들은 자기의 임무를 감당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매진한다. 분주하고 바쁘고 정신이 없다. 그 때 단 한사람의 모습을 작가 허먼 멜빌은 인상 깊게 그린다. 그 주인공은 '작살 꾼'이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작살만 들고 고래의 움직임과 전체적인 상황만 예의 주시하고 있다. 작살 꾼도 다른 이들과 동일하게 분주함에 빠져 든다면 마지막 일격을 고래에게 가할 순간에 그의 임무를 놓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는 그의 진정한 임무를 위해 작살만 들고 서있다. 많은 교회들이 소비 지향적 종교로 우리의 신앙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목회자와 성도는 반드시 '프로그램' 이라는 도구를 덥석 ..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3.
중고등부칼럼-실수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어떤 교인이 목사님을 찾아왔다. 그 사람은 깊은 회의와 절망에 빠져 믿음을 포기하려고 하였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설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지옥에 들어갈 것 같으며 구원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목사는 답을 주지 않고 그 교인을 데리고 조용히 앞마당에 있던 개에게 데리고 갔다.“저기 저기에 있는 개가 보이십니까? 저 개는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집안을 어지럽게 하거나 아무 곳에나 똥을 누거나 오줌을 누는 일도 없습니다. 저 개를 볼 때마다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당 한쪽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는 저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옷을 보시면 알겠지만 지.. 일상이야기/목회칼럼 2013.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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